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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같은 악기가 3만점 … “도시락 두드리다 인생길 열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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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창태씨가 타악기 젬배를 두드려 보이며 특성과 쓰임새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2001년 서울대 최경환 교수와 함께 국내 최초로 타악기 백과사전을 펴내기도 했다. [김경빈 기자]

어느 분야에서건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소금 같은 존재”라고 한다. 국내 음악계에서 박창태(46)씨가 똑 그런 사람이다. 그는 악기 대여 업체인 피티에스(PTS)의 대표다. 회사를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업무의 단순성이나 영세한 규모(직원 20명)로 1인 회사나 마찬가지다. 클래식이건 대중음악이건 음악과 관련된 국내 공연·행사치고 그의 신세(?)를 지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그는 특히 공연기획자나 악단, 그리고 연주자들 사이에서 ‘119’로 통한다.

“대규모 공연일수록 다양하면서도 많은 악기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 악단들이라 해도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보유 악기의 수나 종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연은 해야 하는데 필요한 악기는 없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저에게 에스 오 에스(SOS)가 오곤 하죠.”

특히 유명 지휘자들의 경우 자신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 특수 악기를 요구하곤 하는데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공연 자체를 보이콧해 관계자들이 곤욕을 치르기 일쑤다. 2003년 4월 로린 마젤 내한 때 일이다. 쇼스타코비치 5번을 지휘하면서 “반드시 40인치짜리 베이스드럼과 40인치짜리 탐탐을 쓸 것”을 서울시향에 요구했다. 하지만 시향엔 그런 악기가 없었다. 물론 박씨가 해결해 주는 바람에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현재 박씨가 보유하고 있는 악기는 어림잡아 6000여 종 3만여 점. 종류별로는 타악기가 5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전자악기 20%, 특수 악기 20%, 민속악기 10% 등이다. 단일 보유로는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은 물론 다양한 음악 수요로 세계 음악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이나 일본 등과 비교해도 질과 양 모든 면에서 단연 압권이다. 유럽의 경우 몇몇 유명 음악대학이 클래식 악기 위주로 대학마다 300~400점씩 보유한 게 고작이고, 일본도 최대 규모란 게 도쿄 근교에 있는 악기 대여 업체가 타악기만 1만 점가량 보유하고 있는 정도다. 더군다나 대중음악 악기(주로 방송용)는 미국의 경우에도 도시별로 소규모 대여 업체가 있을 뿐 이렇다 할 게 없는 실정이다.

“저희는 지금 당장이라도 어떤 장르의, 어떤 규모의 공연이든 모두 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을 갖춘 곳은 세계를 통틀어 저희뿐이라고 자부합니다. 2000년의 경우 밀레니엄이다 뭐다 해서 각종 행사가 쇄도해 어떤 날은 하루에만 크고 작은 27개 공연을 커버한 적도 있습니다.”

실제 악기 창고를 가 보면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니란 걸 대번에 알 수 있다. 기타·실로폰·트라이앵글 등 초등생도 알 수 있는 것부터 전문가가 아니면 이름조차 생소한 앙크렁·발라폰·줌줌·콩가·클라이브스·나카라·카바사·시스트럼·스피너·사론파네루스·래틀·나이팅겔 콜·첼레스타·옥타패드·행드럼 등등 모양과 크기, 소리도 제각각인 놈들이 켜켜이 공간을 꽉 채우고 있다. 그중에는 2억원짜리 하프와 3000만원짜리 5옥타브마림바 등 고가의 악기들과 지름 2m에 무게만 200㎏ 나가는 베이스드럼, 지름1.2m짜리 징 등 국내에서 유일하게 보유 중인 악기들(전체의 15% 정도가 이곳에만 있다)도 수두룩하다.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 죄다 있는 ‘악기 정글’이다. 절로 입이 딱 벌어진다. 보관 공간이 넘쳐 서울 당산동 660㎡와 장위동 231.4㎡를 비롯해 경기도 구리시 330㎡, 가평 165.3㎡ 등 모두 네 곳 1388.4㎡에 분산해 놓고 있을 정도다.


박씨가 95년 회사를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커버한 공연 횟수는 클래식 3000여 회, 대중음악 1만3000여 회 등 모두 1만6000여 회. 주요 공연으론 ▶뉴욕 팝스오케스트라 내한공연(96년)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97년) ▶도쿄 필 내한공연(98년) ▶뮤지컬 ‘틱 붐붐’ ‘겜블러’(이상 2002년) ▶오페라 ‘투란도트’, 뮤지컬 ‘유린타운’ ‘렌트’(이상 2003년) ▶뮤지컬 ‘왕과 나’ ‘청년 장준하’, 중국 심포니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이상 2004년) ▶뮤지컬 ‘명성황후’ ‘지킬 앤 하이드’ ‘돈키호테’ ‘배드 보이’ ‘아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상 2005년) ▶뮤지컬 ‘황진이’ ‘더 씽 어바웃 맨’ ‘그리스’ ‘맘마미아’(이상 2006년) ▶엔리오 모리코네 내한공연, 뮤지컬 ‘그리스’ ‘맨 오브 라만차’ ‘렌트’ ‘맘마미아’(이상 2007년) ▶중국 발레 ‘홍등’,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 서태지와 로열 필(이상 2008년)〉등 굵직굵직한 것은 모두 포함돼 있다.

“국내 팀들은 자기네가 없거나 부족한 악기만 빌리지만 외국 팀의 경우 대부분 항공 수송비 부담 때문에 쉽게 휴대할 수 있는 손악기를 제외하고 거의 많은 악기를 현지 조달해요. 적게는 10가지에서부터 보통 30~50가지의 악기를 빌려 주죠. 마이클 잭슨 공연 때는 베이스드럼·탐탐·팀파니 등 30여 가지, 엔리오 모리코네 공연에는 차임벨·베이스드럼·하프·신시사이저 등 30여 가지를 빌려줬고, 올 9월 있었던 서태지와 로열 필 공연에도 하프·팀파니·베이스드럼·마림바·첼레스타 등 50여 가지나 빌려줬습니다.”

박씨의 원래 ‘신분’은 타악 연주자다. 그가 다룰 줄 아는 타악기만 400가지쯤 된다. 그래서 그에게 악기는 사실 사업도구이기 이전에 인생 자체다. 다만 연주활동을 하면서 부족한 악기를 하나 둘 장만하다 보니 어느새 ‘악기 부자’가 됐고, 음악인들 사이에 소문이 나는 바람에 자연스레 사업으로까지 연결된 것뿐이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집안의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박씨가 악기와 인연을 맺은 건 중3 때부터. 소풍 가서 도시락을 까먹은 뒤 두드리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잘한다”는 소리를 한마디 한 게 계기가 됐다. 그 길로 학원을 찾아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고교에 진학해선 아예 밴드부에 들어갔다. 공부보다는 두드리는 게 좋았던 탓에 선택한 것이었지만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맘고생을 많이 했다. 고2 때 타악 연주로도 잘만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족들의 허락을 얻어 본격적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스승은 국내 클래식 타악의 선구자이자 대부로 당시 국립교향악단 팀파니스트였던 박동욱(76·현 한국타악인회 명예회장) 선생. 박 선생을 3년간 사사한 뒤 81년 경희대 음대에 들어간 그는 공군 군악대를 거쳐 폴란드의 쇼팽음악원 디플롬 과정을 이수(94년)하는 등 주목받는 타악인으로 성장했다. 대학 시절 이미 서울시향, 인천시향, KBS교향악단의 객원연주자로 프로에 입문한 그는 89~97년 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이어 97년부터 2006년까지 춘천시향 팀파니 수석주자로 왕성한 연주활동을 했다. 지금도 한국타악기오케스트라(KPO·2006년 창설)의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악기 수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박 선생에게 레슨을 받으면서다. 당시만 해도 실습할 악기가 없어 도화지에 마림바를 그려 음정을 익히면서 그는 악기에 대한 갈증을 심하게 느꼈다. 그래서 어머니를 졸라 얻은 용돈으로 악기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객원연주자로 돈을 벌게 되자 모조리 악기 구입에 털어 넣은 것은 물론 이후 프로가 되면서 ‘증세’가 더 심해졌다. 93년 무렵이 되자 어느새 악기가 130가지쯤 모였고, 알음알음으로 소문이 나면서 악기를 빌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울시향의 창작발표회에 특수 심벌즈 30점을, 뮤지컬 ‘캣츠’에 팀파니 등 10여 가지를 빌려 줬다. 사례비조로 푼돈이 들어왔다. 그 돈으로 다른 악기를 샀다. 워낙 악기 수집에 미쳐 있던 터라 재미가 있었다. 비록 아마추어적이지만 악기 대여 사업은 이렇게 출발했다.

“재미 삼아 3년 해 보니 악기가 1000가지쯤 되더라고요. 물론 그때는 모두 타악기 일색이었지만 국내 최대 규모였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하면 돈도 벌고, 악기도 벌 수 있을 것 같아 95년 11월 정식으로 회사를 차린 겁니다.”

처음엔 순탄하게 굴러갔다. 하지만 97년 대중음악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경영난에 빠져들었다. 전셋집을 월세로 돌리고 결혼 패물은 물론 자식같이 아끼던 악기까지 팔아야 했다. 심지어 유치원 강사까지 하루 서너 군데씩 뛰어다니며 벌어 직원들 월급을 주었다. 그렇게 4년을 버티자 점차 대중음악 쪽까지 알려지면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당시 고통을 주었던 당산동 대중음악센터는 녹음실과 연습실(두 곳)을 갖춰 지금은 가수들 사이에 “없어서는 안 될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훈아·신승훈·김건모·테이·강타·홍서범·김장훈 등 이곳을 애용하는 가수가 많아 종종 방송을 타기도 한다. ‘이하나의 페퍼민트’ ‘개그콘서트’ ‘열린 음악회’ ‘국악한마당’ 등 현재 일거리 중 30% 정도가 방송일인데 모두 이곳에서 담당한다.

박씨 회사가 소화하는 공연 건수는 월 평균 100여 건 정도. 요즘 같은 연말과 축제의 계절엔 두 배 정도 된다. 직원 20명이 특수차량 11대(5t 1대, 2.5t 3대, 1t 7대 )로 전국을 커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돌아친다. 전문요원들이 요청받은 악기를 싣고 현장에 가 설치까지 해 주는 ‘원터치 시스템’이라 음악인들에겐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하지만 매출액은 고작 월 5000만원 정도다. 겨우 현상 유지 수준이다. 시작할 때부터 환율 600원 수준으로 워낙 악기 임대료를 싸게 책정한 데다 고객들이 대부분 동료라 “야박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선뜻 올리지 못하는 그의 온정(?) 때문이다.

“솔직히 돈만 생각하면 이 일을 하지 못합니다. 저도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동료들의 사정을 잘 알거든요. 나름대로 음악 발전에 일조한다는 생각에 꾸려가고 있고, 또 보람이 있습니다.”

박씨에겐 한 가지 꿈이 있다. 악기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개념의 박물관이다. 음악의 저변확대를 위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론 전 세계 유명 작곡가들이 찾아와 며칠씩 묵으며 직접 악기의 특성을 파악해 좋은 곡을 쓸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만훈 전문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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