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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중앙공원 지키려고…빚내서 땅 사고 법정다툼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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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대구 수성구 범어공원에는 지난해 초까지 공원 여기저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공원 땅 일부에 경계를 쳐두고 다른 주민의 출입을 막기도 했다. 도시공원 일몰제를 앞두고 지자체와 지주, 주민 간 갈등이 일어난 탓이다. 지주들은 “대구시가 공원 땅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으려 한다”며 반발했다. 대구시는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64만여㎡ 규모의 범어공원 전체 부지를 협의매수하기로 결정했지만 아직 보상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일부 지주들의 반발이 남았다.

공원 일몰제 지자체 대응 제각각 #대구 지방채 발행해 전체부지 매수 #서울 용도구역 지정 등 100% 유지 #천안은 전국 첫 주민투표 개발 결정 #일부는 재정 부족으로 해제되기도

국공유지 공원은 10년 동안 해제 유예

# 광주광역시의 일몰제 대상 공원은 25곳, 면적으로는 10.58㎢다. 영산강 대상공원 등 15곳은 광주시 예산 3523억원을 직접 투입해 공원으로 지정했다. 중앙공원 등 9개 공원은 건설회사 등 민간사업자가 주도하는 민간공원 특례사업으로 추진한다. 하지만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놓고 잡음이 일고 있다. 대상 부지인 중앙공원 1·2지구 개발 건설사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정종제 전 광주시 행정부시장 등이 기소돼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장기미집행 도시공원해제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장기미집행 도시공원해제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 1일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되면서 전국 지자체가 저마다 공원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지자체가 직접 나서 부지를 매입하거나 지주에게 보상해 공원을 유지하는 등의 방식이다. 하지만 재산권을 둘러싼 지자체와 지주 간 갈등이 걸림돌이다. 주민 투표가 열리거나 법정 다툼이 벌어진 곳도 있다. 예산 부족으로 별다른 대책 없이 공원이 사라진 곳도 있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2000년 제정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시공원으로 지정한 사유지를 20년 동안 개발하지 않으면 공원 부지에서 해제한다는 규정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28일 국공유지는 10년 동안 해제를 유예하기로 하면서 일부 부담을 덜었지만 사유지 녹지 보존에 관한 고민은 여전히 지자체의 숙제로 남아 있다.

해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곳은 서울시다. 서울시는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118.5㎢의 절반이 넘는 69.2㎢를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공원 효력이 사라지는 부지를 다시 공원 용도로 지정해 건물 신축 등 개발을 제한하는 방법이다.

도시공원 조성 계획.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도시공원 조성 계획.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서울시가 매입했거나 향후 매입해 도시공원으로 유지하는 곳도 있다. 나머지 부지는 환경부에서 관리하는 북한산 국립공원과 서울시 도시계획상 공원으로 중복 지정돼 공원 효력이 사라져도 토지 개발 목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전북 전주시는 2025년까지 15개 도시공원을 매입하는 도시공원사업 실시계획 인가를 고시하고 토지 매입에 착수했다. 충북 청주시는 난개발을 막기 위해 17곳(1.68㎢)을 우선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보상비는 2100억원 규모로 추산했다. 8곳(1.75만㎢)은 민간개발로 추진한다. 개발비는 2579억원이 투입된다. 충남 천안에서는 동남구 일봉산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놓고 주민 투표까지 해 개발을 결정했다. 경남도는 지방비를 적극 투입해 일몰제 대상이던 공원 165곳(41.937㎢) 중 58곳(21.89㎦)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춘천 5000억·강릉 1172억 예산부족 허덕

일부 지자체는 예산 확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원도 내 일몰제 적용 대상 지역은 18개 시군 187곳 18.48㎢다. 이중 지난 1일까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해 공원에서 해제된 지역은 36곳 4.98㎢에 달한다. 나머지 지역도 조성계획을 수립했지만 공원 부지 매입을 위한 예산 확보가 문제다. 공원 자격 유지를 위해서는 국·도비 지원 없이 기초자치단체의 재정만으로 부지를 매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춘천시는 6곳(1.42㎢)의 일몰제 대상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5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필요하다. 강릉시는 1172억원, 동해시는 400억원이 필요하다. 속초시는 3곳의 공원 부지 유지를 위해 올해 5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전남도는 일몰제 대상 공원 29㎢(127곳) 가운데 16.7㎢ 규모의 90곳을 오는 2023년까지 자체 예산을 투입해 모두 매입할 계획이다. 나머지는 열악한 재정 때문에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시행하기로 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공원 매입 등을 위해 국비 지원까지 요청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시공원 310㎢, 나무 1550만 그루 심는 효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년 1월 기준 해제 대상인 전국 공원 부지 368㎢ 가운데 310㎢가 공원으로 조성되거나 공원 기능을 유지할 전망이다. 310㎢ 공원 조성 시 1550만 그루 나무를 심는 효과가 있다. 도시공원 조성으로 도시숲 같은 녹지공간이 늘어나면 기후완화·소음감소·대기정화 등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도시숲은 여름 한낮의 평균 기온을 3~7도 낮춰준다. 플라타너스는 하루 15평형 에어컨 8대를 5시간 가동하는 효과가 있다. 도로변과 중앙에 숲이 있으면 자동차 소음의 75%가 감소하고 느티나무 한 그루는 연간 1.8톤의 산소를 방출하는데 이는 성인 7명이 연간 필요한 산소량이다.

또 나무 한 그루는 연간 에스프레소 한 잔 분량(35.7g)의 미세먼지를 흡수한다. 서울시민 10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65.5%가 서울에 공원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답했다. 정부가 공원이나 공원 조성 예정 지역을 해제한 뒤 민간에 매각해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하는 것에는 65.8%가 반대 의견을 냈다.

전국 취합=김방현·최경호·위성욱·김윤호
김준희·박진호·최종권·진창일 기자,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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