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탕!” 첫사랑은 즉사했다…98세 김수영 아내의 회고 [백년의 사랑]

  • 카드 발행 일시2024.06.07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가 들려주는 ‘백년의 사랑’ (1)

1968년 6월 15일 밤.

술에 취한 중년의 사내가 서울 마포구 구수동 언덕길을 비틀거리며 걸었다. 버스 두 대가 엇갈려 다가왔다. 언덕을 넘던 버스 기사는 반대편 버스가 올려 쏘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부셔 행인을 보지 못했다. 육중한 버스는 그대로 사내의 뒤통수를 쳤다.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풀은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지만, ‘풀이 눕는다’를 쓴 시인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반백 년도 못 채우고 떠난 김수영(1921~1968) 시인의 최후였다.

그가 산 시간보다 죽은 뒤의 시간이 더 많이 흘렀다. 김수영이 시에서 ‘여편네’라 멸칭하고 때론 ‘아내·처’라 썼던 뮤즈, 1927년생 김현경 여사는 이제 백수(()())를 바라본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 여전히 김수영 시인의 기억을 안고 홀로 사는 그를 만났다.

혼자 살기엔 넓다 싶은 50평대 집이지만 곳곳에 책이 들어차 빈 공간은 많지 않았다. 거실 테이블엔 최근까지도 펼쳐본 듯 김수영 전집이 놓여 있었다.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를 인터뷰하러 오신다길래 내가 김수영 시인 여편네라는 건 아실 텐데, 우리 나이로 98세라는 것도 알고 오시는 건가? 다시 전화해서 내 나이를 알려드려야 하나 하고 생각했어요.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그는 최근 1년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앓느라 체중이 10㎏은 빠졌다고 했다. 3주 전 바지를 갈아입다 넘어져 갈비뼈와 척추에도 금이 갔다고 한다. 여전히 통증이 있다면서도 지팡이 없이 걸어 나와 손님을 맞았고, 의자에 꼿꼿이 앉아 응대했다. 보청기를 양쪽에 끼고 있었으나 눈빛은 형형했다.

그에게 사랑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100년의 사랑 이야기를.

우리 김 시인하고의 사랑은 좀 이색적이지. 그 양반이 정말 깊은 사랑을 한 것 같아요.

그러나 이야기는 서로 다른 각자의 첫사랑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