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성 차에서 나온 유서…“네” 연인은 전화 뚝 끊었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4.02

유난히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었다.
철썩철썩. 파도도 거칠었다.
내가 도착한 현장은 한적한 해변가 도로였다.
겨울이 오기 전이었지만 바닷바람이 매서웠다.

이런저런 곳에서 유품정리 의뢰를 받았지만,
이번에 다소 의외의 장소였다.
해변가 차량 속 유품을 정리해 달라니….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전화로 전해 받은 현장은 비교적 쉽게 찾았다.
평일 낮에 해변가 도로에 차량 하나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으니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누군가는 생을 마감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끔찍한 기억을 남기게 됐다.

차량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여니 매캐한 냄새가 훅 밀려왔다.
맵고 싸한 향에 시취가 흐릿하게 잠겨 있었다.

가장 먼저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실종신고가 돼 있었을까, 가족은 있을까.

그날의 흔적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6일 전 밤이었다.
밤바다에 차를 세워둔 40대 초반의 남자가 뚜벅뚜벅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 새벽 4시가 돼서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되돌아왔다.
아마도 어디선가 밤새 술을 마신 것이리라.
그의 손엔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보이는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차를 탔고 시동은 켜지 않았다.
그것이 남자의 마지막이었다.
빈 차량엔 빈 맥주캔들이 나뒹굴었다.
그리고 희거무튀튀하게 연소된 그것이 재로 남았다.

트렁크 안에서 커다란 박스 두 개를 발견했다.
열어 보니 옷가지며 개인 물건들이 가득했다.
뭔가 남기려 했던 유품이라기보다 그냥 도피 중인 사람의 물건 같아 보였다.
뒷좌석에도 쓰레기와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가라앉길 반복했지만,
어쨌든 간단히라도 정리를 해둬야 했다.
곧 오기로 한 견인기사를 배려하기 위함이다.
내겐 익숙하지만 남들에겐 평생 한 번 있을까 싶은 일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