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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에게 발견한 뜻밖의 모습…“다빈치” 이영애는 놀랐다 (113-끝)

2024.04.18 15:31

이름을 거창하게 짓는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야.” 실질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은 망설임 없이 마지막 것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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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자네 무쇳덩어리야?” 술자리 버틴 박태준에 놀랐다

2024.04.17 15:03

총 119개

  • JP에게 발견한 뜻밖의 모습…“다빈치” 이영애는 놀랐다 (113-끝)

    JP에게 발견한 뜻밖의 모습…“다빈치” 이영애는 놀랐다 (113-끝) 유료 전용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5335 "5·16 혁명 직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권력 의지가 약했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8884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0044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 정보부장은 오히라 일본 외상과 대일 청구권(請求權) 자금의 기본 골격을 마련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2444 독도 폭파론은 박정희·김종필 반대 세력의 단골 메뉴다.

    2024.04.18 15:31

  • 박정희 “자네 무쇳덩어리야?” 술자리 버틴 박태준에 놀랐다

    박정희 “자네 무쇳덩어리야?” 술자리 버틴 박태준에 놀랐다 유료 전용

    박 대통령은 온갖 반대와 비난을 무릅쓰고 1970년에 경부고속도로를 개통시켰고, 나는 1973년에 포철 1기 공사를 완성했던 것이다. 포철 1기 공사에 투입된 자금이 경부고속도로보다 3배가 많았으니 포철 대역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내에서는 반대가 심했지만 두 가지 방안의 장단점을 두루 살핀 박 대통령은 이 안을 흔쾌히 수용했다.

    2024.04.17 15:03

  • 활활 타버리고 재가 됐지만, 난 43년간 정치란 예술을 했다 (112)

    활활 타버리고 재가 됐지만, 난 43년간 정치란 예술을 했다 (112) 유료 전용

    그의 선거 개입 시비는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의 대통령 탄핵안 통과로 귀결됐으나 민심의 저변에선 야 3당에 분노하는 역풍이 불었다. 노 대통령의 경솔하고 거친 언행에 염증을 냈던 국민도 막상 현직 대통령이 국회 다수의 힘에 밀려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대통령을 보호하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대통령을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5년 단임 대통령제, 정치를 문제 해결을 위한 공존과 협상의 장이 아니라 편을 갈라 싸우는 전투의 현장으로 변질시키는 대통령 중심제 헌법 구조를 의원내각 책임제로 바꿔야 한다.

    2024.04.16 15:02

  • 박정희, 90타 ‘또박이 골퍼’…국가운영처럼 실용 앞섰다 (111)

    박정희, 90타 ‘또박이 골퍼’…국가운영처럼 실용 앞섰다 (111) 유료 전용

    혁명 분위기에 골프장에 나가는 걸 모두 꺼려 했지만 나는 일할 때는 일하고 쉴 때는 운동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솔선해 골프장에 나갔다. 5·16 혁명 직후 최고회의에서 "골프장을 모두 갈아엎어 식량 증산을 위해 콩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의를 했다. 박 대통령의 국가 운영 자세는 그의 골프 스타일처럼 실용을 우선했고 사전 준비가 치밀했다.

    2024.04.14 14:48

  • 대령 박정희 “선 오브 비치”…美장교 면전에 쌍욕한 사연 (110)

    대령 박정희 “선 오브 비치”…美장교 면전에 쌍욕한 사연 (110) 유료 전용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중압감을 주는 결정적인 문제가 주한미군 철수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우리는 약소국이었지만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면서 활용했다. 6·25전쟁 때 대한민국을 구한 미군의 희생, 베트남전에서 미군을 도운 우리의 파병을 포함해 두 나라의 특수한 관계를 일컫는 표현이다.

    2024.04.11 15:33

  • 딴 회사 임원에 “엎드려뻗쳐”…난 ‘포항 미치광이’ 자처했다

    딴 회사 임원에 “엎드려뻗쳐”…난 ‘포항 미치광이’ 자처했다 유료 전용

    "대한중석이 종합제철 건설을 맡게 됐고, 박 사장이 종합제철 건설추진위원장에 내정되었으니 즉시 귀국하라". 합의각서의 문제점을 보고하자니 그동안 KISA와 협상해온 장 부총리를 뒤에서 해코지하는 셈이고, 승복하자니 제철소 건설의 암초를 덮어두는 격이었다. 합의각서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 나가는 내 보고를 들으면서 박 대통령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결국 장 부총리가 유탄을 맞았다.

    2024.04.10 15:17

  • 6·25 반년 전 무시당한 보고서…박정희 “6월 북한이 침략할 것” (109)

    6·25 반년 전 무시당한 보고서…박정희 “6월 북한이 침략할 것” (109) 유료 전용

    6·25 남침 6개월 전인 1949년 12월 육본 정보국은 ‘연말종합적정(敵情)판단서’를 작성했다. 「 용어사전 > 현대사 소사전: 육사 생도(生徒) 2기 1950년 6월 1일 4년제 육군사관학교에 육사 10기(생도 1기)의 다음 기수로 정식 입교했지만 교육 20여 일 만에 6·25전쟁을 맞아 곧바로 전투에 투입된 비운의 기수. 6·25는 적이 기습 남침한 것이라고 한다.

    2024.04.07 15:36

  • 남산 자유센터 ‘치솟은 처마’…JP “자유냄새 물씬” 주문했다 (108)

    남산 자유센터 ‘치솟은 처마’…JP “자유냄새 물씬” 주문했다 (108) 유료 전용

    나는 건축가의 작품을 통해 5·16혁명의 시대적 지향성을 드러낸 적이 있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엔 건축가라 불릴 만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5·16혁명이 펼친 새 시대 진운(進運)의 정신은 공산주의 침략을 막는 ‘자유’이며 그 정신이 건축에 담긴 것이다.

    2024.04.04 15:10

  • “멀쩡하네”“죽은 줄 알았나” IMF 터진 후 YS 뜻밖의 모습

    “멀쩡하네”“죽은 줄 알았나” IMF 터진 후 YS 뜻밖의 모습 유료 전용

    이 부사장은 안기부장 (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서 온 극비 연락이라면서 노태우 대통령이 민정당 대표를 맡아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전했다. 며칠 뒤, 노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YS·JP와 나를 배석시켜 놓고 ‘민주적 경선’을 천명했다. 내가 이 말을 믿고 경선에 나서려 하자, YS는 물론 노 대통령까지 큰일날 것처럼 반대했다.

    2024.04.03 15:06

  • “이상을 잃을 때 늙는다” 퇴출론 맞서 英詩로 응수했다 (107)

    “이상을 잃을 때 늙는다” 퇴출론 맞서 英詩로 응수했다 (107) 유료 전용

    20대 6·25전쟁에서 발휘된 용기와 정밀한 사고, 30대 나이로 일으킨 5·16혁명의 열정과 상상력, 이후 정치적 고비마다 난국(難局)을 헤쳐나가면서 떠오른 영감과 지혜들은 그 시절 독서로 열고 다져진 내 정신세계에 차곡차곡 자랐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 세월을 거듭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을 때 비로소 늙게 된다(Nobody grows old merely by a number of years. We grow old by deserting our ideals.) 세월은 흐르면서 피부에 주름살을 남기지만, 정열을 잃으면 정신이 시든다(Years may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s the soul)…".

    2024.04.02 15:20

  • 40대 남성 차에서 나온 유서…“네” 연인은 전화 뚝 끊었다

    40대 남성 차에서 나온 유서…“네” 연인은 전화 뚝 끊었다 유료 전문공개

    해변가 차량 속 유품을 정리해 달라니…. 고인의 이름과 나이를 알 수 있었다. 이름과 나이를 알게 된 순간 시신은 지인처럼 말을 걸어온다.

    2024.04.01 16:34

  • 박정희, 높은 구두 안 신었다…‘JP룩’ 만든 JP의 패션 회고 (106)

    박정희, 높은 구두 안 신었다…‘JP룩’ 만든 JP의 패션 회고 (106) 유료 전용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나는 물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도 평상시 양복 대신 재건복을 즐겨 입었다. 나는 지금도 외출할 때 양복보다는 내가 디자인한 ‘JP표’ 간소복을 입을 때가 많다. 정치인이 옷차림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다.

    2024.03.31 15:19

  • 박정희 “임자는 자유로우니까”…외유 내몰린 JP 부러워했다 (105)

    박정희 “임자는 자유로우니까”…외유 내몰린 JP 부러워했다 (105) 유료 전용

    나는 1차 외유 중 영국에 며칠 머물면서 런던 시내 중심가에 있는 처칠의 워룸(war room)을 찾아갔다. 1차 외유 8개월 동안 유럽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행했다. 박 대통령이 나처럼 외국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면 생전에 더 많은 일,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2024.03.28 15:03

  • “박 선배 포철만 돌볼 겁니까” 괄괄한 그 전화, 전두환이었다

    “박 선배 포철만 돌볼 겁니까” 괄괄한 그 전화, 전두환이었다 유료 전용

    돌아보면 높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두루 거쳤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란 다섯 대통령과도 길고 짧은 인연을 맺었다. 국가가 미래를 위한 정치인을 필요로 할 때 당신은 또 정치인으로 그 부름에 응했다…". 번갈아 국가 최고권력자가 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육사에서 나의 생도였지만 당시에는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았다.

    2024.03.27 15:16

  • “혁명은 계급 아닌 애국심” 중공군과 싸운 JP의 ‘중국관’ (104)

    “혁명은 계급 아닌 애국심” 중공군과 싸운 JP의 ‘중국관’ (104) 유료 전용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부터 지금의 시진핑(習近平) 주석까지 수 세대에 걸쳐 중국 지도자들은 저마다 특장(特長)을 갖고 기회가 오면 그 기질을 발휘해 나라를 안정되게 발전시켰다. 과거와 다른 미래를 추구하지만 과거의 축적 없이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연속적이며 긍정적인 역사관이 덩샤오핑 이래 중국의 지도자들에게 흐르고 있다. 덩샤오핑 이래 중국 지도자들은 애국심, 실용주의, 연속적 역사관으로 나라의 안정된 발전을 이끌어 가고 있다.

    2024.03.26 16:53

  • 아빠는 지독한 독재자였다…도망간 엄마, 아들의 선택

    아빠는 지독한 독재자였다…도망간 엄마, 아들의 선택 유료 전용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놀았을 장난감부터 최근까지 사용했을 법한 물건까지 작은 방에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괴롭힐 사람이 없으니 편히 살라고? 그동안 겪었던 일은 잊고, 이미 간 사람 그냥 편히 떠나보내라고? 그래도 당신 아버지는 아들 물건을 하나도 버리지 못했더라. 그러니 너무 죄책감 갖지 말고 편히 살라고? 어쨌든 자기 살 길을 찾아갔던 청년은, 그래도 자식으로서 마지막 도리를 저버리진 않았다.

    2024.03.25 15:43

  • “중국 지도자 생각입니까?” JP 그림 해석, 장쩌민 놀랐다 (103)

    “중국 지도자 생각입니까?” JP 그림 해석, 장쩌민 놀랐다 (103) 유료 전용

    자민련 명예총재였던 나와 장쩌민 주석의 면담 장소는 중국 권부(權府)의 심장인 중난하이(中南海) 그의 집무실이었다. 내 말에 장쩌민 주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여기에 수많은 사람이 왔지만 저 글귀를 해석한 사람은 김 명예총재뿐입니다"고 했다. 내가 대통령 당선자 DJ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DJ의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6개국 선언’ 구상을 설명하자 장 주석은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찬동한다"며 긍정적 반응을 나타냈다.

    2024.03.24 14:57

  • “나혼자 남아 회고할 줄이야” 3김 마지막 생존자, 김종필 (102)

    “나혼자 남아 회고할 줄이야” 3김 마지막 생존자, 김종필 (102) 유료 전용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나와 정치 역정을 같이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이어 이제 YS마저 유명(幽明)을 달리했으니 나는 세상이 평하는 소위 3김(金)씨의 마지막 생존자가 됐다. 나는 정치 9단이 뭐냐는 물음에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것"이라는 말로 압축해 대답한 적이 있지만 정치 9단의 세계는 그 역설적 의미보다 훨씬 깊고 넓다.

    2024.03.21 15:06

  • “노무현 순진한 면모 봤다” JP 놀라게 한 ‘삼겹살 파티’ (101)

    “노무현 순진한 면모 봤다” JP 놀라게 한 ‘삼겹살 파티’ (101) 유료 전용

    나는 오히려 이회창 후보를 겨우 이긴 노 대통령이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지닌 거야(巨野) 한나라당의 선거불복 심리에 발목을 잡혀 국정을 제대로 끌고 갈 수 있을까, 나라의 안정성이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점을 염려했다. 노 대통령 본인으로선 내면의 솔직함과 국정 운영의 중압감을 표출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 "국민투표로 재신임을 받겠다" 등의 말은 나라를 충격 속에 몰아넣고 국민을 혼란에 빠트렸다. 2003년 12월 14일 청와대에 노 대통령 초청으로 나와 김원기 열린우리당 의장,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갔을 때도 야당 대표들은 대통령다운 신중하고 믿음직한 언행을 주문했다.

    2024.03.19 14:55

  • 김정일과 귀엣말한 국정원장…DJ 왜 고집스럽게 보호했나 (100)

    김정일과 귀엣말한 국정원장…DJ 왜 고집스럽게 보호했나 (100) 유료 전용

    이 총재로서는 97년 대통령선거에서 DJP 공조로 인해 분패한 쓰라림이 흉중(胸中)에 남아 있었겠지만 그런 응수는 상식에 벗어나고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이 총재는 ‘3김 정치 청산’과 ‘JP와의 제휴’라는 두 가지를 놓고 이것저것 저울질만 한 채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서 떠나간 어떤 의원은 "이 후보가 JP를 찾아간다면 내가 못 가도록 차 앞에 드러눕겠다"는 극언까지 했다고 한다.

    2024.03.17 15:13

  • DJ·김정일 55분 ‘車 밀담’…내겐 민감한 내용도 밝혔다 (99)

    DJ·김정일 55분 ‘車 밀담’…내겐 민감한 내용도 밝혔다 (99) 유료 전용

    DJ가 남북 정상회담을 실현하고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대북정책을 너무 성급히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과 의심이 야권에서 나왔다. 4월 10일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이 6월 평양에서 열린다고 공식 발표했다.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은 인민복 차림의 북한 김정일과 두 손을 마주 잡으며 감격스러워했다.

    2024.03.14 15:10

  • DJ “내각제 힘듭니다, 죄송” JP “다음 장으로 넘어갑시다” (98)

    DJ “내각제 힘듭니다, 죄송” JP “다음 장으로 넘어갑시다” (98) 유료 전용

    내가 정식 총리가 된 뒤 정가와 언론은 내각제 개헌에 관한 대통령과 나 사이의 갈등과 충돌 가능성에 주목했다. 대선 전에 합의서명한 ‘DJP후보단일화 협약문’에 따르면 "공동정부에서 내각제 개헌은 대통령이 발의하여 99년 말까지 완료한다. 자민련이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 도움을 줬고, 국민회의(99년 103석)와 합쳐 정부를 지탱할 수 있는 국회 내 의석(55석)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대통령과 제1 집권당의 존중을 받았던 것이다.

    2024.03.12 15:56

  • “박정희 업적 아무나 못한다” DJ는 진심으로 내게 평했다 (97)

    “박정희 업적 아무나 못한다” DJ는 진심으로 내게 평했다 (97) 유료 전용

    김대중(DJ)과 대선후보 단일화, 그리고 DJP 공동정권의 탄생. 며칠 전 박 대통령의 저서 출판기념회에 박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였던 김대중 총재가 참석했는데 이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18년 전 나는 박 대통령을 대신해 사과하는 의미로 DJ의 손을 잡았고 DJ 역시 박 대통령에게 화해의 악수를 청했다.

    2024.03.10 15:06

  • “나랑 하자” 은밀히 연락한 YS, “도와달라” JP 앞 주저앉은 DJ (96)

    “나랑 하자” 은밀히 연락한 YS, “도와달라” JP 앞 주저앉은 DJ (96) 유료 전용

    자민련과 국민회의는 내각제 개헌을 보장하는 장치와 후보를 단일화하는 방식을 두고 밀고 당기는 막후 협상을 진행했다. 김대중과 나는 없었던 걸로 하기엔 너무 먼 길을 함께 걸었고 여권에서 김영삼이 이회창 세력의 반발을 물리치고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기엔 대통령으로서 너무 힘이 빠져 있었다. 97년 10월 25일 김용환·한광옥이 ‘대선 후보 단일화 합의문’을 만들었다.

    2024.03.07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