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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비극은 인류의 위기" 유발 하라리 작정하고 꼬집었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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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들도 우크라이나를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유로파리그 플레이 오프 2차전 후, 나폴리와 FC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전쟁을 멈추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님, 보이시나요? 로이터=뉴스1

축구선수들도 우크라이나를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유로파리그 플레이 오프 2차전 후, 나폴리와 FC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전쟁을 멈추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님, 보이시나요? 로이터=뉴스1

색칠공부 책을 들고 아빠손에 이끌려 지하 방공호를 찾은 아이들. “무기 버리지 않으면 쏘겠다”는 러시아 군의 경고 방송에 “쏠 테면 쏴봐 이 개OO들아”라고 항변하는 이들. 우크라이나의 시민들이 처한 실시간 현실입니다. BBCㆍCNN은 25일 이런 모습을 보도하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건투를 빈다”고 한목소리로 전했다. 21세기 하고도 22년째인 지금, 한국에서 약 7000㎞ 떨어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게 우크라이나 국민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끝내 전쟁을 택했습니다. 23일(현지시간) 폭격 현장. [CNN 캡처]

푸틴 대통령은 끝내 전쟁을 택했습니다. 23일(현지시간) 폭격 현장. [CNN 캡처]

한국에선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국제적 두고 국내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제각각의 해석이 난무합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 싱크탱크 얼굴 격인 국립외교원의 수장인 홍현익 박사는 24일엔 “우크라이나의 어리석음이 오히려 주(요)원인”이라고 페이스북에 적은 데 이어, 25일엔 통일부ㆍ국가안보전략연구원 등과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 가입으로 러시아를 자극한 것이 전쟁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홍 원장은 특히 “미국과 러시아 같은 강대국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쟁을 시작한 건 러시아인데 우크라이나가 어리석기 때문이라니,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 탓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고종이 무력했기 때문일까요? 6ㆍ25라는 동족 상잔의 비극의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최근 외교안보 관련 부처 및 기관들의 상황을 보아하면 경천동지할 언급 축엔 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만, 민간인 피해까지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세금으로 월급을 타는 이가 이렇게 반(反)인권 발언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페이스북 캡처.

페이스북 캡처.

대신, 찾아봤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다룬 석학들의 글입니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해석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를 넘어선, 인문학적인 석학의 글은 없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찾았습니다. 이스라엘 출신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45)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11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하라리는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등 국내에서도 반향이 큰 젊은 석학이죠. 이코노미스트는 기고문 제목을 “유발 하라리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위태로운 것은 인간 역사의 방향이라고 논한다”고 달았습니다.

유발 하라리. [중앙포토]

유발 하라리. [중앙포토]

물론 하라리가 하는 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그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러시아어 번역본을 출간하면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008년 크리미아 반도 합병을 비판한 부분을 통째로 삭제하며 구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라리는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고 말했지만 러시아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비판은 잠재우지 못했죠.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이번 이코노미스크 기고문은 주목을 받을만 합니다. 하라리가 작정하고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원문 번역 요약본입니다. 매끄럽게 읽힐 수 있도록 약간의 윤문을 했음을 미리 밝혀 둡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무탈을 기원합니다.

러시아 군 폭격으로 엉망이 된 우크라이나 민간인 가정. [중앙포토]

러시아 군 폭격으로 엉망이 된 우크라이나 민간인 가정. [중앙포토]

우크라이나 위기에 놓인 근본적인 질문의 핵심은 역사의 본성, 그리고 인류의 본성에 관련돼있다. 변화란 가능한가? 인간은 행동양식을 바꿀 수 있는가? 아니면 역사는 그저, 인간이 과거의 비극을 현재에 다시 행하면서 끊임없이 되풀이될 뿐인가? (중략)

변화의 증거는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지난 몇 세대 동안 핵무기는 강대국 간의 전쟁을 집단 자살의 광기로 바꾸었다.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강대국 간의 전쟁은 역사의 현저한 특징으로서 발현했지만, 지난 약 70년 동안 강대국 간에는 직접적 전쟁은 없었다.

그와 같은 기간 동안, 세계 경제는 물질 기반에서 지식 기반으로 변환했다. 부의 원천이 금광이나 밀밭 또는 유전(油田)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었던 것은 과거이며, 이젠 부의 주 원천은 지식이다. (중략) 문화에 있어서도 구조적 변화가 생겨났다. 역사적으로 엘리트라고 하면 훈족 또는 무솔리니처럼 전쟁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세대 동안, 사상 처음으로 전쟁을 악하며 피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엘리트들이 역사의 고삐를 쥐었다. 조지 W 부시 또는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이들조차 과거 훈족같은 개념과는 다르다. 그들 역시 국내 정치를 개혁하겠다는 꿈을 꾸면서 집권했을뿐 외국 정벌을 주요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으니까. (중략) 이 모든 변화의 결과, 대부분의 정부는 전쟁을 멈췄고, 대부분의 국가는 이웃 국가를 합병하는 환상을 꿈꾸는 것을 중단했다. (중략)

전쟁의 몰락은 신성한 기적 또는 자연 법칙의 변화 덕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선택을 하려는 인류의 노력 덕택에 이뤄진 성과다. 아마도 근대 문명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적 그리고 도덕적 성취가 아닐까.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의 선택으로 가능했던 성과는 인간의 선택으로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듯 하다.

(중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려는 위협(역자 주: 이미 사실이 됐다)에 대해 지구 상의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강대국이 자국보다 약한 이웃 국가를 늑대처럼 잡아먹겠다고 하는 행태가 다시금 정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것이다. 군사비는 비약적으로 증강될 것인데, 돈이 쓰여져야 하는 곳은 군이 아니라 교사와 간호사 그리고 사회복지사들이다. 탱크나 미사일, 사이버 무기가 아니다.

(중략) 우크라이나에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예단은 어렵다. 그러나 역사학자로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 순진해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관점에서다. 인간 역사의 유일한 상수(常數)는 변화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수십년 동안 독재와 폭력에 시달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은 끔찍한 재앙을 견뎌왔다. 그리고 다른 선택을 했다. 역사에도 불구하고, 빈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민주주의를 구축해냈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존재다. 새로운 평화라 할만하다. 그렇기에 약하고도 약하며 오래 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원히 지속될 가능성도 열려있다. 모든 오래된 것들은 한때 새로운 것이었다. 인간의 선택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원문: https://www.economist.com/by-invitation/2022/02/09/yuval-noah-harari-argues-that-whats-at-stake-in-ukraine-is-the-direction-of-human-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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