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레터] ‘출판 진흥책’ 백약이 무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1 매년 출판학 전공 대학·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장학생을 선발해온 범우출판재단이 올해는 박사과정 장학생을 뽑지 못했습니다. 대상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재단측 설명입니다. 1998년 박사과정 장학금을 지원하기 시작한 이래 장학생을 못 뽑기는 처음이랍니다. “출판 전공 박사과정 학생이 없어 저작권법을 전공하는 법학도 등 관련 전공 학생까지 범위를 확대시켜 봤지만 대상자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출판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기 때문일까요. 재단의 상무이사를 맡고 있는 이두영 대한출판문화협회 전 사무국장은 “한때 16개에 달했던 전문대학의 출판 관련학과가 이제 4개로 줄어들었다”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출판에 관심이 아예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습니다.

#2 지난 9월부터 북리펀드 운동을 벌이고 있는 교보문고·NHN 등은 요즘 참여율 제고를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북리펀드 운동은 독자들이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책을 다시 반납하면 책값의 50%를 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반납된 책은 전국 마을 도서관과 문화 소외지역에 기증한다고 하니 독서 문화 진흥과 소외계층 지원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호응이 기대 이하였습니다. 첫 달인 지난 9월. 북리펀드 대상 도서 2만 권 중 팔린 책은 2010권에 불과했고, 이 중에서 반납된 책은 232권 뿐이었습니다. 지난달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2193권 판매, 318권 반납에 그쳤답니다.

#3 독서진흥운동의 일환으로 지난달 18일 파주출판도시에서 개막한 ‘2008 북쇼’. 폐막(16일)을 코 앞에 두고 있지만 끝내 분위기는 달아오르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볼거리는 많습니다. 출판도시 한가운데 있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는 전시회 ‘북쇼 전’이 한창입니다. 세로 6.6미터, 가로 4미터 크기의 대동여지도 대형 원본과 『님의 침묵』『혈의 누』등의 희귀초판본을 만날 수 있는 자리지요.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전모를 꼼꼼히 기록한 『개국오백사년팔월사변보고서』와 1892년 출간된 ‘춘향전’의 프랑스어판 『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e)』 등도 전시 중입니다. 하지만 관람객 수는 평일 200∼300명, 주말 1000명 수준에 불과합니다. 방송사인 KBS가 공동 주최로 나섰는데도 별 반향이 없었습니다. 북쇼를 홍보하기 위해 행사 기간 중 매주 월·화요일 KBS 1TV를 통해 30분씩 방송됐던 ‘KBS 북쇼 중계석’. 그 시청률도 참담합니다. 10, 11일 시청률은 각각 1.1, 0.8%(AGB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 결과)에 불과했답니다.

‘백약이 무효’인 듯 총체적 난국에 빠진 요즘 출판계의 풍경입니다. 북리펀드까지 외면당하는 형편이니 단순히 불경기 때문이라고 핑계 대기도 석연치 않습니다. 연암 박지원은 『연암집』에서 ▶책을 향해 하품을 해서도 안 되고 ▶책을 앞에 두고 기지개를 켜서도 안 되고 ▶책을 베고 누워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또 책으로 그릇을 덮지도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젠 책을 베개 삼고, 뚜껑 삼을 만큼 책과 밀착된 풍경이 차라리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책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훈계가 필요할 정도로 책과 멀어져 버린 세태. 연암도 짐작 못한 현상 아니겠습니까.

이지영 기자

[J-Hot]

▶ "나처럼 사업하다 망해서 온 사람들 '바글바글"

▶ 연천군 한 산에 오른 교수, 입이 딱 벌어져

▶ 고액연봉 포기, 결혼도 못하고 외길 걸어온 결과

▶ "벤츠·BMW 대신 구입" USA투데이 극찬 한국차

▶ IQ 185의 자폐아, 하마터면 능력 묻힐 뻔

▶ '물 반, 쓰레기 반'인데 어부들은 싱글벙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