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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동서 놀던 아이가 왜 노르웨이 있나...엄마는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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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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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에서 숙박업을 하는 최영자(72)씨는 1975년 여름 이후 악몽 같은 48년을 보냈다. 네 살이었던 아들 백상열 군이 대방동 집 앞에서 소독차를 따라갔다가 사라졌다. 명문대를 나온 남편과 넉넉하게 살던 최씨의 삶은 엉망이 됐다. 최씨는 상열이의 사진을 들고 전국을 다니기 시작했다. 곳곳에 아들을 찾아달라는 신고를 했지만, ‘못 찾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던 지난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상열이로 추정되는 남성이 노르웨이에 있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반백이 된 중년 남성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단박에 상열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전혀 다른 이름으로 살아온 상열이는 한국을 찾았고 최씨와 상봉했다. 최씨는 “아들을 안는데 냄새에서 상열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다”면서 “엄마는 아들의 냄새를 안다”고 말했다.
곧이어 의문이 엄습했다. 집 앞에서 사라진 아이가 어떻게 노르웨이로 갔을까. 아들이 보내 준 관련 서류들을 통해 상열이가 실종 직후 해외로 입양된 사실을 알게 됐다.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서였다.

〈실종아동의 날 맞아 해외 입양 정보 찾는 부모들〉

‘이름 잘 외운다’ 기록된 아이, 실종 후 노르웨이인 부부에 입양

48년 간 전국 돌아다닌 엄마 “홀트 몇 번이나 갔는데 왜 그랬나”
홀트 서류 “산토끼·송아지 동요 부르고 어른 잘 따라, 입양 적합”
해외서 찾은 자녀 “왜 날 버렸냐” 원망, 두 번 우는 실종아동 부모

지난 17일 오후 2시쯤 최씨가 운영하는 숙박업소에 찾아갔다. 최씨는 분노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상열이가 실종된 이후 3년 동안 서울 마포에 있던 홀트아동복지회를 몇 번이나 찾아갔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 최씨는 “3년 전 쯤에도 실종 아동 부모들과 함께 홀트를 방문해 우리 아이가 입양된 건 아닌지 물어봤는데 그때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노르웨이에서 보낸 자료엔 당시 상황이 상세히 담겨있었다.
서류 속 아이는 얼굴이 같지만, 인적사항이 전혀 달랐다. 입양을 앞두고 새로운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최씨의 증언과 서류 기재 내용을 종합하면 상열군은 실종 직후 수원시청에 의해 한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1975년 7월 12일이다. 불과 한 달 뒤인 8월 13일에 홀트에 접수가 됐다. 석 달 만인 11월 14일에 입양 서류가 작성됐다. 상열이는 노르웨이 비자를 받고 12월 22일 한국을 떠났고 23일 노르웨이에 도착했다. 부모가 전국을 다니며 아이를 찾고 있을 때였다.

48년만에 유전자 검사로 해외 입양된 아들 상열(52)씨를 찾은 최영자(72)씨가 "이 사진과 서류를 들고 홀트를 여러 번 찾아갔으나 소용 없었다"고 말했다. 강주안 기자

48년만에 유전자 검사로 해외 입양된 아들 상열(52)씨를 찾은 최영자(72)씨가 "이 사진과 서류를 들고 홀트를 여러 번 찾아갔으나 소용 없었다"고 말했다. 강주안 기자

당시 서류에 적힌 상열이의 주소를 찾아가 보니 서울 합정역 인근의 거대한 건물이 나온다. ‘홀트아동복지회’ 간판이 걸려 있다. 홀트 측의 입장을 들어보려 전화를 했으나 받은 사람마다 “나는 잘 모른다”면서 홍보팀에 연락하라고 말했다. 홀트 홈페이지에 나온 이메일 주소로 여러 부서에 메일을 보냈으나 답신이 오지 않았다. 세 차례 직접 홀트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직원과 얘기할 수 없었다.

서울 합정역 인근에 있는 홀트아동복지회 건물. 강주안 기자

서울 합정역 인근에 있는 홀트아동복지회 건물. 강주안 기자

지난해 홀트 관계자가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연관된 대목이 나온다. 홀트 측은 해외 입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관련해 “대부분의 복지 분야에서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는데 해외 입양은 입양 부모가 전적으로 부담 지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여기에서 많은 오해가 빚어졌다”고 말했다. 또 ‘해외 입양이 없어지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라는 질문엔 “의료상의 문제 또는 장애가 있거나, 생모가 임신 중 위험 약물을 복용했거나, 유전적 질환 가족력이 있거나, 여기에 더해 남자아이면 국내에서 입양 가정을 찾기가 극도로 어렵다”면서 “국외에서라도 아동에게 가정을 찾아줘야 한다는 것이 헤이그 국제아동입양 협약의 정신”이라고 답했다.

홀트측 방문·전화·메일에 대답 안해

그러나 상열이의 입양 관련 서류를 보면 장애, 질환과 무관함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매우 건강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어른도 잘 따른다고 서류에 작성돼 있다. 입양에 적합하다(Adoptable)는 내용도 나온다.

‘신체적, 감정적으로 건강하다. 아랫니와 윗니가 각각 10개씩 있다. 산토끼, 송아지 같은 동요를 부른다. 스스로 유아 용변기를 이용한다. 컵에 물을 잘 따라서 흘리지 않고 마신다.’
그런 상열이가 노르웨이로 떠났고 48년 만에 모친과 연결됐다. 부친은 7년 전 사망했다. 자식을 찾은 부모에게는 뜻밖의 상황이 닥친다. 자식은 부모가 버렸다는 오해를 한다. 해외 입양아들이 부모를 안 찾는 이유 중 하나다. 최씨 역시 상열씨에게 버린 게 아니라는 설명을 해야 했다. 다행스럽게 실종 직후 전라남도에서 보낸 낡은 통보서가 한장 남아있었다. 이 서류에 상열씨의 오해가 풀렸다고 한다.

TV 노래자랑 영상에 오해 풀려

미국에 입양된 아들 전순학씨를 찾은 김은순씨도 비슷한 고충을 겼었다. 충남 홍성에 사는 김씨는 40년 동안 아들을 찾아다닌 끝에 전주의 한 보육원에서 순학씨의 사진을 발견했다. 김씨는 “경찰관과 보건복지부 직원이 함께 가서야 서류를 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들이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성장한 사실을 알게 돼 꿈만 같았다. 역시 왜 찾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실종 아이가 해외 입양되면 부모가 받는 오해다. 김씨는 오래전 TV 노래자랑에 나간 적이 있다. 순학씨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를 걸고 “아들 순학이를 찾기 위해 나왔다”고 말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김씨는 “아들이 영상 통화를 하면서 울더라”고 말했다. 수십 년의 생이별은 언어 장벽도 만들었다. 최씨는 “상열이가 한국말을 못하니 통화를 해도 꼭 옆에서 통역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식의 안전을 확인한 부모는 다른 실종 아동 부모의 꿈이 된다. 자식을 찾지 못한 대다수 실종 아동의 부모는 전단을 돌리고 아동 보호 시설을 찾아다니는 일을 포기하지 못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20년 이상 장기 실종 아동이 1000명 정도”라고 밝혔다. 그러나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는 “실제 실종 아동 숫자는 10배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는 직장 생활을 제대로 못 하고 가정이 깨지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한다. 전단 배포는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수거 작업이 더 힘들다. 받아서 길에 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부모들은 아이가 밟히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다. 수거팀이 함께 움직이며 남은 전단을 소각하는데 이때 부모들은 많이 운다.

실종아동 생각하는 ‘특별한 저녁’

실종아동의 날(5월 25일)이 되면 관련자들이 모인다. 심리상담·콘텐트 제작 등 전문가 그룹인 ‘3355콜렉티브’가 실종아동협회측과 오는 30일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당연하지 않은 저녁식사’라는 행사를 마련했다. 각계 인사들이 식탁에서 실종아동이 돌아오길 빈다. 실종된 아이들이 좋아했던 음식으로 구성한 ‘도연이의 참기름 깨소금 라면’과 ‘순옥이의 배추김치’ 등이 메뉴다. 테이블마다 한 자리를 비워 실종아동이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정혜수3355콜렉티브 대표는 “실종아동의 문제가 '그들의 비극'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로 인식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서지은 홍보 담당은 “실종 아동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변화를 불러일으키면 좋겠다”고 했다.

실종 아동이 잇따라 해외서 발견되자 부모들은 입양 기관의 협조를 요구한다. 2000년 5월 네 살 난 아들 진호 군을 잃어버린 최명규씨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지난 14일 오전 7시쯤 경기도 화성에서 주택 수리 일을 하는 그를 찾아갔다. 최씨는 “진호는 해외에 입양 갔거나, 다른 집 또는 섬에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며 “일을 다닐 때마다 주변의 작은 시설 등을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서기원 대표는 “홀트를 비롯한 입양기관들 자료만 제대로 살펴도 실종아동의 50%는 찾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입양기관 협조 요청했으나 거부”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 수사 사항이 아닌 한 입양 기관의 협조를 얻어야만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며 “과거에 입양기관에서 협조를 거부했던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일단 다시 한번 입양기관에 협조를 요청해 보겠다”고 말했다.
상열씨에 관한 홀트의 서류엔 이런 대목이 있다. ‘이름, 나이, 성별 등을 물으면 명확히 대답한다.’(Clearly answer his name, age, sex, etc. if asked.) 상열씨 모친은 “실종 당시 상열이가 이름은 물론 집 전화번호도 분명히 외웠다”고 말했다. 이런 아이가 왜 부모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 직후 해외로 입양 가게 됐는지 진상 규명이 안 됐다. 결과에 따라 장기 실종아동 1000명을 찾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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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입양 정보 경찰에 공유해야"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

이건수(사진)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22일 “해외 입양 자료를 경찰에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종 아동 부모가 해외 입양 문제를 제기한다.

“경찰과 정보 공유만 잘 돼도 입양은 물론 실종 가족의 문제도 많이 해결된다고 본다.”

-과거 입양 방식에 허점이 있다면.

“해외에 입양 보내려면 아이의 호적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해외 입양 기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데.

“입양기관을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 새 가족을 만들어 주는 귀한 일도 한다. 그러나 어두운 이면도 있으니 경찰 등 관련 기관과 협력을 해야 한다.”

-또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미국이나 캐나다·호주처럼 실종자에 대해선 나이 제한 없이 가족을 전문적으로 찾아주는 통합 업무 기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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