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완 “대가리 뭉개버린다”…전두환 칠 기회 3번 있었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4.23

<제2부> 한남동의 총소리

2회.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1979년 12월 12일 밤은 대한민국 군부의 치부를 노출했다. 공식 지휘부는 우왕좌왕 무능했다. 시간대별로 정리해 보면 그 흐름이 드러난다.

전두환에게 맞선 장태완의 고군분투

그날 밤 두 주인공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장태완 수경사령관이었다. 전두환 세력에 정면 반발한 군인은 사실상 장태완 혼자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날 장태완의 행보는 전두환의 쿠데타에 맞서는 진압군의 행적이다.

신군부 주역들이 1979년 12·12 쿠데타 직후 서울 보안사령부 앞마당에서 기념촬영했다. 앞줄 왼쪽에서 넷째가 노태우 9사단장, 앞줄 왼쪽에서 다섯째가 전두환 보안사령관. 연합뉴스

신군부 주역들이 1979년 12·12 쿠데타 직후 서울 보안사령부 앞마당에서 기념촬영했다. 앞줄 왼쪽에서 넷째가 노태우 9사단장, 앞줄 왼쪽에서 다섯째가 전두환 보안사령관. 연합뉴스

장태완은 정승화 참모총장 인맥의 대표다. 그래서 전두환은 12월 12일 저녁 그를 술자리에 묶어두려 했다. 김재규 인맥의 대표인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함께. 그러나 장태완은 정승화 연행 후 불과 10분 만에 술자리에서 튀어 나왔다.
연행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총장이 연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던 부인이 당번병을 시켜 윤성민 참모차장 등 육군본부 지휘부 관계자들에에 전화를 돌려 “괴한이 총장을 납치했다”고 신고했다. 이 소식은 즉시 김진기 육본 헌병감에서 보고됐다. 김진기는 장태완과 같은 술자리에 있었다.

장태완은 김진기의 보고를 듣자마자 ‘전두환의 쿠데타’를 직감했다. 이미 그런 움직임에 대한 첩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촌 요정에서 필동(수경사령부 소재지. 현재의 남산 한옥마을)으로 달려가면서 부대에 비상을 걸었다.
수경사령관 직속 부대 지휘관 가운데 핵심은 3명의 단장(대령)이다. 청와대 주변을 경비하는 30경비단장 장세동(육사 16기), 외곽을 경비하는 33경비단장 김진영(육사 17기), 헌병단장 조홍(육사 13기)이다. 3명의 단장은 모두 비상소집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두환의 부름에 따라 경복궁 30경비단에 가 있었다.

장태완은 전투가능한 실병력이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육군 최고지휘부는 모두 정승화 쪽 사람들이었다. 참모총장이 없는 상황에서 최종명령권(군령권)을 대신할 수 있는 육군참모차장 윤성민, 수도권 부대를 모두 거느린 3군사령관 이건영, 그리고 공수부대를 관장하는 특전사령관 정병주에게 전화를 돌렸다.

장태완은 밤 8시40분쯤 윤성민과 통화하면서 쿠데타 지휘부가 30경비단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30단에 전화했다. 평소 선배라 부르며 가깝게 지냈던 유학성 군수차관보와 황영시 1군단장이 “이쪽으로 오라”며 포섭하려고 했다.
괄괄한 성격의 장태완은 “더러운 놈들, 전차로 대가리를 깔아 뭉개 버리겠다”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