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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있는 치과의사' 변신…성공한 도지사가 되기 위한 '이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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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에 8000만원이나 드는 도지사 관사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런 예산을 젊은이들을 키우는 데 한 푼이라도 더 쓰고 싶습니다."

[주역으로 본 세상](36) '베풀되 낭비하지 말아라!'

김영환 충청북도 도지사 당선인의 페북 글이다. 도민 위한 행정을 펼치겠다는 도백(道伯)의 결기가 올곧다. 믿음이 간다.

사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피 같은 세금, 한 푼도 헛되이 써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도 그의 발언이 화제가 되고, 신문에도 실린다. 그만큼 우리 정부와 국민 관계는 왜곡되고, 뒤틀려있다. 그걸 바로잡기 위해 솔선수범 나섰으니 반갑다.

행정의 관건은 세금이다. 중앙 정부던, 지방 정부던 세금을 어떻게 쓰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공평 과세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으로 쓰는 건 더 중요하다. 김 당선인 말고도 다른 도지사 당선인들도 관사 포기를 선언하고 나섰으니 있으니 이젠 정말 나아지려나 보다.

김영환 충청북도 도지사 당선인은 페북에서 ″리모델링에 8000만원이나 드는 도지사 관사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민 위한 행정을 펼치겠다는 도백(道伯)의 결기가 올곧다. /김영환 블로그 캡처

김영환 충청북도 도지사 당선인은 페북에서 ″리모델링에 8000만원이나 드는 도지사 관사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민 위한 행정을 펼치겠다는 도백(道伯)의 결기가 올곧다. /김영환 블로그 캡처

지난주에 이어 세금 얘기 계속해보자. 정부와 국민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지가 주제다.

42번째 괘 '풍뢰익(風雷益)'을 뽑았다. 바람을 상징하는 손(巽, ☴)과 우레를 의미하는 진(震, ☳)이 위 아래에 있다. 바람이 위에서 불고 있고, 그 아래에 우레가 치는 형상이다. 둘은 호응 관계다. 바람이 우레를 나르고, 우레가 바람을 일으킨다.

괘 이름 '益(익)'은 '水(물)'과 '皿(그릇)'이 겹쳐 만들어진 글자다. 쟁반 위에 물이 넘쳐 흐르는 모습, '무엇인가 더해져(加) 풍부하다'라는 뜻이다. 이익(利益)이라는 의미로 확장됐다. '풍뢰익(風雷益)' 역시 '더해 이롭다'는 내용이다.

'익(益)'괘는 지난 칼럼에서 봤던 '손(損)' 괘 다음에 이어진다. 손(損)이 먼저고 익(益)이 다음이다. 주역의 순서를 논한 서괘전(序卦傳)은 '더는 덜어낼 게 없으면 반드시 얻는 게 있다(損而不己必受益)'고 괘의 순서를 설명한다.

주역 42번째 괘 '풍뢰익(風雷益)'은 바람이 위에서 불고 있고, 그 아래에 우레가 치는 형상이다. /바이두

주역 42번째 괘 '풍뢰익(風雷益)'은 바람이 위에서 불고 있고, 그 아래에 우레가 치는 형상이다. /바이두

손익(損益)이 그렇다. 덜어낸 다음에야 얻는 게 있다. 투자해야 돈을 벌 수 있고, 속을 비워야 또 먹을 수 있다. 자식에게 사랑을 주고, 자식의 효도를 받는다. 기업 경영을 보여주는 지표가 '손익계산서(損益計算書)'다.

'손(損)' 괘는 아래에서 덜어 위로 보내는 것이다. 국민이 정부에 바치는 세금이 그렇다. '익(益)' 괘는 거꾸로다. 위에서 덜어내 아래로 보내는 것이다. 정부가 거둔 세금으로 학교를 짓고, 도로를 깔고, 도둑을 잡는 것이 모두 익(益)이다. 그러니 백성들에게는 이익이다.

損上益下 民說無疆

위에서 덜어 아래로 더하니 백성들의 기쁨이 한없다.

세금이란 그런 것이다. 국민이 고루 혜택을 받는 곳에 써야 한다. 그래야 백성의 기쁨이 끝없다. 바람과 우레가 함께 움직이는 것과 같다. 수 억원 들어가는 관사 유지, 그건 도지사 본인만 좋자고 하는 짓이다. 도지사가 어디 폼 잡으라고 있던 자리더냐.

행정 리더는 어떤 마음으로 일해야 할까. 6개 효(爻)중에서도 왕(王)의 덕목을 설명하는 다섯 번째 효는 이렇게 말한다.

有孚惠心, 勿問元吉
백성을 믿고 베푸니, 물을 필요도 없이 길하다.

믿음으로 베풀어라!
모든 행정가에게 적용될 말이다.

김영환 당선인은 페이스북에서 이런 말도 했다.

"저는 나라와 충북도민에게 받을 것을 다 받았습니다. 이 온전한 사랑을 도민들께 돌려드리는 일이 제게 남은 소명입니다."

유부혜심(有孚惠心)이다. 이 초심을 지키면 분명 성공한 도지사가 되리라 믿는다.

베푼다고 막 퍼주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아끼고, 또 아껴야 한다. 공자(孔子)는 이를 '惠而不費(혜이불비)'라고 표현했다. '베풀되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다.〈논어(論語) '요왈(堯曰)'편〉

제자 자장(子張)과의 대화다.

자장: '베풀되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공자: 백성에게 이익이 되는 것, 그것만을 쫓아 이롭게 해주는 것을 뜻한다(因民之所利而利之).

꼭 필요한 곳에 써야 한다. 복지 행정 한답시고 막 퍼준다면, 당장 인기는 높아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발전의 탄력을 떨어뜨릴 뿐이다. 자립을 돕는데 세금을 써야 한다. 퍼주기는 오히려 자립 의지를 꺾을 뿐이다. 국민이 마음껏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깔아주는 게 행정 당국이 할 일이다. 세금은 그런 곳에 써야 한다.

'풍뢰익(風雷益)' 괘의 윗부분 풍(風)은 겸손, 순종을 의미한다. 아래 우레(雷)는 움직임을 뜻하고 있다. '백성의 움직임에 리더가 순종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역 식 민주주의'다./바이두

'풍뢰익(風雷益)' 괘의 윗부분 풍(風)은 겸손, 순종을 의미한다. 아래 우레(雷)는 움직임을 뜻하고 있다. '백성의 움직임에 리더가 순종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역 식 민주주의'다./바이두

지도자가 백성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야 한다고?

왕조 시대에나 어울릴 말이다. '하늘의 명(天命)을 받은 천자(天子)가 하늘을 대신해 백성을 보살핀다'는 건 봉건시대 사고다.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爲人民服務)'는 '현대판 황제' 중국 공산당이나 할 법한 생각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주역의 논리는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민심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풍뢰익(風雷益)' 괘의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괘의 윗부분 풍(風)은 겸손, 순종을 의미한다. 아래 우레(雷)는 움직임을 뜻하고 있다. 주역 전문가들은 '백성의 움직임에 리더가 순종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백성의 뜻을 살피고, 그들의 뜻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주역 식 민주주의'다.

動而巽, 日進無疆

아래 움직임에 겸손하게 따르니 하루하루 나아감이 끝없다.

여론은 수시로 바뀐다. 그 여론을 존중하고, 따르라는 얘기다. 주민들과 애환을 함께하고, 시의적절하게 정책을 펼쳐야 한다. 세금을 걷을 때도 시의 절절해야 하고, 세금을 쓸 때도 시의에 맞아야 한다. 그러기에 '풍뢰익' 괘 단사(彖辭)는 "무릇 '익(益)의 도'는 시의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凡益之道 與時偕行)"라고 쓰고 있다.

민심을 거역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익(益)'괘 마지막 효사는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莫益之 或擊之 立心勿恒, 凶

누구도 돕지 않는다. 심지어 공격하려 든다. 백성을 위한 마음이 흔들리니 흉하다.

측근들에게 자리 나눠주고, 친인척에게 일감 몰아주면 주민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기세등등한 초기에는 겉으로 굽신거릴지 몰라도, 말년으로 접어들면 누구도 돕지 않는다. 심지어 내부 관계자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한다.

초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을 믿고 성심으로 베풀겠다'라는 처음 마음가짐이 흔들리면 그 끝은 뻔하다. 흉(凶)하다. 너무 자주 보아온 일이다.

필자가 김영환 도지사 당선인을 만난 건 90년대 중반 국회에 출입하던 때였다. 마포의 한 고깃집 점심 식사 자리에서 만난 그는 '의식 있는 치과의사'로 자기를 소개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양질 정치인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국회의원, 장관 등을 거친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고향 도백으로 돌아오게 됐다. 주역 '풍뢰익' 괘는 이런 그에게 군자(君子)의 길을 제시한다.

見善則遷 有過則改

바람직한 것은 기꺼이 실천하고,
지나치다 싶은 것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

그의 성공을 빈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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