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깎는 OECD 국가, 36개국 중 7개국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년 연장의 복병 <상> 연금 삭감

정년을 연장했거나 재고용된 60대 근로자가 국민연금 삭감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국민연금 수령을 연기하는 것이다. 국민연금법에는 연금을 전액 또는 일부를 최대 5년 연기할 수 있다. 연기하면 1년마다 7.2%의 연금을 더 받는다. 연금 삭감을 피하고 연금을 더 받는 ‘꿩 먹고 알 먹는’ 방안이다.

정부 “삭감 안하면 재정에 악영향” #수령 연기 땐 삭감없이 7% 더 받아 #60세 이후엔 보험료 다 본인 부담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이런 사람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2~2019년 2월 8만여 명이 연기를 택했고, 지난해 말 현재 3만1298명이 ‘연기 연금’을 받고 있다. 경남 창원의 한 대기업 근로자(63)는 60세에 정년퇴직 후 1년 단위로 계약직으로 계속 일한다. 그는 회사 월급 때문에 국민연금이 삭감된다는 사실을 알고 연금 수령 시기를 계속 연장하고 있다. 울산시 버스기사 유석관(60)씨는 2020년 정년이 61세에서 63세로 연장된다. 유씨는 “정년이 연장된 이후 계속 일하면서 임금을 받을 때 국민연금이 깎인다고 하니 그때는 연금 수령 시기를 연장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와 만난 일부 연금 삭감자는 “그런 거(연기 연금) 생각 안 하고 산다” “연금이 얼마 되지 않는데 연기하고 말고 따질 게 없다”며 수령 연기에 무관심했다.

연금삭감

연금삭감

관련기사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연금삭감제도(재직자 노령연금제)를 폐지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올 2월 발의했다. 오 의원은 “감액 제도가 노인 인구의 근로 유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수령자는 연기 제도를 활용해 감액을 피할 수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여유가 없는 경우에만 소득 활동에 종사하면서 감액돼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개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소득에 따라 연금액을 삭감하는 나라는 한국·일본·스페인 등 7개국에 불과하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이 소득이 있으면 연금을 삭감했으나 2000년 이후 연금 수령과 근로 활동을 병행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력 부족 해결, 고령자 근로 촉진을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는 “별도 소득이 없는 연금 수령자와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고 연금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 연금이 감액되는 사람의 대부분이 고소득 남성이기 때문에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연금 삭감자가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기 때문에 감액 제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년 연장이 되면 ‘60세 이후 보험료 납부’도 관건이다. 지금은 만 59세까지만 의무적으로 연금에 가입하도록 돼 있다. 연금을 받는 만 62세 이전에 보험료를 안 내도 된다. 중앙일보 취재진이 만난 11명 모두 보험료를 내지 않고 있었다. 60·61세에 보험료를 내면 노후연금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회사가 절반을 내줄 의무가 없어 전액 본인이 보험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계속 가입한 사람이 없었다. 건강보험료·고용보험료 등은 회사가 부담하고 있다. 법정 정년이 연장되면 60·61세 연금보험료의 절반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 그럴 경우 계속해서 근로자는 연금보험료를 더 낼 동기가 생기지만 기업 부담은 늘어난다.

◆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박형수·김태호·신진호·김윤호·이은지 기자 sssh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