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자동차 통상 압박, IRA 폐기, 디커플링 확대 등에 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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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미 대선 전망...'트럼프 2기' 되면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오는 11월 5일 치르는 미국 대선이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전 세계는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출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동맹인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한·미동맹 7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했지만, 트럼프가 다시 권력을 잡으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미군 감축 또는 철수 가능성 등 태풍급 변수가 한둘이 아니다.

 외교·안보 분야와 달리 경제·통상 이슈는 얼핏 다소 비켜나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2.0 시대가 올 경우 중국·유럽연합(EU) 뿐 아니라 한국도 관세 폭탄을 비롯해 자유무역협정(FTA) 재재협상 등 지뢰밭이 적지 않다. 특히 수출로 생존하는 개방경제인 한국의 2022년 대외무역 의존도가 97%나 됐고, 미국의 10대 무역 적자국 중 한국이 8위여서 트럼프 측이 이런저런 트집을 잡을 수 있다.

대미 협상 경험이 풍부한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트럼프 2기' 등장 가능성 등을 화제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앞에서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했다. 장진영 기자

대미 협상 경험이 풍부한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트럼프 2기' 등장 가능성 등을 화제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앞에서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했다. 장진영 기자

 유명희(57) 서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는 2019년 2월 여성 공직자 중에서 사상 처음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발탁됐다. 서울대 영문학과와 행정대학원(정책학 석사), 미국 밴더빌트대학 로스쿨을 졸업했다. 1991년 행시 35회 합격 이후 공직에 입문했다.
 그는 대한민국 통상 역사와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에 가입한 1967년에 태어나 WTO가 출범한 1995년에 통상산업부에서 통상 업무를 시작하고, 무역으로 고속성장한 한국경제의 발전상을 현장에서 목했다.

한·미 FTA 재협상 이끈 ‘산 역사’
“핵심기술ㆍ공급망 확보해가야”

라이트하이저 재차 중책 맡을 듯
트럼프 2기 관세 무기화 예상돼

자동차 대미흑자 타깃될 우려
트럼프 돌출 협상술 연구 필요

 트럼프 2.0 시대의 도래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그를 만났다. 통상 분야에 몸담은 20여년(1995~2022년) 중에 2006년 2월 시작된 한·미 FTA 최초 협상에 분과장으로 참여했고, 2018년 개정 협상에는 수석 대표로 팀을 이끌었다. 특히 트럼프 1기 시절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통상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오래 친분을 쌓았다. 트럼프 집권 시 라이트하이저는 차기 재무장관으로 거론된다. 그는 지난달 한 대담에서 트럼프 2기의 3대 최우선 통상 정책으로 중국과의 전략적 디커플링(탈동조화), 기술 전쟁 승리, 무역적자 감축을 제시했다.

 미국이 손 볼 1, 2 순위는 멕시코와 중국
 -트럼프 2기에 누가 USTR 대표로 중용될까.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트럼프 캠프 경제·통상 정책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어 2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다. USTR 대표는 이미 역임했으니 다른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누가 USTR 대표가 되든지 트럼프 2기에 통상 당국은 무역수지 적자 개선 등을 내세워 일방주의적 관세 및 비관세 조치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경쟁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EPA·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경쟁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EPA·로이터=연합뉴스]

 -역대급 '무역 전쟁'의 태풍이 불까.
 "트럼프 재집권 시 무역 압력의 우선순위 1, 2번은 멕시코와 중국이고, 3번은 유럽연합(EU)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입장에서 최대 무역수지 적자국은 중국이지만 매년 적자가 줄어드는 데 반해 멕시코는 2위이지만 적자 폭이 매년 대폭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멕시코에서 만든 중국 전기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2018년 개정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따라 2026년 재협상이 예정돼 있다."
 -바이든보다 중국을 더 거칠게 다룰까.
 "트럼프 1기 시절에 대중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군사·외교·산업·기술 등 전방위적으로 패권 경쟁이 본격화됐다. 이런 기조는 바이든 정부에서도 대부분 그대로 유지됐다. 트럼프 재집권 시 더 강경한 대중 디커플링 정책이 예상된다."

 지난해 대미 자동차 수출 44.6% 급증 
 -재협상한 한·미 FTA의 재재협상을 요구할까. 예를 들어 USMCA에서 했듯이 일몰조항 삽입 등을 포함한 요구를 할까.
 "트럼프 집권 시 한국이 멕시코·중국·EU에 이어 우선순위 4위 이하라고 볼 때 FTA의 재재개정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듯하다. 한·미 FTA에 일몰조항 삽입 등을 포함하는 전면적 개정은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일부 무역수지 적자 산업만 집중적으로 조정하면 된다고 판단하면 미국이 전면적 협상을 해야 하는 다른 나라들보다 한국과는 신속히 협상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국부터 압박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한·미는 2007년 FTA 협상과 2010년의 추가협상, 그리고 2018년 개정 협상을 했다. 추가 협상과 개정 협상을 불러온 주된 원인은 자동차 통상이었다. 미국과의 주요 협상을 모두 경험한 유 전 본부장은 "미국 자동차 노조는 대선 등 선거에서 영향력이 상당하다"며 "지난해 대미 자동차 수출이 44.6%나 증가했기에 누가 당선되든 자동차 분야에서 인플레감축법(IRA) 혜택 축소는 물론 각종 보호무역 조치 부과가 가능하기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9년 9월 당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관련 대책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뉴시스]

2019년 9월 당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관련 대책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뉴시스]

 -트럼프는 IRA를 '1호 폐기 법안'으로 지목됐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이미 오래전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계 최측근 인사로부터 재집권 시 IRA를 폐기할 거라는 말을 들었다. 다만 의회를 통과한 법이라 폐기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IRA 시행 이후 신규 투자의 70~80%가 공화당 주에 집중돼 공화당이 혜택을 보고 있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행정 명령으로 법의 효력을 약화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미국의 고용 창출 등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자료와 논리를 개발해 설득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오하이오·테네시 등지의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후보 당선 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으니 미리 다층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면 좋을 것이다."

 한·미 '협상의 시간' 다가와
 -과거 트럼프 측의 협상 스타일은 어땠나.
 "2018년 수석대표를 맡았던 한·미 FTA 개정 협상이 기억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고 위협한 상황에서 미국은 처음에 한·미 FTA가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이라며 수십 개의 일방적 요구 사항을 들고 나왔다. 우리가 논리를 잘 준비하더라도 얼마나 통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미국 측 주장을 하나씩 분석해 강하게 반박하며 대응했다. 결과적으로 수차례 치열한 협상 끝에 가능한 범위에서 양측의 요구사항 몇 개로만 소규모 패키지를 구성해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재집권 시 우리의 협상 전략을 조언하면.
 "예상되는 트럼프 2기 정부의 협상 스타일에 대비한 통상 대응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이제는 협력이 아니라 철저한 협상의 시간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조치를 발표하거나 부과하고 이를 통해 협상 우위를 점한 뒤 거대한 미국시장이라는 레버리지(지렛대)를 바탕으로 유리한 고지에서 압박하며 협상하는 스타일이다. 어떤 시점에 어떤 내용으로 협상해야 하는지 정세를 읽는 전략적 판단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둘째, 경제통상 분야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이슈를 연계하는 협상에 대비해야 한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그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요구할지, 상대방에게 승리의 명분을 안겨주고 우리가 챙길 수 있는 실속은 무엇인지 준비해야 한다. 셋째, 지금까지 협상의 관성을 벗어난 비전형적(변칙적) 외교통상 협상 스타일에 대비하고 역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 시 거대담론을 주고받으며 외교적인 발언을 하는 전형적 스타일과 달리 직설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비전형적 협상 스타일에도 대응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2023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중앙포토]

2023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중앙포토]

 개방형 통상국가 기조 계속 유지해야
 -국익 극대화를 위한 통상 대전략이 있다면.
 "탈냉전 시대에는 전략적 모호성이 통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미·중 패권 경쟁이 군사안보는 물론 경제·통상 등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고, 전후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쇠퇴하고 있어 더는 안전판이 되지 못하고 있다. 통상 환경이 달라진 만큼 한국의 전략도 핵심 기술과 공급망 우위를 확보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재편할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인권·시장경제와 같이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에 토대를 두고 연대와 신뢰를 강조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미 동맹에 기반을 둔다고 해서 한·중 파트너십을 소홀히 할 필요는 없다. 한·미 동맹을 산업·기술 등 전방위로 확대하고, 중국과는 경제협력을 증진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한·중·일 협력의 틀을 만들어 가는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 한편, 대외교역 의존도가 25% 내외인 미국과 한국(2022년 97%)의 경제안보 정책이 같을 수는 없다. 따라서 개방형 통상국가 기조를 유지하며 시장개방을 지속하고, 세계 무역이 규범에 기반을 두고 자유롭고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한국이 주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