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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주식 담보로 넣은 게 천추의 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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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2월, 호주 골드코스트. 동아건설이 건설한 동아골프장 사업설명회를 마치고 프로골퍼 겸 골프장 설계자 그레그 노먼과 시범 라운딩하고 있는 최 회장.

이코노미스트 한때 동아건설 파산에 대해 신중론이 대두된 적이 있다. 한마디로 외국에 진 빚이 아니고 국내 금융권의 여신이니까 파산이 아니라 회생시켜 정상화가 된 후에 처분해도 늦지 않고, 그것이 채권 회수에도 유리하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역시 국부 손실과 자산가치 때문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실제로 동아건설 브랜드와 특히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기술보유기업’이라는 가치는 해외에서도 크게 평가했다. 그래서 자산관리공사(KAM CO)를 비롯한 채권단은 파산 절차에 들어가 있는 동아건설을 법정관리로 되돌려 회생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2005년 9월 언론들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법원도 ‘채권단이 회생을 요구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으며 파산 상태에서도 채권단이 합의하면 길은 있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는 동아의 간판을 내리는 것으로 매듭이 지어지는 것이다.

“동아라는 이름을 감추고 교수나 전문가들한테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아보자고 소리치고 싶었다는 게 빈소리가 아니에요. 나는 평생을 해 온 기업인데, 평생 기업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더구나 정치적인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숫자부터 거꾸로 보려고 하는데 아예 백지로 동아 이름 덮고 제대로 평가를 받았으면 그런 결과가 나왔겠느냔 말이오.”

최 회장은 한동안 허공을 응시했다. ‘황제의 성(城)’이 무너졌다는 허탈감 때문도 아니었고 동아 자산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원칙도 상식도 없었다는 것이 분노의 끝자락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자산 매각 과정이나 가치평가를 어떻게 해서 팔았는지 회장님은 모르고 계셨다는 말씀입니까?
“처분할 때만 몰랐다는 게 아니라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그래서 더 의구심이 든다는 겁니다. 많은 자산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디로 얼마에 흡수되고 매각됐는지 원소유자한테 알려줘야 하는 건 지극히 상식이고 법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게 지켜지지 않는다면 매각이 아니라 찬탈이지. 빼앗는 거 아니오.”

-명확한 내용을 알기 위해 노력하셨을 텐데도 자료를 받아보지 못하고 있습니까?
“(자료를)받았으면 이런 얘기를 왜 하겠어요. 회사가 파산으로 가고 내가 조사를 받고 하는 동안은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때는 자산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 후에 그나마 남아 있던 몇몇 직원이 나서 억울하니까 처리 내역이나 좀 알자고 했던 모양인데 나중에 보니 제보해 주는 사람이 도청당하고 혼이 나서 제대로 입도 뻥긋 못하더라는 겁니다.”

모든 정보가 차단되고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당시 동아건설 부장이었던 L씨를 수소문해 확인한 결과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도청 정도가 아니라 제보해 주던 관계자가 인사발령을 받는 불이익을 당하는 등 아예 그 후부터는 다른 제보자들까지 접근조차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정의감이 살아 있는 직원들 덕분에 기자도 당시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증언을 들었습니다만 회장님도 그렇게까지 차단되고 있다는 건 의외군요.
“내가 그런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소. 대명천지에 이럴 수가 있나 싶고 말이지. 자산을 채권단에 내놓을 때도 담보로 내놓은 것이지 포기한 게 아니에요. 그러고 내가 물러날 때 은행권을 포함해 빚은 4조원, 자산은 4조5000억원 정도로 자산이 훨씬 많았는데 워크아웃 거치고 나니까 자산은 거의 없고 빚만 4조원 남았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어요. 그게 말이 됩니까? 열 평도 안 되는 무허가 집 한 채를 사고 팔아도 계약서가 있고 근거 서류가 있는데 그렇다면 그걸(매각서류를) 꺼내놓고서 얘기라도 하든가. 일절 보여 주지도 않으면서 빚이 남았다는 소리만 하니 말이야. 내가 하도 분해서 알아보니까 경기도 파주에 있는 S골프장, 그걸 내가 1000억원 넘게 들여 만든 겁니다. 근데 180억원에 팔았다고 합디다. 그렇다면 그게 판 거요? 그냥 주머니에 슬쩍 넣은 거나 다름없지.”

누가 매입했느냐고 묻는 질문에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모른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참으로 억울하다 싶을 만큼 자산을 잃었다고 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객관적으로 입증이 되는 얘기였다.

“호주 골드코스트에 그레그 노먼이 설계한 ‘글레이즈’라는 골프리조트가 있어요. 그 옆에 주택지까지 붙어 있어서 그것도 1000억원은 거뜬히 나갑니다. 그걸 190억원 받았답디다. 호주를 관광하거나 골프 잡지만 봐도 그 골프장이 나와요. 노먼이 설계를 했다고 해서 더 화제가 됐지만 호주 최고의 리조트라고 극찬을 받고 있잖아요? 그런데 190억? 그 동안의 지가 상승과 브랜드 가치를 생각하면 1900억원을 받아도 시원찮은데 누가 어떤 과정으로 누구한테 팔았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말이지. 당당하다면 그걸 왜 공개 못 합니까?”

-동아 계열사였던 동아증권도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그 후에 세종증권으로 이름이 바뀌고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관심이 없지만 21억원에 팔았답디다. 증권회사가 21억원에 넘어갔어요. 증권회사가 모래 바닥에 꽂아놓은 담배꽁초도 아니고, 발로 툭 차면 넘어가는 식으로 팔았소. 세상에 그런 거래도 있소? 동아 자산은 줍는 사람이 임자요? 속에서 천불이 나서 말이지. 그것뿐입니까? 부평에 있는 시티백화점은 1000억원이 넘는데 반값도 안 되는 400억원 정도 받았다든가? 누가 무슨 작용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팔아넘길 수는 없는 겁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근년에는 몇 차례의 기업구조 조정으로 대기업들이 소그룹화하고 업종별로 전문화를 시도해 규모의 변화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당시 재계 10위의 동아그룹이라면 20여 개의 계열사뿐 아니라 부동산을 포함한 상당한 자산이 있었음은 짐작이 되는 일이다.

동아 파산 후 10년이 넘은 최근까지도 한때 동아에 몸 담았던 임직원들까지 자산 처리와 관련해 채권단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을 강도 높게 지적했다. 가볍게 들을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최 회장이 물러나고 채권단은 워크아웃을 시작할 때 동아에 830억원을 출자전환하고 추가로 1400억원을 융자해 주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분기가 치미는 듯 몸을 떨었다.

“융자해 줬다는 얘기를 앞세우는데, 그거 해주고서 무려 1조4000억원을 회수해 갔어요. 사채도 그런 사채는 없어요. 그 돈을 회수하려니까 얼마나 형편없이 막 팔아치웠겠소. 평생을 일궈온 기업인데 내가 내 자산을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누가 가져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지금 같으면 몇 조원이 되지 않겠소? (분기를 삭이며)그러고 아무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전문경영인이라도 남의 회사를 맡아 놓고 자산을 그렇게 처리해선 안 되지. 은행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요. 명색이 은행이라는 공적 기관이 원금과 이자만 회수하면 된다는 식으로 서둘러 전부 헐값에 팔아버리면 이 나라에서 견디고 살아남을 대기업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게 채권단이 하는 일이오? 그러면 은행하고 사채업이 뭐가 다른 거요?”

▶최 회장은 88년 2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보여 주는 많은 훈장이 최 회장 집무실에 걸려 있다.

1000억짜리 골프장이 190억

-결과적으로는 동아에 전문경영인이 지명된 이후 그렇게 된 거 아니겠습니까.
“본인들은 할 수 있는 노력 다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볼 때는 채권단에 맞설 전문경영인도 못 되었던 것 같고 (전문경영인을)잘못 쓴 겁니다. 나도 처음에는 건설장관 출신이니까 김포매립지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를 했는데 방금 얘기한 대로 자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상식 이하의 일들이 벌어졌고, 결국 2년 동안에 회사가 거덜났어요.”

뒤에 언급 되겠지만 전문경영인으로 건설부 장관 출신의 고병우씨를 천거한 사람은 신복영 서울은행장이었다. 신 행장은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자신도 최 회장이 생각했던 것처럼 고씨가 건설부 장관 출신이라 김포매립지를 잘 해결할 줄 알고 강력히 추천했는데 (고병우씨도) 나름대로는 애를 썼겠지만 DJ와 가깝다고 알려진 김성훈 농림부 장관의 저항에 부닥쳐 (매립지 문제가)끝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직접 정리를 하시지 왜 그렇게 빨리 사임을 했습니까?
“동아 주거래 은행이 서울은행이고 신복영 행장이 채권단 단장 격인데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갑자기 불러서 단도직입적으로 그랬어요. 물러나라고. 최 회장이 현직에 있으면 지원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고, 매립지도 최 회장이 있는 상태에서 용도변경을 하면 특혜 시비가 붙는다. 자기들한테 맡기면 잘 처리할 테니 (나한테)전면에서 물러나 있으라고 말이요. 그러니 행장이 일부로 불러서 그렇게 나올 땐 고위층에서 뭔가 내려왔다는 얘긴데, 어떻게 버티겠어요. 무척 고민을 했지만 나 하나 때문에 그룹이 날아갈까 봐, 그것만은 막아야 되겠다 싶어 98년 5월 15일자로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물러났던 겁니다. 그러면서 보유하고 있던 전 계열사 주식을 전부 담보로 넣었는데 그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두고두고 후회막급이고 천추 만대의 한이 되게 생겼어요.”

-대전 MBC도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특히 대전 MBC 경우는 동아 사태가 나기 훨씬 전부터 내 개인이 주식을 100% 소유했고, 담보로 제공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사학재단인 공산학원 자산으로 편입된 건데 다 빼앗긴 건 억울해도 너무 억울하지요. 대전 MBC 인감이 (워낙 커서)내가 직접 가지고 있었고 누구에게도 찍어주지 않았는데 어느 날 보니 넘어갔어요. 언젠가는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지만 지금 생각하면 모든 과정이 전부 속았다는 생각밖에 안 들고…. 내가 쉽게 물러났던 것이 잘못이었나 싶을 때도 있지만 은행장이 윗선의 지시 없이 그룹 전체를 내놓고 나가라는 소리를 할 수 있었겠나 생각해보면 불가항력이기도 했고….”

“공적 자금 한 푼 지원받은 일 없어”

채권단의 자산 처분 내용 못지않게 절차도 뭔가 이상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었다. 최 회장은 98년 5월에 사임했고 동아건설은 8월에 워크아웃 기업으로 지정됐다.

워크아웃은 정부가 기업회생을 위해 채택한 제도로 채권단이 워크아웃 기업으로 지정할 때는 자산과 회생 가능성을 평가해 회생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올 때 허가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워크아웃 지정 후 채권단의 지원을 받지도 못한 채 동아건설은 부도처리가 되자 2000년 11월 4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채권단이 왜 워크아웃 기업으로 지정했다가 외면했는지부터 석연치 않은 부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2001년에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아시아의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보고서를 내면서 한국의 워크아웃은 명백한 실패작이라 평가하고 대표적인 사례로 동아그룹을 열거 했지요. 사주를 제외시키는 것부터가 잘못됐고 엉망진창이라는 얘기 아닙니까. 그것도 좋다 그거요, 자산이 부채보다 훨씬 더 많았는데 워크아웃이 왜 실패를 합니까? 이건 시장바닥에서 왕사탕 장사만 해봤어도 알아요. 빌린 돈보다 갚을 수 있는 돈이 더 많은데 어떻게 실패냔 말이오. 그러고 워크아웃 기간 동안 전문경영인과 채권단이 다 팔아놓고, 툭툭 털고 나온 나한테 치사하게 파견 직원들 급여까지 내가 손을 댄 것처럼 만들어 비난의 화살을 쏘고 있으니 이런 환장할 노릇이 어느 나라에 또 있겠소.”

최 회장은 동아가 부채보다 자산이 더 많았다고 주장한 반면 재판 과정에서 건설교통부가 제출한 자료는 동아건설이 자산 3조3373억원에 부채 4조8181억원으로 자본이 모두 잠식된 상태라고 했다는 점을 지적하자 최 회장은 금방 눈빛이 이글거렸다.

“자산을 빼앗긴 사람이 거대한 권력 앞에 어떻게 거짓말을 합니까. 소액주주들하고 우리 직원들이 항의를 하고 시위를 하니까 건교부가 당황해서 제대로 평가되지도 않은 조작된 숫자를 내놓은 거 아닙니까? 법원에서도 이걸 잘 모르는 것 같았는데, 건설회사의 기업가치 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건 특수 중장비나 보유한 땅보다도 공사 미수금이에요. 그런데 해외공사 미수금 액수는 계산에 넣지도 않았고, 그 당시 우리가 국내외 시공 잔액만 3조원에 달했소. 동아 주장을 믿지 못한다면 건설협회에 조사를 의뢰하라고 했어요. 정확히 나옵니다. 내가 이런 얘기하면 어떻게 들을지 몰라도 나는 그 흔한 공적 자금 한 푼 지원받은 것이 없고 지원 받을 생각도 안 했어요. 엄청난 공적 자금을 받은 은행들이 오히려 자산 평가는 더 높게 나옵디다. 세상에…. 아무리 양심이 없어도 진실을 묻어버리고 허수를 내세워 법정에 선 사람을 더 궁지로 몰아넣고 가혹한 형을 받도록 하면 자기들이 행복해집니까? 내가 미숙하게는 살았지만 거짓을 만드는 재주는 없었소.” <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leehoo52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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