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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장소 왜 벨라루스?...푸틴 꼭두각시, 이와중에 종신집권 개헌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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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유독 공손한 자세로 악수하는 인물이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대통령이다. 사진은 지난 18일 회담 후 기자회견 직전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유독 공손한 자세로 악수하는 인물이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대통령이다. 사진은 지난 18일 회담 후 기자회견 직전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28일 평화회담에서 극적 합의를 이룰 수 있을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그리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 그는 회담 예정 하루 전인 27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회담 결과는 믿지 않는다”면서 “그래도 대표단에 시도는 해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여기엔 회담 장소의 정치학이 숨어있다.

양국이 마주 앉는 곳은 인접국 벨라루스 남동부의 고멜이라는 소도시다.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는 벨라루스라는 점부터 받아들이기 힘들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사실상의 앞마당인 데다, 이번 공격에서 교두보 역할을 했던 곳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벨라루스와의 합동 훈련을 명분으로 삼고 접경 지역에 자국 군대를 주둔시킨 뒤 그 병력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중립국이자 유럽의 한복판인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담을 원했으나 상황의 긴박성 때문에 일단 뜻을 접었다. 여기엔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역할도 있었다. 루카셴코가 젤렌스키에게 전화를 걸어 중립성을 보장하겠다고 설득을 한 것.

젤렌스키는 27일 연설에서 “루카셴코 대통령과의 통화는 매우 실질적이었다”면서 “전쟁을 끝낼 기회가 있다면 회담에 참여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재자가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라는 점은 그러나 우크라이나엔 썩 유리한 신호는 못 된다. 루카셴코는 노골적인 친러 성향이다. 푸틴 대통령과도 가깝다. 지난해 연말도 함께 보낸 사이다. 12월29일(현지시간) 푸틴이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그를 초청해 회담을 하면서다. 둘은 회담 후 아이스하키장에서 선수복에 하키 스틱까지 쥔 채 함께 경기를 관람하는 친분도 국제사회에 과시했다.

지난해 12월29일 아이스하키를 함께 관람하는 푸틴과 루카셴코. AP=연합뉴스

지난해 12월29일 아이스하키를 함께 관람하는 푸틴과 루카셴코. AP=연합뉴스

루카셴코 본인 역시 자유민주주의 성향과 거리가 있다. 1994년 벨라루스의 초대 대통령으로 정권을 잡았는데 아직까지 현직이다. 부정선거 등 의혹에 휩싸이면서도 28년간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유럽 최후의 독재자”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루카셴코는 독일의 성소수자 외교장관이 그를 두고 독재자라고 비판하자 “게이보다는 독재자가 낫다”고 응수했다가 되레 “독재자인 걸 인정하는 거냐”는 역풍을 맞기도했다. 지난해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루카셴코를 합성한 사진도 등장해 화제가 됐다. 루카셴코를 김정은 위원장에 빗대어 독재자로 묘사한 메시지였다.

루카셴코에 반대하는 벨라루스 시위대가 그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합성한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루카셴코에 반대하는 벨라루스 시위대가 그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합성한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평화회담을 앞두고 벨라루스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27일, 루카셴코는 개인의 국내정치 기반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는 집권 10년을 맞은 2004년 국민투표를 통해 임기 조항을 삭제하면서 종신집권을 꾀했으나, 야당의 극렬한 반대로 지난해 12월, 한 사람이 세 번 연임을 할 수 없다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개헌안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2025년 대선에 선출되는 새 대통령의 임기부터 적용된다는 조항 때문이다. 즉, 루카셴코가 2025년 대선에 선출되면 그때부터 3연임의 길을 터주는 장치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될 경우 그는 2035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1954년생인 그는 2035년이면 81세다. 사실상의 종신집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루카셴코에 반대하는 2020년의 한 집회. AP=연합뉴스

루카셴코에 반대하는 2020년의 한 집회. AP=연합뉴스

루카셴코 대통령의 권력을 지탱하는 것은 그가 노골적 친러 성향의 대가로 얻고 있는 경제적 이득 덕이다. 그는 지난해 푸틴과 회담을 통해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대신 정치적 간섭을 가능하게 하는 일명 ‘벨라루스-러시아 통합을 위한 28개 로드맵’에 합의했다.
그는 다양한 망언으로도 유명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두고는 “정신병의 일종일 뿐”이라고 했다가 역풍을 맞았고, “여성이 대통령 되는 건 어렵다”는 말도 악명 높다. 2006년 시위대가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박수를 치자 ‘박수 금지법’을 제정해 연행한 적이 있는데, 당시 시위대엔 사고 등으로 팔을 잃은 이들도 포함돼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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