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최연소 에베레스트 등반가, 10년 지기 잃고 한국 온 사연

  • 카드 발행 일시2024.04.16

“열여섯살에 친구 롭과 에베레스트 등정을 계획하고 이때부터 스스로 훈련하고 경비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이듬해 프랑스 몽블랑(4696m)으로 첫 훈련 등반을 갔는데, 각자 1000파운드(약 180만원) 정도를 모아서 떠났죠. 여름방학 동안 롭은 농장에서 일하고, 저는 식물을 키우는 화훼농원에서 12시간 일했어요. 그리고 저녁엔 펍에서 4시간 동안 접시를 닦았죠. 아버지는 제 계획을 얘기할 때마다 한 번도 ‘위험하다’ ‘안된다’고 말한 적이 없었어요. 반면 돈을 포함해 어떤 도움도 주지 않으셨죠. 제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네가 계획한 일이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네 힘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산으로 훈련 등반을 떠날 때도 절 거기까지 태워다 준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였어요. 당시엔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자립심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계속해서 원정과 도전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지요.”

지난 1월, 캐리어에 메고 딸과 함께 남미 파타고니아 토레스 돌 파이네 국립공원을 걷고 있는 제임스 후퍼. 사진 제임스 후퍼

지난 1월, 캐리어에 메고 딸과 함께 남미 파타고니아 토레스 돌 파이네 국립공원을 걷고 있는 제임스 후퍼. 사진 제임스 후퍼

제임스 후퍼(37)는 2006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당시 19세로 영국인 최연소 등정자가 됐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세계 최고봉에 오르겠다고 한 지 3년 만에 꿈을 이뤘다. 이후 제임스는 도전적인 탐험가의 길을 택했다. 2007년 롭 건틀렛과 함께 북극점에서 남극점까지 4만여㎞를 무동력으로 종단하는 프로젝트를 론칭했고, 이듬해 성공했다. 개썰매와 스키, 요트, 자전거, 트레킹 등 다양한 아웃도어를 망라한 대탐험이었다. 그러나 2009년, 몽블랑 등반 도중 ‘영원한 자일 파트너’인 롭을 잃고 만다. 이후 2010년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국으로 와 경희대 지리학과에 입학했다. 등산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중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지금은 경기 고양 북한산 자락에서 28개월 된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2021년엔 한라산(1947m)·지리산(1915m)·설악산(1708m)을 24시간 이내에 등반하는 ‘3픽스 첼린지’에 도전해 성공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한다.

지난 4월 13일 북한산 원효봉을 오르는 제임스 후퍼. 김영주 기자

지난 4월 13일 북한산 원효봉을 오르는 제임스 후퍼. 김영주 기자

지난 13일 제임스 후퍼와 함께 북한산 원효봉(505m)에 올랐다. 북한산성탐방센터에서 시작해 성곽을 따라 원효봉에 오른 뒤 대소문쪽으로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코스다. 그는 집에서 차로 20~30분 거리에 있는 이 트레일을 자주 걷는다고 했다.

“아내도 일하니까 둘이 번갈아가며 딸을 돌봐야 하잖아요. 나 혼자 즐기는 등산은 자주 할 수 없으니까, 집에서 가까운 원효봉을 자주 가는 편이에요. 평일에도 일 마치고 두세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얼마든지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으니까요.”

탐방센터에서 원효봉까진 약 2km. 1시간가량 가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주말엔 딸을 데리고 원효봉에 오르기도 한다. 딸을 ‘베이비시터’ 캐리어에 쏙 넣어 메고 간다.
“영국에선 이런 모습이 일반적인데, 한국에선 보기 드물더라고요. 같이 산에 갈 때마다 딸이 아주 신나해요.”

파타고니아에서 아내, 딸과 함께 걷고 있는 제임스 후퍼. 사진 제임스 후퍼

파타고니아에서 아내, 딸과 함께 걷고 있는 제임스 후퍼. 사진 제임스 후퍼

지난겨울 휴가 땐 아내, 딸과 함께 칠레 파타고니아 트레킹에 나섰다. 아직 딸이 어려 백패킹(Backpacking, 모든 짐을 지고 가는 트레킹)을 할 순 없었지만, 3주간의 휴가 동안 셋이 ‘데이 하이크( Day Hike)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되도록 많은 시간을 자연에서 보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저도 영국의 시골 길을 쏘다니다가 에베레스트 등정의 꿈을 키웠으니까요. 파타고니아 트레킹 땐 딸이 어려 캐리어 안에만 있었지만, 올여름이 되면 산책로 정도는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딸이 얼른 커서 딸과 함께 네팔 트레킹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