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다락방 꾸미던 할아버지…죽음은 ‘악마의 설계’ 같았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3.19

누구나 죽음을 알지만 아무도 때를 모른다.
병마와 싸워도 상대는 내게 패배의 시점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물며 ‘화마’ 같은 재앙은 더더욱 그렇다. 미리 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겠는가.

유품정리사로서 많은 사람의 마지막을 배웅하며 참 인생의 덧없음을 느낀다.
아무리 멀리 두려 해도 두렵다.
죽음이란 어느 순간 가까이에 있다.

꽤 오래전의 일이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끔찍했던 사연이라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고인 아들의 전화였다.
그의 부모님은 한적한 시골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찾아뵙는 시골 농가는 손주들이 늘면서 점점 더 비좁아졌다.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창고로 쓰던 다락방을 직접 수리하기 시작했다.
좀 더 넓은 공간. 편한 잠자리.
그래야 더 자주 찾지 않을까, 그래야 와서 좀 더 오래 머물지 않을까.
그런 바람이셨던 것 같다.

여름방학에 찾아와 신나게 놀고 간 손주들.
그 여름이 지나고 날이 좀 선선해지자,
70대 노인은 설렘을 가득 안고 다락방을 고치기 시작했다.

노인의 머릿속엔 쪽창문 하나 없는 구식 다락방은 없었다.
그저 어린 손주들이 재미나게 뛰어놀 놀이방이 이미 설계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