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본 세상](37) 50대의 끝자락에 나의 천명을 묻다

중앙일보

입력 2022.06.23 10:00

올해 60, 내년이면 환갑이다. 알듯 모르겠다.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이순(耳順)'의 나이로 접어들건만 삶은 어떠해야 했고, 어떠해야 하는지 뚜렷하지 않다.

공자(孔子)님은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으리라…

"나는 15살이 되어 글 읽기에 뜻을 뒀고, 30에 독립했으며, 40 나이에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50에 천명을 알았고, 60에는 뭘 들어도 거슬림이 없었다. 70살이 되니 내 욕심껏 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顺, 七十而從心所欲不逾矩.

15살 공부에 뜻을 두고, 30살에 독립했다는 건 이해가 간다. 필자도 대략 그랬다. 40 불혹(不惑)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혈기왕성하게 일했던 40대 때 많은 유혹을 받았으니 말이다.

″나는 15살이 되어 글 읽기에 뜻을 뒀고, 30에 독립했으며, 40 나이에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50에 천명을 알았고, 60에는 뭘 들어도 거슬림이 없었다. 70살이 되니 내 욕심껏 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바이두

″나는 15살이 되어 글 읽기에 뜻을 뒀고, 30에 독립했으며, 40 나이에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50에 천명을 알았고, 60에는 뭘 들어도 거슬림이 없었다. 70살이 되니 내 욕심껏 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바이두

그런데 '지천명'은 모르겠다. 나에게 천명이라는 게 있었나?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하늘에게 부여받은 것을 일컬어 본성이라 하고, 부여받은 본성에 충실히 따르는 것을 도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교육)이라 한다.'

중용(中庸) 첫 구절이다.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받은 나만의 성질, 그게 곧 성(性, human nature)이라고 설명한다.

공자가 나이 50이 되어 깨달은 게 바로 '내 본성'이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필자 역시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50대 끝자락, 내 본성이 어떤지 어렴풋이 알게 됐으니 말이다.

머리는 안 좋았지만, 대신 부지런하기는 했다. 순발력은 없어도 꾸준함은 있었다. 가끔 손해 보는 일은 있어도 남의 것을 빼앗지는 않았으니, 착하다는 얘기는 들었다. 수리(數理)에 약하고 인정에 끌리다 보니 모질지가 못했다. 내 주장이 약하고, 순진해 귀가 얇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 심성으로 30년 넘게 기자로 일했으니, 애초부터 성공한 기자가 되기는 틀렸다. 청사에 남을 기자와는 거리가 멀었고, 호구지책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기자였다. 그걸 50대 끝자락, 은퇴를 앞두고서야 깨달았으니…. 오! 나의 천명이여~~

곧 접할 '이순(耳順)'은 또 무엇인가.

'어떤 말을 들어도 거슬림 없이 소화할 수 있는 박식함과 관대함의 경지'를 말하는 듯하다. 아직 멀었다. 필자는 아직도 정치인의 내로남불에 핏대를 세우고, 내 얇은 지식을 고집한다. 아내의 핀잔에는 고개를 들어 대든다. 여전히 주변에 거슬리는 게 너무 많다.

'아직 괜찮다'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 60의 시작이니, 또 살다 보면 60대의 끝자락 언젠가 '이순의 도'를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루하루 본성을 지켜가며 살다 보면 어렴풋이 성현의 먼 그림자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위로하며 하루를 살 뿐이다. 욕심내지 않고, 한 발 한 발 차분하게….

그 마음으로 주역 53번째 '풍산점(風山漸)' 괘를 뽑았다. 나무를 상징하는 손괘(巽, ☴)가 위에, 산으로 대표되는 간괘(艮, ☶)가 아래에 놓여있다. 산 위에 나무가 자라는 형상이다.

주역 53번째 '풍산점(風山漸)' 괘는 산에서 나무가 자라는 모습이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자라니 점(漸)이다. /바이두

주역 53번째 '풍산점(風山漸)' 괘는 산에서 나무가 자라는 모습이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자라니 점(漸)이다. /바이두

산 위의 나무는 어제와 오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분명 나무는 자라고 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그래서 괘 이름이 점진적으로 성장한다는 뜻을 가진 '漸(점)'이다. '순서와 절차의 괘'다.

모든 게 절차가 있는 법이다. 배워 공부를 해야(志學) 취직해 독립할 수 있고(而立), 독립된 개체가 되어야 주변 유혹도 이겨낼 수 있다(不惑). 유혹을 이긴 자만이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그래야 이순(耳順)의 경지도 맛볼 수 있을 터다.

단계를 건너뛰고도 제대로 만들어지는 일은 없다. '풍산점' 괘는 그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주역은 혼례를 예로 들어 '점진(漸進)의 도'를 설명한다.

女歸吉, 利貞

'여인이 시집가기에 길하다. 곧음(貞)을 지켜야 이롭다.'

주역의 시대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였다. 사람이 짐승과 구별되는 게 바로 결혼이다.

구체적으로는 6례(六禮)가 있었다. 납채(納采, 신부가 청혼 예물을 받아들임)-문명(問名, 신부의 사주를 물음)-납길(納吉, 신붓집에 길조를 알림)-납폐(納幣, 신부 측에 예물을 보냄)-청기(請期, 신부 측에 결혼 일자를 물음)-친영(親迎, 신붓집에서 혼례를 치름) 등으로 이어진다.

우리에게도 일부 흔적이 남아있다. 필자 결혼할 때 아버님께서 사주를 써주시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친구를 함잡이 삼아 신붓집에 쳐들어갔었다.

'인스턴트 러브', '15분 결혼식'이 대세인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허식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신은 이어야 한다. 절차를 따르고, 순서를 존중하는 '점진의 도' 말이다. 그 절차를 통해 신랑 신부 부부의 연(緣)은 더 끈끈해지고, 양가는 서로 존중하게 됐으리라.

어디 가정뿐이랴. 개인도, 기업도, 그리고 나라도 순서와 절차를 밟아 일을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결과가 실하다.

주역의 시대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였다. 구체적납채-문명-납길-납폐-청기-친영 등으로 이어진 절차를 따랐다./ 바이두

주역의 시대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였다. 구체적납채-문명-납길-납폐-청기-친영 등으로 이어진 절차를 따랐다./ 바이두

不怕慢 只怕站

'늦음을 걱정하지 말라, 걱정해야 할 건 멈추는 것이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중국어 구절이다. 속도가 늦더라도 쉼 없이 전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산 위의 나무가 그렇듯 말이다.

'풍산점' 괘는 '점진의 도'를 설명하며 기러기를 인용한다.

기러기는 철에 따라 이동할 때 질서를 지키며 순서대로 날아간다. 대형을 흐트러트리지 않는다. 물가로 나와 반석 위에 앉았다가, 나무로 올라가고, 언덕에서 날아올라 수 만리를 날아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스텝바이스텝, 모든 절차가 어지럽지 않게 진행된다.

'풍산점' 괘는 '점진의 도'를 설명하며 기러기를 인용한다. 기러기는 철에 따라 이동할 때 질서를 지키며 순서대로 날아간다./바이두

'풍산점' 괘는 '점진의 도'를 설명하며 기러기를 인용한다. 기러기는 철에 따라 이동할 때 질서를 지키며 순서대로 날아간다./바이두

세 번째 효사(爻辭)는 이렇다.

鴻漸于陸 夫征不復 婦孕不育 凶

'기러기가 뭍으로 나왔다. 지아비가 밖으로만 나돌아 돌아오지 않으니 아내는 임신해도 (아이를) 기르지 못한다. 흉하다.'

세 번째 효는 인생 발전 단계로 볼 때 대략 40대에 해당하는 시기다. 왕성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넘친다. 그래서 더욱 유혹이 많을 때다. 회사 실적을 위해 과감히 단독 플레이도 해보고, 부자를 꿈꾸며 주식에 몰방을 하기도 한다. 일을 핑계로 맨날 술이다. 사내가 가정에 소홀하니 흉할 수밖에 없다.

공자의 연령 기준으로 치자면 '불혹(不惑)의 시기'에 쉽게 벌어질 일이다. 그가 왜 40을 '불혹의 나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세 번째 효사에는 '도적을 막는 것이 이롭다(利禦寇)'는 구절도 있다. 정도를 지키라는 얘기다. 주역도 40대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풍산점' 괘는 일관되게 바름(正)을 강조한다. 괘사에서도 '곧음을 지켜야 이롭다(利貞)'고 했다.

(漸)進以正可以正邦也

'바름으로 점진하면 나라도 바르게 할 수 있다.'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것도 개인의 바름(正)에서 시작된다.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 순서다. 개개인이 바름을 지키며 건실하게 살아간다면 가정이 화목하고, 나라가 바로 서고, 세상은 편안해진다는 게 '대학(大學)'의 논리다.

'풍산점' 괘는 안으로는 흔들림 없이 멈추어 있고 밖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공손한 형상이다. 내면이 꽉 찬 사람만이 밖으로 공손하다는 걸 보여준다./바이두

'풍산점' 괘는 안으로는 흔들림 없이 멈추어 있고 밖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공손한 형상이다. 내면이 꽉 찬 사람만이 밖으로 공손하다는 걸 보여준다./바이두

괘 전체 모습을 다시 보자.

'풍산점' 괘의 아래 간(艮, ☶)은 멈춤(止)의 뜻을, 위 손(巽, ☴)은 공손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안으로는 흔들림 없이 멈추어 있고 밖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공손한 형상이다. 내면이 꽉 찬 사람만이 밖으로 공손하다는 걸 보여준다.

주역은 그런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을 이렇게 묘사한다.

止而巽 動不窮也

'안으로 그치고 밖으로 겸손하니, 아무리 움직여도 궁하지 않다.'

아무리 움직여도 궁하지 않다! '내 욕심껏 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從心所欲不逾矩)'는 공자의 70대 경지를 말하고 있다. 필자에게는 먼 얘기로 들리지만 말이다.

'풍산점' 괘는 마지막 효사를 이렇게 묘사한다.

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

'기러기가 목적지에 이르니, 그 깃털은 모범이 될만하다.'

기러기는 수천 km 날아 철(季節)의 이동을 마무리한다. 순서와 절차를 지키며 자신의 천명을 다했다. 본성을 성실히 수행했다. 그러니 모범이 될만하다.

나는 기러기와 같은 삶을 살았는가? 나의 삶은 누군가에게 모범이 될 수 있을까?

'지천명'을 지나 '이순'에 접어든 나이에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여전히 알듯 모르겠다. 오직 바름을 유지하며 또 하루를 쌓을 뿐이다. 점진(漸進)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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