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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뒤 "영혼 팔았다" 비판까지...탈원전이 부른 '13조 재앙'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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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 평화는 언제 올까요. 푸틴(오른쪽)의 침공 결정 후, 메르켈 전 총리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을 파헤쳐봅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평화는 언제 올까요. 푸틴(오른쪽)의 침공 결정 후, 메르켈 전 총리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을 파헤쳐봅니다. AFP=연합뉴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도 그렇죠. 퇴임한 지 벌써 반년이 거의 돼갑니다만 그의 ‘무티(Muttiㆍ엄마)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는 국내에선 여전한 듯합니다. 그런데, 유럽에선 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영국 더타임스는 지난 3일, ‘메르켈의 레거시는 망가졌다’는 칼럼을 실었죠.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메르켈을 비판하는 글이었습니다. 이미 퇴임한 메르켈이 무슨 상관이라는 건지, 파고 들어봤습니다. 핵심 키워드는 메르켈의 탈원전 정책입니다. 메르켈은 퇴임했으나 그가 재임 당시 밀어붙였던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러시아가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는 게 요지입니다.

메르켈 총리는 탈원전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대안을 러시아 가스에서 찾았습니다. 그렇게 추진했던 게 ‘노드 스트림(Nord Stream)2’ 프로젝트였습니다. 노드, 즉 북쪽, 즉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직접 끌어오는 가스관을 만든 것이죠. 사실 이 프로젝트는 빈사 상태까지 갔다가 탈원전 정책으로 기사회생했고 가속이 붙었습니다. 당시 미국이 반대했지만, 메르켈은 밀고 나갔습니다. 그만큼 탈원전 정책에 대한 의지가 강했죠. 결국 발트해를 통해 러시아 북부와 독일을 연결하는 해저 가스관은 지난해 완공됐습니다. 이 1207㎞에 달하는 가스관 건설을 위해 들어간 예산이 110억 달러(약 13조원)라고 합니다. 연간 550억 세제곱미터에 달하는 가스가 독일로 유입되는데, 이는 독일의 연간 가스 소비량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 대가로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인 가스프롬은 연 150억 달러(약 18조원)에 달하는 연 수익을 전망합니다. 독일이 에너지 안정 수급을 위해 러시아에 영혼을 팔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죠.

메르켈 전 총리. AFP=연합뉴스

메르켈 전 총리. AFP=연합뉴스

탈원전을 향한 메르켈의 돌파력은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습니다. 메르켈의 후임인 올라프 숄츠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지난달 7일 만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노드 스트림 2를 끝장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죠. 푸틴은 그러나 들은 척 만척,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영국 더타임스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노드 스트림2 가스관은 이미 망했고, 메르켈의 레거시 역시 마찬가지로 망했다”며 “메르켈 총리가 푸틴과 계속해서 손을 잡기로 고집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지정학적 계산 착오이자, 시대적 망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매섭게 비판했습니다.

메르켈 전 총리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것은 물론, 러시아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을 겁니다. 메르켈 전 총리 본인도 푸틴 대통령과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사이입니다. 개(犬)를 무서워하는 메르켈을 만나는 자리에 푸틴이 자신의 커다란 반려견을 일부러 짓궂게 데리고 왔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켈 전 총리는 탈원전에 대한 소신과 철학으로 노드 스트림 2를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신과 철학은 지정학적 질서의 미묘한 뉘앙스를 무시했죠. 결국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개를 무서워하는 메르켈 당시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자신의 반려견을 데리고 온 푸틴. 메르켈의 얼굴 표정이 굳어있습니다. AFP=연합뉴스

개를 무서워하는 메르켈 당시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자신의 반려견을 데리고 온 푸틴. 메르켈의 얼굴 표정이 굳어있습니다. AFP=연합뉴스

여기서 잠깐. 노드 스트림 2가 있다면 노드 스트림 1도 있었겠죠? 여기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노드 스트림 1 프로젝트를 시작한 인물은 메르켈의 전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였습니다. 한국인과 재혼하며 화제를 뿌린 그 슈뢰더 전 총리입니다.

가스프롬 기업 로고 앞에 서있는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사진은 2006년에 촬영됐습니다. AP=연합뉴스

가스프롬 기업 로고 앞에 서있는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사진은 2006년에 촬영됐습니다. AP=연합뉴스

슈뢰더는 메르켈 총리보다 더 큰 비판에 직면한 상태입니다. 그가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의 이사직을 내려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슈뢰더 전 총리는 또 다른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의 이사장도 맡고 있습니다. 로스네프트는 노드스트림 2 가스관을 건설한 회사이기도 하고, 미국의 대러 제재 명단에 오른 기업이기도 합니다. 이해 충돌(conflict of interest) 이슈도 있고, 우크라이나 사태 맥락에서도 슈뢰더 전 총리에 대해 비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달 24일 링크드인 사이트에 “필요한 제재는 취해야겠지만, 유럽과 러시아를 이어온 유대가 끊어지지는 않아야 한다”고 썼습니다. 물론 러시아의 무력 사용은 비판했지만, 민간인 사망자까지 발생한 상황에서 그의 입장은 뜨뜻미지근하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물론, 슈뢰더 전 총리는 현재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막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의 포탄은 우크라이나 곳곳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다치고, 가족들이 헤어지고, 어머니들이 울고 있습니다. 메르켈 전 총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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