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무향에 시신도 벌떡” 오대장의 제주 옛길 이야기

  • 카드 발행 일시2024.04.30

지난 21일,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공치왓 평원. 40여명의 트레커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제주 옛길을 탐방하는 모임으로 산악인오희준기념사업회 소속 멤버들이다. “옛길을 찾아 걷는다”가 이들의 모토다. 이날은 애월의 ‘오름 삼대장’ 한대오름(921m)과 노로오름(1070m, 노루오름), 바리메(763m)을 한꺼번에 가는 날이었다.

제주 오름 트레킹을 이끄는 오문필 대장. 제주 애월읍 한대오름 오르기 전, 오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주 기자

제주 오름 트레킹을 이끄는 오문필 대장. 제주 애월읍 한대오름 오르기 전, 오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주 기자

매달 열리는 걷기 모임은 2005년부터 한라산등산학교 교장을 지낸 오문필(68)씨가 이끌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그를 ‘오 대장’이라 부른다. 동행한 이들은 한결같이 “오 대장만큼 제주의 산을 잘 아는 이는 드물다”고 했다. 한라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그는 중학교 2학년이던 1971년에 처음 백록담(1947m) 정상에 올랐다. 생업은 감귤 농사. 예전 탐라역사문화연구소에서 일본 전적지 탐사를 할 때 현장을 지휘했으며, 한라산둘레길을 개척하는 데도 앞장섰다. 또 청소년들과 함께 둘레길 걷기 등 ‘사회적 걷기’를 실천 중이다.

산악인 오희준은 2007년 고(故) 박영석(2011년 안나푸르나에서 작고) 대장과 함께 에베레스트 남서벽에서 ‘코리안루트’를 개척하던 중 눈사태로 유명을 달리했다. 사고 전까지 히말라야 8000m 10개 봉우리 등정과 남극점·북극점을 탐험한 세계적인 산악인이었다. 내달 16일이 그가 떠난 지 17년 되는 날이다.

“이 일대 넓은 밭을 공치왓이라고 했어요. 공치는 제주 말로 곰취라는 뜻이고, 왓은 밭입니다. 그만큼 곰취가 많이 나던 곳인데, 물이 모이는 분지라서 습한 곳이죠. 여기가 약 7만평(약 23만㎥) 정도 되니까 마라도만큼 넓은 면적입니다. 예전 제주 서쪽 애월·한림 사람들이 이 평원을 지나 한라산 오르는 길목이었지요. 지금처럼 등산로가 없을 때 새별오름과 화전마을 지나, 그리고 여기서 한대오름·노루오름 중산간을 거쳐 백록담으로 올랐어요. 아쉽게도 지금은 골프장이 생겨 옛길은 없어졌지만. 저 어릴 적 벌초하러 다닐 때도 모슬포에서 이쪽으로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처음 한라산을 오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짙은 산안개를 뚫고 정상에 오른 순간 갑자기 구름이 걷히더니 백록담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라산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시작된 날이다. 그리고 산악부 활동을 하던 고등학교 시절엔 윗세오름에서 야영하며, 산악 활동에 빠졌다. 2005년부턴 제주산악연맹 산하 한라산등산학교 교장을 맡아 후배를 양성했다. 산악인 오희준과는 제주대 산악부 선후배 사이다.

하루 3개의 오름 트레킹에 나선 오희준기념사업회 회원들. 김영주 기자

하루 3개의 오름 트레킹에 나선 오희준기념사업회 회원들. 김영주 기자

길인 듯 아닌 듯, 옛길을 따라 걷는 오름 트레킹은 호젓하고 한적했다. 옛길은 식생도 다양했다. 숲이 우거진 가운데 길옆으로 햇고사리가 한창이고, 두릅 순도 제법 보였다. 한대오름 가는 길은 곶자왈 지대였다. 수풀이 우거져 또렷하진 않았지만, 바닥에 검은 현무암이 보였다. 오 대장은 “해발고도와 식생만 다를 뿐 지형은 산 아래 곶자왈과 같다. 밟고 있는 돌 아래로 물이 흐른다”고 했다. 제주 말로 곶은 숲, 자왈은 덤불이라는 뜻이다.

사월의 곶자왈 숲은 상산(常山) 나무가 뿜어내는 향으로 가득했다. 상산은 더덕 향기처럼 강렬한 향을 내뿜는 키 작은 식물이다. 이파리를 한두잎 따서 손바닥에 비벼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아찔할 정도다. 이날은 안개 자욱한 날씨 탓인지 향이 더 진했다.

더덕 향을 내뿜는 상산 나무. 날이 흐려서인지 더 강렬한 향기가 났다. 김영주 기자

더덕 향을 내뿜는 상산 나무. 날이 흐려서인지 더 강렬한 향기가 났다. 김영주 기자

옛날 제주 사람들은 상산을 긴요하게 썼다. 특히 뒷간 주변과 장례를 치를 때 애용했다. 뒷간에 심으면 재래식 화장실 냄새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구더기가 덜 생겼다. 강한 향 때문에 초파리를 쫓는 효과도 있다. 또 집에서 초상을 치르던 시절엔 방향제로 맞춤이었다. 늦은 봄이나 여름에 초상을 치를 때 시신이 부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관 밑이나 위에 상산을 깔면 냄새를 중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내 상산 향에 취해 걸었다. 걷다 보면 팔과 다리에 상산 나뭇가지가 쉼없이 스치며, 향을 내뿜었다.

한대오름 분화구 전 얕은 오르막에서 오 대장이 걸음을 멈췄다. 예전 표고버섯 밭이 있던 자리라고 했다. 해발 고도 600~800m 지점이다.

“제주는 땅이 척박한 탓에 농사로 먹고살기 힘드니까, 한라산 중산간에서 생업이 많이 이뤄졌어요. 소를 방목하고, 표고버섯 농사를 하고, 숯 굽는 일이었지요. 이게 다 한 데서 이뤄졌어요. 왜냐면 내내 표고만 할 수 없고, 숯만 구울 수도 없으니까요. 사람들이 중산간에 품 팔러 오는 동안에 이 일 저 일 번갈아가며 하는 거지요. 표고 농사를 하는 와중에 짬이 나면 숯을 굽고, 그걸 소나 사람이 짊어지고 산 아래로 팔러 나가는 거죠. 그래서 예전엔 한라산엔 나무가 많지 않았어요. 제주에서 산림 자원이 가장 많이 훼손된 게 해방 전 1944년부터 해방 전까지 1년 동안입니다. 일본 관동군의 여러 사단이 필리핀 쪽에서 오는 미군을 막는다고 대거 제주 중산간에 들어와 있었잖아요. 그해 겨울에, 일본군이 기름이 없으니까 제주 사람들한테 숯을 공출했어요. 그때 산 아래 곶자왈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거의 다 베어져 나갔죠. 지금도 그루터기만 크지만, 둥치는 작은 나무들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