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납골당에 나란히 자리한 이태원 참사 희생 청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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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지난 4일 오후 7시 30분쯤 이태원 참사 현장을 취재했다.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로 향한 계단을 오르는 동안 울면서 내려오는 10~20대들을 여러 명 봤다. 사고 현장 주변은 추모글이 적힌 메모지와 편지가 빼곡히 붙었다. 하얀 국화꽃다발과 꽃송이가 수북이 쌓였다. 향이 피워진 곳마다 사람들이 기도하고 절을 한다. 희생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메모지와 꽃을 찬찬히 돌아본 뒤 떠났다.

지난 4일 오후 10시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옆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가족ㆍ친구와 시민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길만 건너면 이태원파출소가 있다. 강주안 기자

지난 4일 오후 10시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옆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가족ㆍ친구와 시민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길만 건너면 이태원파출소가 있다. 강주안 기자

◇텅 빈 골목서 삼엄한 경비=바로 옆 사고 현장에 폴리스 라인을 겹겹으로 설치하고 경찰관이 현장 진입을 못 하게 막고 있다. 추모 현장에서 울다가 현장을 가보려는 두 여성이 경찰에 저지당한다. 추모 대열에 섞여 있던 외국인 남성도 사고 장소 쪽으로 걷다가 경찰에 막혔다. 골목 위쪽으로 돌아가 봤다. 사고가 난 골목도 그렇지만, 지근거리에 평행으로 난 골목길들 역시 경사가 급하지 않았다. 이런 길을 통제하지 못해 대형 참사가 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위쪽은 통제가 더 심했다. 길을 지나갈 수 없게 완전히 차단했다. 사고가 난 골목을 위쪽에서 촬영하기는 불가능했다. 외국 언론사 취재진이 곳곳에 보였다. 위쪽에서 취재 중이던 한 일본 TV 기자는 “토요일용 특집 기사를 제작하기 위해 도쿄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골목 구석구석을 카메라로 찍었다.

추모객들, 뒷북 현장 통제에 분노

4시간 정도 지켜보는 동안 사고 현장을 가보려는 사람을 경찰이 저지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사고가 난 골목길 통행이 허용된 사람은 경찰뿐이다. 수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밀려 숨이 끊어지는 동안 인파를 방치했던 경찰이 이제 텅 빈 도로를 삼엄하게 통제하고 있다. 주변엔 기동대 버스 4대가 줄지어 서 있다. 사고 장소 옆에 붙은 포스트잇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죽은 뒤에 경찰들을 이리도 배치해 놓다니.’

지난 4일 밤 10시쯤 이태원 참사가 난 골목길을 경찰이 삼엄하게 지키는 가운데 시민들이 사고 현장을 보고 있다. 강주안 기자

지난 4일 밤 10시쯤 이태원 참사가 난 골목길을 경찰이 삼엄하게 지키는 가운데 시민들이 사고 현장을 보고 있다. 강주안 기자

◇‘먹통’ 소방서, 코앞 파출소=이런 문구도 있다. ‘파출소가 100m 앞인데도 사람들이 깔려 죽다니.’ 눈을 들어 도로 대각선 방향을 보니 이태원 파출소 간판이 바로 건너편에 있다. 평범한 보폭으로 세어보니 110보 거리다. 거기서 150보를 더 가자 소방서가 나온다. 용산소방서 이태원 119안전센터다. 이렇게 가까이에 파출소와 119가 있는데도 첫 112 신고 후 네 시간이 넘도록 보호 조치가 없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119안전센터 벽면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추모 현수막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24시간 깨어있습니다’라고 적힌 대형 게시물이 보였다. 119 신고 대처를 묻고 싶어 안전센터에 들어가려는데 문이 잠겨있다. 유리문에 ‘현재 화재 출동 중입니다’라는 팻말을 걸어놨다. ‘용무가 있으신 분은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시고…’라는 문구와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는 가나 받지 않는다. 여러 번 걸어봤으나 마찬가지다. 차고를 들여다보니 119차량들이 있다. 안전센터 유리문 너머로 사무실 안에 사람도 보인다. 안전센터 입구에 게시된 다른 전화번호를 걸어봤으나 이 역시 불통이었다. 만약 사고를 신고하러 왔다고 해도 속수무책일 듯싶다. 소방서에서 입구에 부착한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용산소방서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엔 ‘든든한 여러분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안심합니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노고에 감사합니다!)라는 영어 손글씨도 적혀있다.

이태원파출소에 들어가 봤다. 많은 경찰관이 근무 중이다. "사고 현장이 파출소 바로 앞인데도 첫 112 신고 후 몇 시간이 지나도록 왜 사고 예방을 못 했느냐"고 물었다. 경찰관 한 명과 함께 문밖으로 나와 사고 현장을 보면서 "바로 앞 아니냐"고 질문했다. 그는 "지금은 사람이 별로 없으니 잘 보이지만 사고가 난 날에는 그곳뿐 아니라 모든 골목마다 사람이 꽉 찼고 인도에도 인파가 몰려 사고를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전직 청장 “경찰 미쳤다”=인파가 몰린 행사나 집회 대처 경험이 많은 전직 경찰 간부들에게 이번 경찰 대응에 대한 판단을 물었다. 평소 경찰 옹호 발언을 많이 하던 사람들이지만 이구동성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며 경찰을 맹비난했다. 한 전직 지방경찰청장은 "경찰이 미쳤다"고 했다. "평생을 경찰에 바쳤고 많은 수난을 봤지만 이번처럼 어처구니없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용산경찰서장을 질타했다. 그는 "집회나 큰 행사가 있는 날 서장은 무전기 세 대에 귀를 기울인다"면서 "서울경찰청 지휘부가 전부 듣는 망, 용산서 자체망, 정보 사항을 공유하는 망이 있는데 무전을 듣고서도 뒷짐 지고 걸어갈 수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전직 경찰 "막을 수 있었던 사고"

한 전직 치안정감은 "참사 당일 이태원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는데 서울경찰청장이 자택으로 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용산구청장과 소방의 잘못도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경찰 고위 간부는 "윤희근 경찰청장이 충북에 등산을 갔다는 사실도 황당할 뿐"이라며 “이태원 상황이 아니더라도 당일에 서울 용산 일대에서 집회가 열렸는데 경찰청장이 서울 집무실을 비우고 캠핑장에서 잤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제 위치 벗어난 수뇌부 맹비난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과거와 달리 경찰을 직접 지휘하겠다며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경찰국을 설립하고 치안감까지 임명했으니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7일 윤석열 대통령은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정히 그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전 용산경찰서장ㆍ용산구청장ㆍ용산소방서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 이날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선 의원들이 이 장관 등의 사퇴 의사를 물었다.

◇학교 들른 영구차=이태원에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경찰ㆍ구청ㆍ소방에 대한 분노가 쏟아지는 사이 희생자들은 안식의 장소를 찾아갔다. 지난 3일 오후 5시쯤 동국대 일산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참사 직후 가장 많은 희생자(15명)가 이송된 병원이다. 대부분 희생자는 안치실에 잠시 머물다가 전남 등 집 근처 빈소로 이동했다. 이날 호주인 희생자 1명이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떠나면서 병원엔 화장을 마친 오스트리아 국적 희생자 한 명만 남았다. 그의 유골함은 귀국 절차를 기다리며 안치실에 놓였다. 아들이 추울까 봐 걱정하는 부모의 뜻을 존중해 유골함이 들어있는 장소는 실온을 유지했다. 장례식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은 한산해졌다. 테이블엔 스타벅스 커피가 놓였다.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마다 테이크아웃 커피가 많이 보였다.

장례지도사들은 이례적인 장면이 많았다고 설명한다. 새벽에 열린 발인식에 친구들이 100명 가까이 찾아와 눈물바다가 됐다. 화장장으로 향하는 길에 다니던 학교를 들르기도 했다.

제자 잃은 교사 "공부만 하다…"

이번 사고로 졸업생 제자를 두 명 잃은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한 아이는 세월호 사고로 수학여행도 못 갔는데 제대로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떠났다”며 “대학보다 안전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모처럼 여유 시간을 가지려다 변을 당한 제자 생각에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추모공원에 모인 희생자=156명이 숨진 만큼 어느 추모공원엘 가도 이들을 만날 것 같았다. 지난 4일 오전 11시쯤 서울 인근 납골당을 무작정 찾아가 봤다. 아니나 다를까 한쪽 공간에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청년들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사고 현장에서 각기 다른 지역의 빈소로 옮겨져 가족ㆍ친구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낸 이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고려해 가장 좋은 자리를 배정했다”고 납골당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들의 자리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파란 하늘과 푸른 숲에 햇살이 내리는 풍경이 평화롭다. 1주일 전만 해도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젊은이들이 작은 유골함에 담겨 유리 벽 안에서 쉬고 있다. 옆에 놓인 사진들이 눈에 들어온다. 태권도복을 입고 품세를 시연하는 사진에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랐던 부모의 마음이 느껴진다.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밝게 웃는 얼굴엔 미래의 꿈이 어른거린다. 액자 속 반려견이 하늘나라에서 주인과 산책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유골함에 적힌 출생일은 1990년대~2000년대로 판이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세상과 작별한 날짜-‘卒’(졸)은 같았다. 2022년 10월 30일. 우리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고통과 상처를 남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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