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방에 쌀 한톨 없었다…죽음마저 흔적 없던 남자

  • 카드 발행 일시2024.04.16

나는 유품정리사다. 홀로 떠나는 이들의 ‘마지막 이사’를 돕는 사람이다.
그들의 마지막 이삿짐을 보면 대략 짐작한다.
내일을 꿈꾸던 사람.
오늘도 포기한 사람.

스스로 죽음을 택하진 않아도 지금의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마지 못해 사는 사람들.
그저 매일 조금씩 죽음의 곁으로 떠밀려가는 사람들이다.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슨 대단한 삶의 욕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무런 의욕이 없는 삶.
오로지 술에 의지한 채 느린 숨만 쉬는 삶.
당장 아슬아슬하게 연명에 필요한 만큼의 돈만으로 버티는 삶.

삶에 대해 말하는 수많은 명언들이 어느 순간 가슴에 ‘찡~’ 하고 울릴 때가 있는데,
그건 그 말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내가 이미 아는 내용이라서 그렇다.

“당신이 헛되이 보낸 오늘은 누군가 그토록 원했던 내일이다.”

64세 남자의 방은 오래도록 시간이 멈춘 공간 같았다.
퀴퀴한 곰팡내 진동하는 반지하.
생전 열어 본 적이 없었던 듯 먼지가 수북한 창틀.
환기를 위해 열어보려 했으나 어찌나 뻑뻑하든지 애를 썼다.

여느 반지하집보다는 빛이 꽤 들어오는 구조였는데도 그랬다.
가끔 창문만 좀 열어놨더라도 이렇게 곰팡이가 번지진 않았을 텐데.

한 번도 손대지 않은 창틀은 철창처럼 무거웠다.
깨끗한 공기, 말끔한 공간, 남자는 그 무엇도 관심이 없다는 듯 살았다.

고인은 건축일을 다녔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내내 이 곰팡내 나는 반지하에서 창문도 닫고 살았던 모양이다.

냄새. 습기.
보통 사람이면 진저리칠 만한 공간 속이었지만,
의외로 방안은 단촐하게 정돈돼 있었다.
아니, 살림살이라고 할 거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어질러 놓을 물건도, 뭔가 먹고 쌓아둔 쓰레기도 없었다.

사계절 옷이라 해봐야 작은 옷장에 몇 벌.
갈아입을 최소한의 여벌 속옷과 양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