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청년 왜 눈물 흘렸나…포항 '천자봉'만 아는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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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더중플 - 대한민국 해병대 찬가 '우리가 해병이다'

여러분. ‘해병대’에서 무엇이 떠오르나요?

좋게 말하면 상남자들, 나쁘게 말하면 마초이즘으로 가득한 무리라 생각들 할 겁니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고, 생각하기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기수와 빨간 명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고요.

포항시 해병대 산악훈련장에 해병대 문구가 적힌 팻말. 해병대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김종호 기자.

포항시 해병대 산악훈련장에 해병대 문구가 적힌 팻말. 해병대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김종호 기자.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입니다. 해병대의 주 임무인 상륙작전은 앞과 좌우는 적, 뒤는 바다인 사지(死地)로 뛰어들어가는 군사작전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를 북돋으려 해병대만의 독특한 집단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또 상륙작전에 성공하려면 적의 허를 찔러야만 한다. 해병대가 영리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군대로 알려져야만 적이 두려워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간다고요? 중앙일보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https://www.joongang.co.kr/plus)’의 ‘우리가 해병이다’에서 우리가 몰랐던 해병대의 진면모를 발견한다면 납득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①해병대로 거듭 태어나는 ‘천자봉’ 행군

대한민국 해병대원이거나 해병대를 나온 사람이라면 ‘천자봉’과 ‘빨간 명찰’이란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울컥해진다고 합니다.

1303기 빨간 명찰 수여식에서 훈련병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종호 기자

1303기 빨간 명찰 수여식에서 훈련병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종호 기자

천자봉은 경상북도 포항시 운제산의 대왕봉입니다. 해병대만이 이곳을 천자봉이라고 부릅니다. 원래 천자봉은 경상남도 진해 웅산에 있었습니다. 1949년 진해에서 해병대가 창설된 뒤 해병 1기 380명 전원이 이곳을 뛰어오르는 훈련을 벌인 게 시작입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이 1985년 포항으로 옮기고 나서는 새 천자봉으로 행군하고 있습니다.

해병대는 장교ㆍ부사관ㆍ병사를 가리지 않고 양성과정 훈련 마지막에 천자봉 고지정복 훈련(행군)을 받습니다. 이 훈련이 끝난 뒤에야 해병대의 상징인 간 배경에 노란색으로 이름을 새긴 빨간 명찰을 달 수 있습니다. 빨간 명찰은 ‘해병은 피(빨강)와 땀(노랑)으로 빚어진다’는 구호를 상징합니다. 빨간 명찰 수여식 때 우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왜 우는지 물어봤습니다. “내가 대견해서”“그동안 힘든 훈련이 생각나서”“감격스러워서” 등 다양한 답이 나왔습니다.

피와 땀을 흘리며 완수한 천자봉 행군은 해병대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식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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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명찰’은 왜 그를 울렸나…‘해병 성지’ 천자봉은 알고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0806

②연평도의 포문은 늘 북쪽을 조준하고 있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서해5도 방어입니다. 서해5도는 서해의 백령도ㆍ대청도ㆍ소청도ㆍ연평도ㆍ우도 등 다섯 섬을 말합니다. 연평도를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나눈 뒤 한데 묶어 서북도서라고도 합니다.

연평부대 포7중대의 K9 자주포. 북한의 무력 도발에 바로 반격할 수 있도록 포문은 늘 북쪽을 향해 주요 목표물을 조준하고 있다. 박영준 작가

연평부대 포7중대의 K9 자주포. 북한의 무력 도발에 바로 반격할 수 있도록 포문은 늘 북쪽을 향해 주요 목표물을 조준하고 있다. 박영준 작가

북한은 1970년대부터 서해5도를 호시탐탐 노렸습니다. 서해5도를 기준으로 북방한계선(NLL)이 그어졌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무력화하려면 서해5도를 침탈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NLL은 수도권의 방화선, 서해5도는 수도권의 방파제라고도 합니다. 또 황해도 코앞에 있는 서해5도는 북한 목에 들이댄 비수(匕首)와 같습니다.

해병대 연평부대는 북한의 무력 도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연평도와 소연평도, 우도를 지키는 부대입니다. 북한은 1999년(제1연평해전)과 2002년(제2연평해전) 연평도 앞바다에서 싸움을 걸었고, 2010년엔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하기도 했습니다. 섬 곳곳엔 그때의 상처가 남았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때 숨진 서정우 하사의 모표(모자에 붙이는 마크)가 날아가 박힌 소나무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연평도는 위태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연평부대가 철통같이 지키기 때문이죠. 특히 연평도 포격전에서 활약상을 보여준 포7중대는 날이 시퍼렇게 서 있었습니다. 연평부대는 명령만 떨어지면 5분 안에 반격할 준비를 갖췄습니다. 또 포격전 당시 연평부대는 물론 연평도 주민도 힘을 보태 모두가 똘똘 뭉쳐 북한을 이겨냈습니다.

포7중대장의 말이 생각나네요. “저놈들이 한 번 더 (연평도로) 쏘기만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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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소나무에 박힌 채…해병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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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해병대는 육ㆍ해ㆍ공군보다 숫자가 적지만, 해병대 예비역은 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ㆍ스포츠 등 여기저기서 도드라진 존재감을 내비쳤습니다.

해병 1기 고 이봉식 옹. 지난 3월 22일 별세한 이 옹은 6ㆍ25 전쟁 때 통영상륙잔전, 인천상륙작전, 도솔산 전투를 치른 해병대의 전설이다. 최근까지 대한민국 6ㆍ25참전 유공자회 경상북도 지부 고문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6월 해병대 제1사단을 찾아 강연하고 후배들을 격려하는 등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을 몸소 보여줬다. 사진 해병대

해병 1기 고 이봉식 옹. 지난 3월 22일 별세한 이 옹은 6ㆍ25 전쟁 때 통영상륙잔전, 인천상륙작전, 도솔산 전투를 치른 해병대의 전설이다. 최근까지 대한민국 6ㆍ25참전 유공자회 경상북도 지부 고문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6월 해병대 제1사단을 찾아 강연하고 후배들을 격려하는 등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을 몸소 보여줬다. 사진 해병대

해병대 출신 기업인으로 고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대표적입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70년 귀국한 뒤 해병대에 자원입대하는 것도 모자라 베트남 전쟁에 파병돼 수색중대에서 10개월간 복무했습니다. 김석원 회장의 두 아들과 그의 동생인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도 해병대를 나왔습니다.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은 해병대를 나온 뒤 적극적이고 외향적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고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은 ‘서울대 출신 해병대 병사 1호’였습니다. 그는 국회의원 시절이었던 2003년 이라크 파병 법안이 논의될 당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준비돼 있다. 이라크 현지에서 지원병으로 한 달 복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가수 남진(김남진)은 최전성기이었던 1968년 해병대에 입대해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10대 소녀팬들이 남진을 배웅하기 위해 부산까지 쫓아와 울었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로 잘 알려진 김정택 신부는 “해병대에 안 갔으면 사제가 못 됐을지 모른다. 신학생 시절 ‘이렇게 사는 것이 최선인가’ 하며 마음이 흔들려 해병대에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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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덕분에 반도체 택했다” 삼성 엘리트 연구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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