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한해 1000만원 못 받는데…3만명에 소득세 물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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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의 복병 <상> 연금 삭감

서울의 한 차고지에 주차된 버스 사이를 기사가 지나고 있다. 버스기사들은 정년이 63세까지 연장돼 일정 기간 동안 연금이 삭감되고 연금 소득세까지 무는 ‘이중 손실’을 겪는다. [중앙포토]

서울의 한 차고지에 주차된 버스 사이를 기사가 지나고 있다. 버스기사들은 정년이 63세까지 연장돼 일정 기간 동안 연금이 삭감되고 연금 소득세까지 무는 ‘이중 손실’을 겪는다. [중앙포토]

60세 이후에 정년을 연장하든 재고용되든 일을 더하게 되면 연금만 깎이는 게 아니다. 연금이 일정액을 넘으면 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연금 삭감에 연금 소득세를 무는 ‘이중 손실’이 발생한다. 지난해 3776명이 그랬다. 국민연금이 월평균 40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적기 때문에 세금을 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정 정년이 늘면 이런 일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령액 연 770만원 넘으면 과세 #작년 연금소득세 13억 불과한데 #연금에 대한 불신만 심화시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연금도 깎이고 세금도 문 사람이 3776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인당 4만7000원의 연금이 삭감됐고, 지난해 3만원의 연금 소득세를 냈다. 윤모(63)씨는 28년7개월 국민연금 보험료를 부었다. 61세부터 월 149만원가량의 국민연금이 나온다. 60세 넘어서도 회사에서 계속 일을 했는데, 이 때문에 연금이 매달 약 3만원 깎여서 나왔다. 지난해에는 국민연금공단에서 연말정산 하고 나서 3만원 세금을 떼고 연금이 나왔다. 두 개를 합쳐 한 해 연금 40만~50만원이 줄었다.

3776명은 연금 깎이고 세금도 내

이모(63)씨는 28년8개월 연금에 가입해 성실히 보험료는 냈다. 이씨 월 소득(과세소득)이 기준(227만원, 2018년)을 넘는다는 이유로 연금이 97만5890원으로 줄었다. 깎이지 않으면 124만6930원을 받아야 하는데 매달 27만1040원이 깎인다. 금액은 크지 않지만 지난해 연금 소득에 3030원의 세금을 냈다. 한 해 326만원가량 연금이 사라졌다. ‘이중 손실’이 발생하는 이유는 60세 이후에 일을 하는 국민연금 수령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연금 수령자의 월평균 연금이 40만원에 불과해 가족 생계를 위해 일을 계속해야 한다. 일을 하다 보니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생기고, 이로 인해 연금이 삭감된다.

정년연장 관련 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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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 문제로 떠오른 게 연금 과세다. 2013년 첫 과세자가 나왔다. 당시 3명에 불과했다. 2015년 3명에서 2016년 1096명으로 늘더니 2017년 1만1670명, 지난해 3만4466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모든 연금에 세금을 매기는 게 아니라 연금 총액 중 2002년 이후 해당분에 과세한다. 연금 총액이 100만원이고, 2002년 이후 발생분이 80만원이면 여기에만 물린다. 2002년 전까지 세금을 매기지 않다가 연금보험료를 소득공제하고 노후 연금에 과세를 시작했다. 2002년 이후 연금액이 770만원(2013년까지 700만원)이 넘으면 과세한다. 지난해 1인당 연평균 세금이 3만7600원이다. 전체 연금 세금은 13억원이다. 그리 많지는 않다. 과세 대상 연금이 770만~799만원인 사람이 8577명, 800만~1000만원인 사람이 2만5836명이다. 1000만원 아래 구간에 몰려 있다.

세금을 내는 연금 수령자의 평균 연금은 월 126만원이다. 앞으로 연금 수령자가 늘면서 세금을 내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국민연금공단은 국회 제출 자료에서 “공무원·사학·군인연금 수령자의 연금 액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이들의 세금 부담에 비해 국민연금 수령자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게 보여 박탈감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전체 수령자의 평균이 40만원, 20년 이상 가입자는 93만원이다. 지난해 말 기준 공무원연금 평균이 230만원, 사학연금 286만원, 군인연금 273만원이다.

“2002년 과세기준 … 현실 맞게 조정을”

국민연금공단은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최소 노후생활비가 197만원인데, 국민연금은 훨씬 못 미친다. 과세 기준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용돈연금’이라고 비판을 받고 있는데, 여기서 세금을 떼는 것은 국민연금 제도 불신을 심화시킨다는 뜻이다. 연금공단은 과세 기준을 올리자고 제안한다. 연금공단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과세 대상 연금액 기준을 77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올리면 과세 대상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1000만원으로 올리면 3명 발생한다. 850만원으로 올리되 1200만원 이하는 종합과세에서 제외하는 안도 있다. 이 경우 과세 대상자가 1만3446명으로 줄어든다.

민주당 정춘숙 의원실의 박상현 비서관은 “국민연금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거기에 세금을 물리면 반발이 커진다. 게다가 한 해 연금에서 걷는 세금 총액이 극히 미미하다”며 “세금을 물리지 않거나 기준을 대폭 올려 월 150만원이 넘는 고액의 연금 수령자에게만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연구원 연금제도연구실 류재린 부연구위원은 “전 세계적으로 고령자·연금수급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소득을 늘려주는 정책을 많이 펼친다”며 “앞으로 한국도 기하급수적으로 노인 빈곤과 연금소득 과세액이 늘어날 걸 고려하면 소득공제 구간을 조정해서 한시적으로나마 세금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세형평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국민연금 과세 대상자가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보험료에 소득공제를 하기 때문에 과세 원칙을 흐뜨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박형수·김태호·신진호·김윤호·이은지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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