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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돈줄 묶었다, 김정은도 떤다…두 남자 울린 스위스 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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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측의 스위스 내 자산을 동결하겠다고 스위스 정부가 밝혔다. 사진은 지난달 1일 크렘린 궁에서의 푸틴 대통령. AP=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측의 스위스 내 자산을 동결하겠다고 스위스 정부가 밝혔다. 사진은 지난달 1일 크렘린 궁에서의 푸틴 대통령. AP=연합뉴스

스위스가 당초 중립 유지 입장을 뒤집고 유럽연합(EU)의 대(對)러시아 금융제재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공식화했다. 스위스 연방의회 회의를 주재한 이냐치오 카시스 대통령이 직접 밝힌 내용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물론,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 및 EU 제재 대상 명단에 오른 367명의 러시아의 재벌 격인 올리가르히들의 스위스 내 자산이 동결될 것으로 보인다. EU 및 미국의 금융제재가 칼을 칼집에서 빼든 정도라면, 이번 스위스의 결정은 그 칼을 직접 겨눈 셈이다. 제재의 실효를 담보할 수 있는 핵심적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스위스 내 러시아 기업 및 개인이 보유한 자산 규모는 2020년 기준 약 110억 달러(13조 2495억원)에 달한다고 NYT는 전했다. 라브로프 장관이 이를 막기 위해 급히 제네바행 국적기 아에로플로트에 탑승하려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EU가 라브로프에 유럽 내 여행 금지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제재의 실효다.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 의사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AFP=연합뉴스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 의사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AFP=연합뉴스

이는 스위스에도 위험한 도박이다. 중립국으로서 쌓아온 국가 정체성을 흐리고 경제적 이득에 타격을 줄 수 있어서다. 당초 스위스는 이를 고려해 미온적인 입장을 취했었다. 카시스 대통령 본인이 지난주 “(제재 이후) 러시아로부터 새로이 유입되는 자금은 막겠지만 예금주들의 계좌 접근은 막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카시스 대통령은 “스위스의 중립국으로서의 위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공격을 지시하고 민간인 사망자 숫자가 나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우선 스위스 내 대러 여론이 악화했고, 카시스 대통령의 마음도 바뀌었다. 카시스 대통령은 28일 회의에서 “EU회원국(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례 없는 공격”을 이유로 들면서 러시아 자산의 즉각 동결 방침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스위스는 앞으로의 사태를 중재할 의향이 있다”며 여지는 남겨뒀다.

카시스 대통령은 이탈리아계 스위스인으로, 원래 의사였다. 취리히대 및 로잔대에서 의학박사를 취득한 뒤 의사로 일하다 정치에 입문했다.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스위스의사협회에서 일하며 부회장직까지 오른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계 입문 후엔 의외로 외교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다 지난해 부통령으로 일했으며 그해 12월 대통령으로 선출돼 올해 1월1일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중립국인 스위스의 정체성에 따라 푸틴 대통령이나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과도 수 차례 회담한 바 있다.

이때만해도 웃을 수 있었다. 왼쪽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과 지난 1월회담할 때다. EPA=연합뉴스

이때만해도 웃을 수 있었다. 왼쪽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과 지난 1월회담할 때다. EPA=연합뉴스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지난 1월 회담 중인 스위스 카시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지난 1월 회담 중인 스위스 카시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카시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만 해도 중립국 지위 유지에 방점을 찍었다. EU와 미국이 잇따라 제재를 발표했으나 그는 적극적 참여엔 선을 그었던 것도 카시스였다. 그러다 지난달 24일 기자회견부터 어조가 달라졌다. 자산 동결이라는 스위스로서는 가장 핵심적 제재뿐 아니라 스위스 영공을 러시아 국적기가 지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일련의 제재에도 동참했다. NYT는 “스위스에게 중립국 지위라는 것은 전통이자 의미가 큰 전략”이라며 “이를 잠시 내려놓았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전했다. 이번 조치는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에게도 안 좋은 뉴스다.

카시스 대통령은 이번 자산 동결 조치를 공식화하며 “이번 전쟁은 ‘푸틴의 전쟁’”이라며 “당장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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