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 다 터졌는데 “멀쩡해요”…그게 배달원 마지막이었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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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에 위치한 원룸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작은 주방이 있고 방 하나. 그리고 작은 베란다가 나온다.
문에서 베란다까지 그냥 좁게 뻥 뚫린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원룸 베란다에는 대부분 보일러가 설치돼 있다. 그리고 세탁기를 놓을 수 있는 작은 공간 정도.

좁은 베란다에 들어서자 바닥에 놓인 프라이팬이 눈에 띄었다.
‘저게 저렇게 쓰라고 있는 게 아닐 텐데….’
이미 타버리고 남은 잿가루가 프라이팬 속에서 아슬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프라이팬을 툭 차니 형체는 바스스 무너져내렸다.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에 대한 것인지,
잘못된 선택을 막지 못하는 무력한 사람들에게 향한 것인지.
괜한 화풀이를 분간하지 못하고 되돌아 나왔다.

40대 후반의 남성은 배달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혼자 살면서 중국집 배달을 했다.
배달업체가 월급이 더 많다는 말에 중국집을 그만두고 직장을 옮겼다.
중국집에선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했는데,
택배업체로 옮긴 뒤에는 새벽에도 배달하는 일이 잦아졌다.
일은 고됐지만 그러니 월급이 더 많을 수밖에.

고인이 근처 편의점 사장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던 터라 짧게나마 사정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고인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스스로 사정에 따라 근무시간을 정하는 구조였지만, 새벽시간까지 일하려는 기사들이 적어 매번 고인이 나섰다고 한다.
가끔 편의점에 들르면 수척한 얼굴에 안색까지 거뭇해져 잔소리 아닌 잔소리도 했단다.

“날이 풀리면 기사들도 많아진대요. 그럼 좀 편해지겠죠.”
늘 같은 대답을 짧게 하며 머쓱하게 웃음 짓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불운은 그림자도 매달지 않고 조용히 찾아왔다.

눈이 내리던 밤이었다.
어둡고 좁은 골목을 내달리던 오토바이는 코너를 돌던 찰나 미끄러지며 뱅그르르 돌았다.
추위에 얼어붙었던 바닥을 미처 보지 못했다.
늦은 밤 야식을 배달하러 가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였다.

처음 경험한 사고는 그의 온 정신을 쏙 빼놓았다.
살을 에는 추위였다.
두꺼운 옷과 장갑을 꼈던 터라 그나마도 다행이었다.

사고 직후 정신이 없는 통에 어디가 아픈지 느껴지지도 않았다.
행인이나 다른 차량에 피해가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도 배달통을 살폈다.
그나마 배달 음식은 외관상 멀쩡.
오토바이도 다시 시동이 걸리는 걸 보니 괜찮다 싶었던 모양이다.
급한 대로 부랴부랴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끝냈다.

배달을 마치고 사무실에 가서 ‘작은 사고’가 있었음을 알렸다.
“다른 차나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것은 아니죠?”
배달업체 사무실 직원의 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며 늦은 밤 끼니거리를 챙기려고 편의점에 들른 남자.
편의점 사장이 그 몰골에 놀랐다.
패딩 점퍼의 오른쪽 부분은 다 터져서 너덜너덜했다.
절뚝거리는 다리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남자는 그날따라 평소 잘 마시지도 않는 소주를 두 병이나 샀단다.
절뚝절뚝 편의점을 나서는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술로 때울 게 아니라 병원엘 가야지.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도 내일 되면 여기저기 아플 텐데.”
“괜찮아요, 멀쩡해요-.”
남자는 습관처럼 웃음을 지어보이곤 편의점을 나섰다.

‘절대 멀쩡하지가 않은데. 연고나 붕대라도 챙겨줄걸….’
편의점 사장은 찜찜한 마음으로 그를 보냈다.

그 뒤로 남자는 몇 차례 더 편의점을 들렀다.
안 사던 소주를 몇 병씩 사고, 끼니도 안 될 보잘 것 없는 안주거리를 계산대에 내밀었다.
괜찮냐는 인사에도 딱히 답을 안 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무너지고 있었다. 그걸 느꼈지만 그럴 줄은 몰랐다.

타고난 성실함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억지로 욱여넣던 삶에 지쳤을까.
매일매일이 한계였는데, 그날 택배 사무실 직원의 한마디에 우르르 무너져 내린 걸까.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은 말일 수도 있는데….
물론 그가 그 이상의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사람보다 일을 더 걱정하는 ‘조직’.
택배사 직원 개인의 냉정함보다는 그렇게 만들어버린 회사의 냉혹함.
그런 것에 어느 순간 확 무너져내린 걸까.

어디 뼈가 부러지거나 꿰멜 만큼 찢어지거나 한 게 아니라서.
그냥 괜찮다고 말은 했겠지만, 그 몸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며칠은 출근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차디찬 베란다 바닥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불을 지폈다.
타오르는 연기 속에서 생은 꺼져만 갔다.
유서도, 메모도 없었다.
홀로 버틴 40대 인생의 시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계는 혼자 움직이지 못한다.
시침을 움직이려면 분침도, 초침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다.

초침처럼 빨리, 많이 뛰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느긋한 시침이 움직일수 있는 것이다.
어느 잘난 사람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 ‘시간’을 움직인다는 잘난 이들이
단 1초에 쫓겨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들을 ‘느리다’ ‘잘다’며 나무라서야 되겠는가.

그 역시 그랬다.
그가 부지런히 날라주는 배송으로 누군가는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그래서 그를 고용한 회사는 돈도 벌고.
물론 그 역시 그 벌이로 먹고살고….
어느 하나 남의 도움 아닌 것이 없는 세상이다.

그렇게 맞물린 세상에 ‘서열’이란 게 있을까.
직업의 ‘귀천’이란 게 있을까.
그런 건 없다고 다들 생각은 하지만,
남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너무 ‘귀한’ 세상이 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