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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높여 노동력 해결? 15년 넘게 걸린다" 日이민청장 조언 [이제는 이민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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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사사키 쇼코(佐々木聖子) 초대 출입국재류관리청장이 일본 이민청 설립과 이민 정책 변화를 주제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도쿄=이영근 기자

지난달 10일 사사키 쇼코(佐々木聖子) 초대 출입국재류관리청장이 일본 이민청 설립과 이민 정책 변화를 주제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도쿄=이영근 기자

“1을 넘지 못한다고요?”

지난달 10일 일본 도쿄 미나토(港)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사사키 쇼코(佐々木聖子·61)는 한국 합계 출산율이 0.78명이란 취재진 설명에 놀라 되물었다. 그는 일본의 이민청 격인 출입국재류관리청의 초대 청장이다. 사사키 전 청장은 “한국 출산율이 낮다는 건 알았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이민 관련 ‘국민적 규모의 논의’를 미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폐쇄국가’로 불릴 만큼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데 미온적이었다. 규제 위주 정책에 ‘잃어버린 30년’ 동안 임금 정체까지 겹치며 외국인 채용 경쟁에서 한국에 한참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일본은 다른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부터 과거 외국인 채용 주력 창구로 이용했던 ‘기능실습제’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제도를 시행한 지 30년 만이다. 이민청 설립은 한국보다 앞섰다.

저출산·고령사회에서 심각해질 ‘이민 전쟁’에 앞서 적극적으로 태세 전환에 나선 일본의 상황을 묻기 위해 중앙일보는 지난달 10일 사사키 전 청장을 만났다. 그는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1985년 법무성에 들어가 입국관리국 총무과에서 30년 넘게 외국인 관련 정책 전문가로 일했다. 2019년 1월 내각관방 심의관에서 여성 최초로 입국관리국장으로 승진했고 3개월여 뒤 출입국재류관리청이 신설될 때 초대 청장으로 임명됐다. 지난해 퇴임 이후에도 외국인과 함께 사는 ‘다문화 공생사회’를 만들어야만 일본에 미래가 있다는 신념으로 강의나 인터뷰 등을 하고 있다. 그와의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자리한 일본 구(舊) 법무성 전경. 지난 2019년 법무성은 이민청 격인 출입국재류관리청을 외청으로 출범시켰다. 도쿄=이영근기자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자리한 일본 구(舊) 법무성 전경. 지난 2019년 법무성은 이민청 격인 출입국재류관리청을 외청으로 출범시켰다. 도쿄=이영근기자

일본은 ‘이민 사회로의 전환’에 신중하자는 입장이었으나 2019년 외국인 정책에 큰 변화를 줬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기능실습제도는 표면적인 목적이 ‘국제 공헌’이었다. 외국의 인재를 육성해 다시 국제 사회로 돌려보내며 선진국으로서 일본이 ‘국제 공헌’을 한다는 취지의 제도였다. (*이는 일본 사회가 ‘이민’에 대해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다. 외국인 인력을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선진 기술을 가르쳐서 돌려보내는 국제 공헌 사업이라고 표현했던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제도의 근본은 외국인을 고용하는 제도였다. 일본 안에서 인력이 부족한 노동 분야의 인력 확보를 위한 제도란 의미다. 그래서 실제 제도의 활용과 목적이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이 제도의 폐지 결정은 일본 사회가 ‘일손 부족’이 심각하고 빈 부분을 외국인으로 채우겠다고 인정한 셈이다. 국제 공헌이라는 제도의 위선을 드러내는 데 30년이 걸렸다.  
30년 만에 의식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만큼 ‘노동력 부족’이 심각하단 소리다. 일본은 이미 초고령 사회이고 여전히 고령화는 진행 중이다. 생산 가능 인구(15세~64세의 인구)의 부족 현상이 장래 더더욱 심각해진다는 위기의식에 직면했다. 인구 통계상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점은 오래전부터 알았다. 다만 이제야 비로소 ‘절박한 상황’이 왔다고 느꼈다.
기능실습제도에는 일손(노동력)을 만드는 인재 육성의 목적이 있다. 그런 효과도 일부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지고 인재를 육성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래서 2019년 특정 기능 제도를 도입하며 일손이 시급한 분야는 인재를 육성하기보다 바로 외국인으로 채울 수 있도록 새로운 자격 요건을 만들었다.  
지난달 10일 사사키 쇼코(佐々木聖子) 초대 출입국재류관리청장이 일본 이민청 설립과 이민 정책 변화를 주제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도쿄=이영근 기자

지난달 10일 사사키 쇼코(佐々木聖子) 초대 출입국재류관리청장이 일본 이민청 설립과 이민 정책 변화를 주제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도쿄=이영근 기자

한국도 노동력 부족이 심각하다. 다만 한국은 생산가능 인구 감소 문제를 ‘저출산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한국의 출산율이 일본보다 훨씬 낮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0.78명이다) 뭐라고요? 0.7명이라고요?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사실 노동력 감소를 해결하기 위한 이민 정책을 논의할 때 출산율과 연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손 부족은 고령화가 심해져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출산율로 해결하려면 15년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 노동력 부족은 미래가 아닌 현실 문제다. 한국의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국민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외국인을 어떻게 고용하고 교류할지는 일본의 미래에 있어서 큰 문제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런 논의가 ‘국민적 규모’로 필요하다. ‘외국인은 그냥 싫다’라거나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이자’는 식의 논의를 넘어 싫다면 왜 싫은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함께 ‘공생’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기능실습제를 대체할 새로운 제도를 만들 때 고려한 부분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일본 내 여러 직종 가운데 특히 일손이 부족한 분야를 살폈다. 기준은 두 가지였다. 먼저 기술 혁신으로도 인력을 채울 수 없는 곳, 다음은 일본인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도 노동력 부족을 해소할 수 없는 곳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떤 분야는 IT 기술 발달이나 AI 도입 등을 해도 노동력이 늘 부족하다고 했다. 일본인 노동자 급여를 아무리 높여도 채용이 어렵다는 분야도 있었다. 2019년 개호(돌봄), 건설, 빌딩 청소 등 14개 직종을 확정했다. 이후 2개를 통합해 현재 12개 직종이 남았다. 
일본 사회가 ‘이민’에 부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민 정책을 말할 때, 한국에서 쓰는 ‘이민’의 의미가 일본과 다를 수 있다. 일본에서 ‘이민’이라고 하면 일본에 계속 정주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잠깐 살다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 계속 일본에 사는 이미지다. 그래서 외국인이 일본인의 일자리를 뺏을 수 있다는 불안이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나, 이후 지향점이 있다면?
일단 30년에 걸쳐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겠다’는 방향성은 정해졌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공생(共生)’으로 나가야 한다. 물론 국민적인 논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외국인을 ‘생활자’로 인정하고 지역에서 함께 사는 이웃으로 받아들여 ‘어떻게 살지’ 논의해야 한다. 
일본은 그래도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9년 출입국재류관리청을 만들 때,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나아가 이들과 공생할 수 있도록 돕는 ‘사령탑’이 되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출입국재류관리청이 이민 정책의 콘트롤타워인가? 
외국인 정책에는 두 개의 바퀴가 있다.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문제와 받아들인 이들이 잘살도록 돕는 체류 지원(공생) 두 바퀴가 잘 굴러가야 한다. 과거 일본은 공생 관련 정부의 역할이 없다시피 했다. 체류 지원은 외국인이 생활하는 지자체에서 담당했다. 이를 2019년 출입국재류관리청 출범 이후에 국가 전체에서 조명하며 정책을 진행했다. 지자체에서 각개전투를 했지, 국가적 차원의 ‘싱크로’(synchro·동기화)는 없던 상황이다.  
한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출입국재류관리청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 있지 않나? (아직 없다) 한국이 먼저 했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2019년 출입국재류관리청을 격상하며 실질적 힘이 생겼다. 다른 관할청 위에서 콘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부처 간 역할이 애매해 공백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을 출입국재류관리청이 보완한다. 
지난달 10일 사사키 쇼코(佐々木聖子) 초대 출입국재류관리청장이 일본 이민청 설립과 이민 정책 변화를 주제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도쿄=이영근 기자

지난달 10일 사사키 쇼코(佐々木聖子) 초대 출입국재류관리청장이 일본 이민청 설립과 이민 정책 변화를 주제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도쿄=이영근 기자

일본과 한국은 ‘인재’를 두고 경쟁하고 협력하는 관계다. 일본의 강점이 있을까?
나라마다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문제와 관련해 제도와 문화, 국민의 인식, 감정, 역사 등이 다르다. 비교하기 어렵다. 중요한 건 ‘외국인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지금 우린 ‘선택받을 수 있는 일본’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한국도 그런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입국 관리를 담당하는 한국의 법무부와 일본의 출입국재류관리청이 서로 교류하며 정책을 참고하고 배우면 좋을 것 같다. 다만 그저 다른 나라의 방식을 모방해선 곤란하다. 나라마다 상황과 해결법이 다르다. ‘오리지널리티’를 키워야 한다.  
일본이 추구하는 사회 모습이 있나?
한 단어로 ‘다문화 공생 사회’다. 최근 일본에서는 단일민족 국가란 말을 잘 안 쓴다. 전체 인구 가운데 외국인 비율이 3%도 채 되지 않으니 단일민족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러나 다문화 공생사회로 나아가겠다는 목표는 국민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0년 전에만 해도 단일 민족 국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변했다. 외국인이 들어오면 다양성이 생기고 사회에 활력이 공급될 것이다. 이는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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