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살에 친구 롭과 에베레스트 등정을 계획하고 이때부터 스스로 훈련하고 경비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이듬해 프랑스 몽블랑(4696m)으로 첫 훈련 등반을 갔는데, 각자 1000파운드(약 180만원) 정도를 모아서 떠났죠. 여름방학 동안 롭은 농장에서 일하고, 저는 식물을 키우는 화훼농원에서 12시간 일했어요. 그리고 저녁엔 펍에서 4시간 동안 접시를 닦았죠. 아버지는 제 계획을 얘기할 때마다 한 번도 ‘위험하다’ ‘안된다’고 말한 적이 없었어요. 반면 돈을 포함해 어떤 도움도 주지 않으셨죠. 제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네가 계획한 일이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네 힘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산으로 훈련 등반을 떠날 때도 절 거기까지 태워다 준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였어요. 당시엔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자립심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계속해서 원정과 도전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지요.”
제임스 후퍼(37)는 2006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당시 19세로 영국인 최연소 등정자가 됐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세계 최고봉에 오르겠다고 한 지 3년 만에 꿈을 이뤘다. 이후 제임스는 도전적인 탐험가의 길을 택했다. 2007년 롭 건틀렛과 함께 북극점에서 남극점까지 4만여㎞를 무동력으로 종단하는 프로젝트를 론칭했고, 이듬해 성공했다. 개썰매와 스키, 요트, 자전거, 트레킹 등 다양한 아웃도어를 망라한 대탐험이었다. 그러나 2009년, 몽블랑 등반 도중 ‘영원한 자일 파트너’인 롭을 잃고 만다. 이후 2010년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국으로 와 경희대 지리학과에 입학했다. 등산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중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지금은 경기 고양 북한산 자락에서 28개월 된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2021년엔 한라산(1947m)·지리산(1915m)·설악산(1708m)을 24시간 이내에 등반하는 ‘3픽스 첼린지’에 도전해 성공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한다.
지난 13일 제임스 후퍼와 함께 북한산 원효봉(505m)에 올랐다. 북한산성탐방센터에서 시작해 성곽을 따라 원효봉에 오른 뒤 대소문쪽으로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코스다. 그는 집에서 차로 20~30분 거리에 있는 이 트레일을 자주 걷는다고 했다.
“아내도 일하니까 둘이 번갈아가며 딸을 돌봐야 하잖아요. 나 혼자 즐기는 등산은 자주 할 수 없으니까, 집에서 가까운 원효봉을 자주 가는 편이에요. 평일에도 일 마치고 두세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얼마든지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으니까요.”
탐방센터에서 원효봉까진 약 2km. 1시간가량 가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주말엔 딸을 데리고 원효봉에 오르기도 한다. 딸을 ‘베이비시터’ 캐리어에 쏙 넣어 메고 간다.
“영국에선 이런 모습이 일반적인데, 한국에선 보기 드물더라고요. 같이 산에 갈 때마다 딸이 아주 신나해요.”
지난겨울 휴가 땐 아내, 딸과 함께 칠레 파타고니아 트레킹에 나섰다. 아직 딸이 어려 백패킹(Backpacking, 모든 짐을 지고 가는 트레킹)을 할 순 없었지만, 3주간의 휴가 동안 셋이 ‘데이 하이크( Day Hike)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되도록 많은 시간을 자연에서 보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저도 영국의 시골 길을 쏘다니다가 에베레스트 등정의 꿈을 키웠으니까요. 파타고니아 트레킹 땐 딸이 어려 캐리어 안에만 있었지만, 올여름이 되면 산책로 정도는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딸이 얼른 커서 딸과 함께 네팔 트레킹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