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무당이 떼로 온다, 대관령 옛길 ‘신의 터’ 비밀

  • 카드 발행 일시2024.05.21

“위패를 든 제관과 화려한 색동저고리를 입은 수십 명의 무당이 신목(神木)을 앞세우고 산을 내려가는 광경은 그 자체로 대단한 퍼포먼스예요. 그 행렬을 따라 같이 걸고 있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듭니다. 신화 속 한 장면 속을 보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대관령 국사성황당에서 강릉 방면으로 내려가는 대관령 옛길은 신화가 펼쳐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 신목의 행렬은 (앞선 무당이) ‘아이고 다리 아프다’ 하면서 길에 털썩 주저앉으며 멈춰 서기도 하는데, 신을 모시는 행차 중에 벌어지는 그런 인간적인 면모도 좋고요.”

사진가 이한구(56)가 말했다. 동해안 일대 무당들이 한데 모이는 이 행렬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인류 구전 및 문화유산 걸작)에 등재된 강릉단오제(음력 5월 5일)의 서막을 알리는 행사다. 매년 음력 4월 15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국사성황당 일대에서 펼쳐지는데, 올해는 22일 거행된다. 지난 17일 이 작가와 함께 이 길을 걸었다. 산악인이자 사진가로 살아온 그는 지난 한국의 산에서 살며 기도하고 굿 하는 만신(무녀)들을 기록해왔다. 지난 4일부터 갤러리 류가헌에서 이를 주제로 한 사진전을 열고 있다.

5월 17일, 사진가 이한구가 대관령 국사성황당과 산신각 사이 오솔길을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5월 17일, 사진가 이한구가 대관령 국사성황당과 산신각 사이 오솔길을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평창군 대관령마을휴게소에서 약 1.5㎞ 지점, KT 대관령중계소 바로 아래에 있는 국사성황당은 강원도를 즐겨 찾는 트레커라면 한 번쯤 지나쳤을 법한 곳이다. 선자령 트레킹 코스 바로 아래에 있으며, 강릉을 대표하는 걷기길 ‘바우길’ 2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이 능선은 백두대간 마루금(능선)이 지나는 곳이다.

주차장에서 국사성황당을 올려다보았다. 무성하게 잎을 틔운 신갈나무들 사이로 작은 신당(서낭)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황당 오른편엔 대관령 산신 김유신(595~673)을 모신 산신각이 자리 했다. 깊은 산골짜기 맨 끝자락에 보일듯 말듯 자리 잡은 산신령의 거처. 신력(神力)이나 도력(道力)과는 무관한 보통 사람이 보기에도 ‘신의 터’로 보였다. 이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의하면 신라의 국사 범일(梵日)이 대관령 서낭신이 됐다. 그는 나라에 난이 일었을 때 신묘한 술법을 써서 적을 물리쳐 이 고장 일대를 구했다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눈 내린 날 아침의 대관령 산신각. 사진 이한구

눈 내린 날 아침의 대관령 산신각. 사진 이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