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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세상](38) 누리호의 장대한 성공, 장렬한 실패 안되려면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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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壯快)했다.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우렁찬 발사음은 땅을 진동했고, 대기를 갈랐다. 몸체에 '대한민국'을 새긴 누리호는 한국을 세계 7대 우주 강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순수 기술로 만든 발사체, 그래서 더 값진 성공이다.

우주를 향한 장대(壯大)한 발걸음이다.

우렁찬 폭발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는 불기둥! 주역 34번째 괘 '뢰천대장(雷天大壯)'의 형상이다.

우렁찬 폭발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는 불기둥! 주역 34번째 괘 '뢰천대장(雷天大壯)'의 형상이다.

우렁찬 폭발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는 불기둥! 주역에도 있다. 34번째 괘 '뢰천대장(雷天大壯)'이 그것. 우레를 상징하는 진(震, ☳)이 위에, 하늘을 뜻하는 건(乾, ☰ )이 아래에 놓였다.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곧 '우르르 쾅' 천둥이 대기를 찢는다. 이어 시원한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져 대지를 적신다. 장관(壯觀)이요,  웅장(雄壯)한 자연의 협주곡이다. 그래서 괘 이름 '대장(大壯)'이다.

'壯(장)'은 강성(强盛)하다는 뜻이다. 장성(壯盛)하게 성장해 웅장(雄壯)하게 발전한다. 괘 형상에 그대로 나타난다. 강건한 양효(陽爻, ─)가 아래부터 차곡차곡 쌓여 네 번째에 이르고 있다. 양의 기운이 성장해 음(陰, --)을 몰아내는 형상이다.

사람으로 차지면 30대 건장(健壯)한 시기다. 그래서 30대를 장년(壯年)이라고 한다.

괘 이름에 '大(대)'가 붙었으니 '장대함의 끝판왕'이라고 할만하다. 누리호 발사에 딱 어울리는 괘다.

'壯(장)'은 강성(强盛)하다는 뜻이다. 강한 양효(陽爻, ─)가 아래부터 차곡차곡 쌓여 네 번째에 이르고 있다. 양의 기운이 성장해 음(陰, --)을 몰아내는 형상이다. /바이두

'壯(장)'은 강성(强盛)하다는 뜻이다. 강한 양효(陽爻, ─)가 아래부터 차곡차곡 쌓여 네 번째에 이르고 있다. 양의 기운이 성장해 음(陰, --)을 몰아내는 형상이다. /바이두

어디 누리호뿐이겠는가. 우리는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웅장(雄壯)한 기술이나 제품, 콘텐트를 많이 갖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이미 넘사벽이고, 배(조선)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든다. 스마트폰도, 자동차도 1류급이다. 피아노도 잘 치고 영화, 노래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는 그렇게 각 분야에서 장대한 역사(役事)를 이뤄냈고, 만들고 있다.

'뢰천대장' 괘는 단순히 장대함을 예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성공에 이르는 과정과 그 이후의 마음가짐 등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하나 추적해보자.

창대한 끝도 출발은 미약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출발 단계에서는 격려와 성원이 필요하다. 걸음마 단계 꼬마에게 뛰라고 하면 아이를 망칠 뿐이다. '뢰천대장' 괘의 첫 효사(爻辭)는 이렇게 말한다.

壯于趾, 征凶, 有孚

'장성의 기운이 발가락에 있다. 무리하게 정벌에 나서면 흉하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

아직 초보 단계다. 자신의 힘이 충분하지 않는데 무모하게 경쟁에 나선다면 승산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흉하다. 실패도 겪어야 한다. 당연하다. 이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孚), 그리고 지지와 성원이다.

러시아 기술을 받아 발사한 나로호가 처절하게 실패하고, 누리호 1차가 간발의 차이로 어긋났을 때 일부 비난도 일었다. 주역은 '그리 비난만 해선 안 된다'라고 가르친다. 우주로 가는 길에 어찌 실패가 없을 수 있겠는가. 우리 연구진은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지 않았던가.

"발전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와 있고, 마지막 단계만 남았습니다. 2차 발사에는 성공할 수 있도록 격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해 10월, 누리호 1차 발사 결과를 발표하던 권현준 과기정통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끝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격려를 부탁드리겠습니다'를 말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고생했던 수많은 연구원의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그 순수한 열정이 만든 성공이다. 러시아의 온갖 방해와 무시 속에서도 '반드시 우주로 나가겠다'는 과학도들의 '장지(壯志, 장대한 의지)'가 이룬 쾌거다.

强而能謙

강할수록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일은 극에 달하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物極必反). 이렇듯 '잘 나갈 때 조심하라'고 주역은 말한다. '실패는 성공을 품고 있으니 좌절할 일도 아니다'라고 희망을 얘기하기도 한다. '대장' 괘 역시 다르지 않다. 주역은 작은 성공에 취해 오만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세 번째 효사는 이렇다.

小人用壯, 羝羊觸藩, 羸其角

'소인은 작은 성취를 이용한다.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다가 그 뿔이 울타리에 걸리고 마는 꼴이다.'

작은 성과에 만족해 흥분하는 소인(小人)의 행동을 숫양에 비유했다. 막무가내로 날뛰다 울타리에 뿔이 꼬여버린 양의 형상이다. 강할수록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장대한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성공은 축제다. 그러나 20, 30번 쏘아 성공하면 그건 평상(平常)의 일이 된다. '쏘아 올리는 것은 이제 껌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발사체의 장대함은 완성된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貞吉, 壯于大輿之輻

'바름을 지켜야 길하다. 큰 수레의 바큇살처럼 강하니 멀리 갈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성공시키고야 말겠다는 초심(初心)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게 바로 바름을 유지하는 길이요, 정(貞)이다. 그럴 때라야만 비로소 먼 길 가기 위한 큰 수레의 바큇살을 마련할 수 있다.

'뇌천대장' 괘는 성공했을 때 몸가짐, 마음가짐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할수록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바이두

'뇌천대장' 괘는 성공했을 때 몸가짐, 마음가짐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할수록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바이두

또 다른 대한민국의 웅장한 역사, 반도체 얘기다.

한국 반도체 기술은 세계 최고다. 그러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기술은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자율주행 자동차 등 미래 산업은 더 정밀한 반도체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분야 강자이지만, 여전히 전체 시장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약하다.

갈 길은 멀다. 중국은 '반도체 공정'을 기치로 뒤에서 바짝 추격하고 있다. 반도체 강국으로 남기 위해 서는 튼튼한 '수레 바큇살(大輿之輻)'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분야 등록 특허 건수에서 2002~2006년까지만 해도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였다. 그러던 것이 2007~2011년에는 일본에 뒤졌고, 2012~2016년에는 중국에도 밀렸다. 지금은 중국의 60% 수준에 불과하다(한국경제신문, 2022. 6. 24).

등록 특허는 단순히 내면 되는 '출원 특허'와는 다르다. 얼마나 '쓸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니 문제라는 것이다.

반도체로 먹고사는 나라다. 그런데도 반도체 인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대학은 정부 규제 때문에 더 뽑을 수 없다고 말하고, 정부는 지방 국회의원이 무서워 수도권 대학에 정원을 늘리지 못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혹 우리는 작은 성취에 취해 더 큰 수레바퀴 찾기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장대(壯大)한 성공'은 '장렬(壯烈) 사망'으로 끝날 수도 있다.

'뢰천대장' 괘는 마지막 효사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羝羊觸藩, 不能退, 不能遂, 無攸利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물러서지도 나아가지도 못하니 이로울 것이 없다.'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았으나 거꾸로 울타리에 뿔이 꼬이고 말았다. 장대한 성공도 이처럼 위기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누리호도, K-반도체도, 배터리도 기술에서 뒤지면 끝이다. '장렬(壯烈)한 사망'이라며 자신을 위로하는 상황을 자초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여섯 번째 효사는 뒤에 이런 말을 붙인다.

艱則吉

'고난을 피하지 마라, 그래야 길하다.'

위기의식이다. 기술에서 뒤지면 울타리에 뿔이 꼬인 숫양처럼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어야 보다 장대한 성공이 가능하다. 쉬운 길만 찾으려 하고, 편안한 방법에만 의존하려고 하면 발전은 있을 수 없다. 고난을 피하지 마라! 어떤 어려움에서도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

이상률 항우연 원장 등 연구원들이 누리호 성공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상률 항우연 원장 등 연구원들이 누리호 성공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성공했을 때 몸가짐, 마음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작은 성공에 취해 오만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을 얕보면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그러니 강할수록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초심을 잃지 말고 바름을 지켜야 한다.

雷在天上大壯, 君子以非禮弗履

'하늘 위에 우레가 있으니 대장(大壯)이다. 군자는 이로써 예가 아니면 따르지 않는다.'

큰 성공을 이뤘을수록 예의를 잃지 말라는 뜻이다. 공자는 이 말을 받아 더 엄격한 마음가짐을 주문했다.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아라!'

누리호 성공 기자회견장. 이상률 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은 '소감을 말해달라'는 기자의 말에 이처럼 담담하게 말한다.

"오늘의 성공이 끝은 아니고요,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결과 분석해서 더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더 큰 수레바퀴'를 확보하겠다는 다짐이다. 이 원장은 '강할수록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군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와 같은 '군자' 연구원들이 버티고 있기에 대한민국 우주개발의 내일은 밝다. 더 장대한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의 담대한 여정에 찬사를 보낸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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