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부러지지 않을 견고한 칼이 필요한 때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칼의 노래』는 김훈씨의 소설 제목이지만 진작부터 칼의 노래를 불러온 무인이 있다. 이석재 경인미술관장이다. 집안 대대로 무구류를 수집해 국내 최대인 1만2000점을 모은 이 관장은 칼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한국 문화를 저어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칼의 노래를 부르는 ‘어검당(御劍堂)’ 주인을 만나 칼을 사랑하는 마음을 들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을 호위하는 무사들은 모두 일본도를 들고 있다. 더구나 허리에 차고 있어야 하는 칼을 손에 들고 있다. TV 드라마 ‘주몽’은 또 어떤가. 배경은 고구려이지만 병사들의 갑옷이나 무기는 국적불명, 시대불명이다. 미디어만 문제인가. 아니다. 인터넷의 수많은 도검(刀劍) 관련 카페들도 오류투성이다. 검증되지 않은 지식이 사실인 양 돌아다니면서 갈수록 부풀려지기 일쑤다.

이석재(45) 경인미술관 관장은 그런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고려대박물관·경인미술관 공동특별전인 ‘칼, 실용과 상징’ 전시회의 전시 도록 말미에 ‘무엇이 한국의 칼인가?-우리 칼의 정체성 인식을 위한 제언’이라는 논문도 기고했다. “승리한 전쟁과 자국의 무강(武强)을 기록한 역사에 대해선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국민들이 어째서 그 전쟁의 수단이 되었던 가장 기본적인 무기인 도검에 대해 그 실체를 모르는 것인가.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한민국만의 독특한 현상이자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다”라고 탄식을 쏟아놓았다.

이 관장을 만나기 하루 전날(9일), 인터뷰 준비차 고려대박물관 전시회에 들렀을 때, 기자는 조선시대 칼이 불과 300여 점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은장도 같은 작은 칼은 제외하고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었거나 의식용으로 사용되었던 긴 칼, 즉 환도·패도·요도·예도 등의 숫자가 그렇다는 것이다.

국·공립 박물관과 대학 박물관, 사립 박물관, 문화재로 등록된 개인 소장품을 모두 합쳐 보아야 300자루 정도라니. 이웃 일본은 에도 시대에 제작된 골동 도검까지 줄잡아 수십만 점에 달하는데 말이다.10일 오후 경인미술관에서 이 관장을 만나 이런 궁금증부터 풀어보았다.

300여 점밖에 남지 않은 조선시대 칼
-남아 있는 칼이 왜 그렇게 적은 거죠.

“외세의 약탈 탓도 있고, 광복 후엔 미군 군속 등에게 민예품으로 팔려나간 양도 꽤 될 겁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조선시대의 칼이 소모품이자 관(官)의 지급품이었다는 사정이 크게 작용했어요. 일본과 달리 제조와 관리를 관청이 독점했거든요. 그나마 양도 많지 않았는데, 나라를 잃어버리자 병기고의 도검은 주인 없는 물건이 돼버렸습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차고 다니던 칼에 대한 강박관념이 우리에게 ‘칼은 흉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탓도 있지요. 사실 우리 선조들은 칼을 흉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음기를 제압하는 ‘양(陽)의 기물’로 인식했지요.”

-이번 전시회는 한국·중국·일본의 칼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데요, 세 나라 칼의 수준을 어떻게 보십니까.
“칼 전체의 수준이나 완성도는 솔직히 일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중국도 관제 칼은 일본제에 버금갑니다. 우리 것도 관제도검, 특히 장식적·의례적 용도로 만든 칼은 독창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다만 칼날의 성능은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경인미술관 안에 어검당(御劍堂)이라는 도검류 연구기관을 따로 설치했을 정도로 칼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신데, 도대체 언제부터 칼에 흥미를 느꼈나요.
“저희 집안이 원래 무예에 관심이 많은 쪽이었습니다. 집안에 진검도 있었고, 조선의 보도(寶刀)나 중국 칼들도 있었죠. 아버님 허락을 얻어 칼을 자세히 살펴보기도 했지요. 낡아서 이가 빠진 칼이라도 보면 왠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울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청소년기에는 칼 자체보다 칼을 쓰는 법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가고 나서 기물(器物)로서의 칼에 호기심이 발동하더군요. 대학교 2학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칼을 소장한 박물관들을 순례하기 시작했습니다.”

칼은 벽사·참사 능력 지닌 靈物
이 관장의 부친(이금홍·73)은 우리나라 현대 태권도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세계태권도 연맹 사무총장을 지냈다. 본인은 자세히 밝히기를 꺼렸지만, 이 관장도 어릴 때부터 무술을 익혀 태권도·18기 등의 고수로 알려져 있다.

-옛날에는 아이에게 두통이 생기면 부엌칼을 머리맡에 놓고 재우기도 했지요. 선조들이 칼을 영물로 여긴 게 맞는 듯한데요.
“그럼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닙니다. 동남아에서도 악몽을 꾸거나 아프면 칼을 머리 위에 놓는 관습이 있더라고요.”

-경인박물관이 소장한 무구(武具)류가 무려 1만2000점이나 된다고 들었습니다. 이만큼 모으기가 정말 힘들었을 텐데요.
“아마 대한민국의 다른 박물관 전체가 갖고 있는 무구보다 많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유물은 본래 주인이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유물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유물이 주인을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소장한 어도(御刀·임금의 칼)만 해도 1996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 나왔을 때는 아깝게 낙찰받지 못했던 물건이에요. 그런데 몇 년 뒤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것을 알게 됐고, 소장자와 2년가량 교섭한 끝에 구입하는 데 성공했어요. 이것도 우리 것은 아니겠지요. 결국 국가가 맡아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전투용 칼은 본래 사람을 벨 용도로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그런 물건을 다루다 보면 좀 섬뜩해지지 않습니까.
“그럴 때도 있어요. 실제로 경험한 일들도 좀 있고…. 저는 칼에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참사의 능력이 있다고 믿어요. 내 주변에서 새로 이사 간 집의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싶다며 사인검이나 칠성검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입수한 칼 중에는 무덤 부장품에서 나온 것들도 있는데, 어떤 것은 머리카락이나 수의 조각이 붙어 있기도 해요. 오래된 칼의 손잡이를 잡고 칼날을 빼려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고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런 칼의 날에는 십중팔구 지방흔(脂肪痕·남아 있는 기름기)이 있습니다. 사람을 베고 피를 닦아낸 후에도 남았다가 굳은 지방질 흔적이죠. 어떤 칼날은 조금 우그러져 있기도 하고요. 뼈를 베다 날이 상한 흔적일 겁니다. 섬뜩해지는 것은 원한 때문이라기보다는 칼이 지닌 기운이나 기억 때문 아닐까요.”

무강 역사 자부심 살릴 한국도검박물관 세울 터
-조선시대는 기본적으로 선비에 의한 문치(文治)였고 전투에서도 칼보다는 활이 주된 병기였으니 칼 문화가 덜 발달했다 칩시다. 그러나 현대 한국은 포항제철 같은 세계적인 제철소도 있겠다 기술도 있으니 칼을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부엌칼이라면 도루코 같은 업체가 얼마든지 잘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명품을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수요가 적어서 안 만들 겁니다. 그러나 전쟁용 긴 칼은 달라요. 제대로 복원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옛것을 추정해 흉내 내거나 일본 칼을 본뜨는 수준이지요.”

-무예도 잘하신다고 들었는데, 칼도 잘 씁니까.
“저는 칼을 휘두르거나 베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칼이라는 물건 자체가 좋을 뿐이죠. 무술에는 여러 가지 수단이 있어요. 상대가 칼을 들었고 나보다 강하다면 저는 창이나 다른 수단을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 저는 조선시대의 문약(文弱)한 특성이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저도 그래요. 조선의 칼을 시기별로 조사해 보면 평화시에는 점차 짧아졌다가 임진왜란 같은 큰 전란을 당하고 나면 다시 길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앗 뜨거워라’ 한 거죠. 미리미리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요즘도 우리나라는 칼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검류 수집은 앞으로도 계속할 겁니까.
“그럼요. 무구류 수집은 제 선대부터 30년 이상에 걸쳐 계속돼 온 일입니다. 숱한 전쟁을 겪으면서도 면면히 이어진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아닙니까. 자라나는 세대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우리의 무강의 역사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고 싶어요. 그래서 장차 한국도검박물관을 설립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엉뚱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경제위기로 새해에도 전 국민이 힘든 나날을 보낼 것으로 예상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칼이 길어져야 할 때입니까, 아니면 짧아져야 할 때입니까.
“길거나 짧은 것보다는 얼마나 견고한 칼을 만들 수 있는지가 관건일 것 같은데요. 다른 칼과 맞부딪쳤을 때 절대 부러지지 않는, 그런 정도로 견고한 칼 말입니다.”

노재현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jaiken@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 고려대박물관

중앙SUNDAY 구독신청

[J-HOT]

▶ "라면으로 버티며 개발한 특허 돈못빌려 놀려"

▶ 15조 태양광 대박에 대기업-벤처 파경위기

▶ 이효리 男스타들과 한방서 자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는

▶ "그 조종사를 용서합니다" 윤씨에 미국 감동

▶ 인구 10만명! 군보다 큰 장유면 주민들 조마조마

▶ 마이클잭슨·로열필도…"저에게 SOS 했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