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가상 시나리오] ⑩ 노무현-이명박 연대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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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2007년의 양상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10개의 고사성어를 중심으로 차기 대선 10대 쟁점을 완전 해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탈당할 생각이 정말 없는 것 같다. 그는 각료 임명 과정에서 드러난 당과 청와대의 마찰과 갈등에도 “당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가 열린우리당과 결별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대통령 스스로 2007년 대선 승리의 동력이 되겠다는 선언이며, 동시에 자신을 반대하는 의원들이 당을 깨고 나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레임덕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정권의 시스템이 마비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다는 절박함도 배어 있다.

노 대통령이 과연 차기 정권 재창출에 강렬한 의지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차기 대선에서 패배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할 만큼 승리에 대한 의욕이 대단하다는 설이 우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이 자신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대권 구도를 만들 경우 한나라당이 승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는 최근 측근들에게 “민주당과 연합하는 방식으로 차기 대선을 다시 지역구도로 짜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청와대의 한 386 비서관은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이 같은 생각을 굳혔고, 민주당과 통합이나 나아가 고 건 전 총리의 영입 카드는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가 고 건 전 총리를 참여정부의 초대 총리로 임명한 것 자체를 후회한다는 말도 있다. 고 전 총리 역시 노 대통령의 이런 의중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열린우리당 입당이나 정치적 연대 가능성을 작게 보고 있다.

열린우리당 내 친노그룹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구상한다는 것은 노 대통령의 대선 전략이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대선 후보로는 승리가 불가능하며 최대한 문호를 개방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인물’을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과 교감하고 있다는 안희정 씨의 행보가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측은 모두 접촉 사실을 부인하지만 안씨는 최근 이명박 캠프와 부단한 교신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가 측근을 접촉한 데 이어 고려대 선배인 이명박 전 시장과도 회동했다는 설이 파다하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이 전 시장은 “안씨의 얼굴도 모른다”며 회동 사실을 강력 부인하고 있고, 안씨를 비롯한 친노계 의원들도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이 전 시장은 그간 여러 차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둘로 쪼개지면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며 독자적 움직임을 배제해 왔지만, 그의 탈당설은 여전히 내년 대선의 주요 변수 중 하나다. 전당대회 대리전 논란 와중에 불거진 이재오 최고위원의 탈당설도 이 전 시장의 탈당 시나리오의 일환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이 전 시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탈당) 하면 유리한 세력이 있나 보다. 당 안팎으로 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만드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영삼 정권 때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내가 얼마나 당했나? 그런데도 승복했다. 나는 그런 역사를 갖고 있고, 조직생활을 오래 한 사람으로서 항상 질서의 규칙을 지켜 왔다. 그런데도 자꾸 그런 이야기가 들리는 것을 보면 바깥에서 분열을 좋아하는 세력이 있고, 안에서도 그런 세력이 있는지 모른다”고 부연했다.

노무현-이명박 연대라는 황당한 조합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관측도 강력하지만, 두 진영의 최후의 선택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탈당-신당 창당-열린우리당 반노파와 호남계 의원 탈당-이명박 신당과 친노 주축의 열린우리당 합당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결국 차기 대선은 박근혜의 한나라당, 고 건과 열린우리당 탈당파, 이명박의 열린우리당 등 3파전이 되리라는, 지금으로서는 매우 신기한 대선 구도가 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내에서의 정계개편 움직임은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열린우리당 내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해서는 2007년 대선뿐 아니라 2008년 총선도 어려울 것이라는 절망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계개편이 시작되면 일부 의원은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낮은 이유를 ‘민심을 읽지 못한 대통령’에게 돌리며 탈당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탈당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으므로 오히려 대통령을 비판하는 인사들이 탈당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이들은 민주당과 고 건 전 국무총리를 포함한 범여권 세력을 통합하거나 연대하는 방식으로 대선 후보를 선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카드는 이때를 대비한 노 대통령의 ‘회심의 카드’라는 것이 안희정-이명박 접촉설의 숨은 그림이다.

그러나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것은 이 선택이 (있을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이며, 그 선택이 이뤄지기까지 엄청난 산과 강을 오르고 건너야 한다는 점이다. 당내 경선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믿는 이명박 전 시장이 지지도가 바닥에 이른 노 대통령의 후광을 입는 대모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노무현-이명박 연대 가능성은 그래서 아직 정치적 상상력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이 상상력의 키워드는 ‘기화가거(奇貨可居)’다. 신기한 물건은 일단 확보해 둔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에게 이명박은 ‘신기한 물건’인 것만은 틀림없다.

한기홍 월간중앙 객원기자

①한나라당 후보 경선과 이명박 신당설
②박근혜 필승론, 함정과 변수
③열린우리당 '오픈 프라이머리'파괴력
④민주당발 정계개편,호남 캐스팅보트론
⑤고건 범여권 신당 성립과 그 파괴력
⑥박근혜-이명박 극적인 연대 성사
⑦범여권 서부벨트연대론과 1대1 대결 구도
⑧김근태·정동영의 운명
⑨손학규·천정배, 잠룡들의 생존전략
⑩노무현-이명박 연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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