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과 절친의 ‘잘못된 만남’…바퀴벌레 속 그녀의 일기장

  • 카드 발행 일시2024.03.12

의뢰가 온 곳은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였다.
강남 어딘가의 오피스텔 원룸이었다.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동네였다.

현관문은 고급스럽다는 느낌까지 줬다.
하지만 문을 열자 겉모습과 너무 다르게 집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무엇보다 강렬한 시취가 훅 하고 숨통으로 밀려왔다.
시신은 한 달 이상 방치됐다.
고인은 20대 여성이었다.

시취에 얼마간 적응하고 나니 음식물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발 디딜 틈 없이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쓰레기 산 위로, 골짜기 아래로 온통 새까맣게 무리 지은 바퀴벌레들이 일제히 싹 달아났다.
도망가는 바퀴벌레들을 쓰레기와 함께 그러모아 비닐봉투에 부지런히 담았다.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비닐봉투 안에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소리가 바사삭 징그럽게 들려왔다.

내 직업에선 흔한 광경이지만 여전히 혐오스럽다.
옷 속에 가려진 팔뚝에선 이미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고 있었다.
직원이 보는 앞에서 약한 척하기 부끄러워 억지로 무덤덤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은둔하는 이들은 외출을 꺼린다.
누구든 만나는 걸 거부할 뿐 아니라, 누구에겐가 목격되는 것 자체도 두려워한다.
그래도 배는 고프다. 굶어 죽는 걸 택한 이들은 아니니까.
최소한의 끼니만 해결하려 해도 집 안은 금세 쓰레기장으로 변해간다.
배달음식이야 현관 앞에 놓고 가라고 하겠지만,
쓰레기를 현관 앞에 내놓고 치워 가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니.

은둔형 외톨이의 집에선 그렇게 쓰레기 위에 쓰레기가 계속 쌓인다.
밑에 깔려 있는 쓰레기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점점 납작해진다.
나는 쓰레기의 두께로 ‘은둔의 시간’을 짐작한다.
지층으로 연대를 측정하는 지질학자처럼 말이다.

‘은둔의 시기가 오래되지 않았나 보다.’
이 집의 쓰레기는 그 정도의 양은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를 얼추 걷어내고 나니 세상과 단절 이전, 고인의 삶이 드러났다.
배달음식 용기 쓰레기 더미 아래엔 다이어트 제품과 약들이 묻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