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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원? 月500만원에도 없다"…외국인 없인 배 못 띄운다 [이제는 이민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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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월급 500만 원을 줘도 한국 사람은 안 와.”

지난 5월 3일 오전 10시 여수항. 조기를 주로 어획하는 24t급 유자망 어선 선주 정행수(47)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씨의 배 갑판에서 쉴새 없이 그물을 잡아당기고 있던 20~30대 선원 7명은 모두 외국인. 베트남, 인도네시아 국적자들이다.
정씨는 “외국인을 고용 허용 한도인 7명까지 꽉 채우지 않으면 출항조차 못 하는 실정”이라며 “한국인 선원 월급이 500만원에 이르는데도 젊은 한국인 선원 지원자를 구경한 지가 5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소재 금형제조 업체 '피스템코'도 외국인 없이는 공장을 돌릴 수 없다. 이 업체 인사 담당자는 "1년 내내 구인 공고를 내고 있지만, 한국인은 거의 지원하지 않는다"며 "지난해 한국인 5명이 입사했지만, 반년도 안 돼 전부 그만뒀다"고 말했다. 피스템코 역시 정부에서 허가하는 외국인 고용 정원 9명을 꽉 채워 활용하고 있다.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사람이 자원인 젊고 조밀한 나라였다. 1992년 한국에는 73만678명이 탄생했고, 모든 한국인을 나이순으로 세웠을 때 가장 중간에 있는 이의 나이인 중위연령은 27.9세에 불과했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이제는 마치 옛 전설 속에서나 존재했을 법한 수치가 돼 버렸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4만9031명으로 30년 만에 3분의 1토막 났고, 중위연령은 45세로 치솟았다.

인구가 줄고, 젊은이는 더 많이 감소하다 보니 일할 수 있는 노동력 역시 심각할 정도로 줄었다. 이 때문에 농어업이나 제조업 등 생산 현장에서는 이미 외국인 없이는 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좁게는 노동력 부족 현상 해결, 넓게는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 및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 유지를 위해 이민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이민청 하나 만들지 못한 데다가 외국인 노동력 유입도 20년 전 만들어진 고용허가제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이대로는 조만간 도래할 ‘이민 유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실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제가 일정 궤도에 오른 국가들은 예외 없이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이민 유치 정책을 펴고 있다. 5월23일자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한국과 가장 유사한 인구 구조 및 국민감정을 가진 데다가 장래에 한국의 이민 유치 경쟁국이 될 수 있는 일본의 상황을 먼저 둘러본 중앙일보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의 실태와 이민 정책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앞으로 17년, 서울시 인구만큼 사라진다

886만명. 서울시 인구가 아니다. 2020년부터 20년간 줄어들 생산가능인구(15~64세 해당하는 인구) 예상치다.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는 2019년 3763만 명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2020년 3738만명에서  2030년 3381만명, 2040년 2852만명, 2050년 2419만명, 2060년 2066만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7년 뒤에는 어지간한 광역시 인구보다 많은 357만명이, 다시 10년 뒤엔 서울시 인구(942만명, 2023년 2월 기준)에 맞먹는 생산가능인구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줄어든 만큼 새 생명으로 채워진다면 걱정할 일이 없겠으나 현실은 암울하다.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일컫는 합계 출산율이 1에도 못 미치는 0.78명(2022년 기준)까지 추락했다. 세계에서 가장 낮다. 정부가 15년간 150조원이 넘는 출산 장려 예산을 퍼부었으나 헛수고였다.

일반적으로 인구 유지가 가능한 출산율은 2.1명이다. 설사 획기적인 조처가 나와 출산율을 당장 2.1로 끌어올린다고 해도 이들이 생산가능인구가 되려면 15년 이상이 더 필요하다. 일손 부족은 예견된 미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런데도 국내의 이민 관련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5월 취임사에서 이민 관련 업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이민청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두 달여 뒤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의 110대 국정과제에서는 빠졌다. 한 장관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우리 국민은 외국인이 몰려드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고,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일단 존중할 부분이라 생각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민 정책 콘트롤 타워부터 만들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건수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이민학회장)는 “현재 이민 관련 정부 업무는 법무부,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등으로 나뉘어 있어 겹치거나 공백이 생기는 등 비효율이 있다"며 “학계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이민을 총괄할 기관이 필요하다고 결론이 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한국인구학회장)는 “인구 감소가 가져올 위기를 놓고 보면, 이민청뿐 아니라 인구 전반을 총괄할 ‘부’를 만들어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정기선 전 이민정책연구원장은 "지금 한국은 60대가 90대를 돌보는 실정이라 이민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며 "단순히 노동력을 많이 들여와 쓴 뒤 돌려보내는 수준을 넘어 외국인의 유입·관리·통합을 아울러 담당할 수 있는 이민 전담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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