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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리더십, 선수를 ‘더 뛰게 더 강하게’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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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80년대 중앙대 농구를 일으킨 당시 정봉섭(66) 감독은 낚시의 달인이었다. 정 감독이 허재(현 KCC 감독)의 아버지와 낚시 친구가 되어 농구 천재를 낚아 올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정 감독은 김유택·한기범·강동희 등 월척을 잡아 중앙대 농구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정 감독은 지난해 2월 중앙대 체육부장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러나 중앙대 농구는 지금도 80년대 못지 않은 전성기를 맞고 있다. 중앙대는 7일 끝난 2차 대학연맹전까지 51연승을 하고 있다. 요즘 대학 농구는 평준화 추세다. 프로가 생긴 후 뛰어난 고교 농구 선수들은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대학을 택해 흩어진다. 한 팀이 연승을 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현 중앙대 감독인 김상준(40·사진)씨는 제 2의 정봉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 감독은 부임 후 57승1패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김 감독은 정봉섭씨처럼 선수를 낚기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낚는다. 그는 “선수들에게 목표의식을 고취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면 힘든 훈련도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2년 전 부임 초기 때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자 함지훈·강병현 등 고학년 선수들이 “이렇게 고되게 훈련하지 않아도 프로에 갈 수 있다”고 반발했다고 한다. 김 감독은 “프로에 입단하는 게 너희의 목표라면 운동을 그만두어라. 최고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함께 훈련하자”고 설득했다.

대학 농구 선수들이 고된 훈련이나 코칭스태프와의 갈등 등으로 팀에서 집단 이탈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김 감독 부임 후 중앙대에선 이런 일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경기 도중 실수한 선수에게 다그치지 않는 대학 감독은 김 감독이 거의 유일한데도 선수들은 그의 작은 목소리도 귀 기울여 듣는다.

그는 명지고·중앙대를 거쳐 91년 한국은행에 입단했다. 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 팀 동료들은 대부분 안정된 직장을 택해 한국은행에 남았는데 그는 농구 유니폼을 벗지 않았다.

프로선수 생활은 2년에 불과했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한국은행에서 많은 연봉을 받는 옛 동료들을 한 번도 부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 강원도 홍천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면서 명지중 농구팀을 지도하다 2006년 중앙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농구에 빠져 아직 결혼도 못했다. “농구와 아이들이 나의 가족”이라고 김 감독은 말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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