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경제성장률 두고 ‘희망 고문’하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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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엔 우울한 소식이 이어졌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로 0.5%포인트 끌어내렸다. 피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기업 심리에 부담을 줬다” “민간 투자가 지난해 2분기 이후 지속해서 줄었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같은 날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1%로 낮췄다.

문제는 두 곳의 진단이 유별나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외 경제기관 중 올해 한국경제를 낙관한 곳이 드물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경제성장률을 2.4%에서 2.2%로 낮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ㆍ한국개발연구원(KDI)ㆍ금융연구원도 성장률을 각각 2.6%에서 2.4%로 하향 조정했다. 피치와 함께 신용평가사 ‘빅3’로 꼽히는 무디스는 2.3%에서 2.1%, S&P는 2.5%에서 2.4%로 내렸다.

이들 기관이 성장률을 낮춘 근거로 꼽은 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 단축 같은 정부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의 핵심 정책이다. 하지만 전날인 17일 대통령 직속 소주성 특별위원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선 ‘자화자찬’이 쏟아졌다.

“튼튼한 내수 기반 없이 수출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장 모델이 문제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소주성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말해준다(홍장표 위원장).”
“소주성은 여전히 유효한 정책으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이재명 경기도지사).”

정부는 매달 고용 동향을 발표하고 경제 동향을 분석할 때마다 “잘하고 있다” 내지는 “긍정적 요소가 있다”는 평가를 반복해 왔다. 고용률이 높을 땐 “고용률 상승이 의미 있다”, 실업률이 최악일 땐 “공무원 시험 원서 접수철이다”, 실업자가 최대일 땐 “(실업자가 많은 게) 항상 부정적인 건 아니다. 실업자는 경기가 풀려 구직활동이 늘어날 때도 증가한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당연히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도 가장 높은 수준(2.6∼2.7%)이다.

경제성장률 전망은 가장 기본적인 경제 ‘진단’이다. 정확한 진단이 우선해야 정부가 적시에 경제정책을 짜고 필요한 곳에 재정을 푸는 ‘처방’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국내외 경제기관이 잇따라 경고음을 울리고 각종 경제 통계가 우울한 수치를 쏟아내는데도 엇갈린 진단을 고수하고 있다. “경제는 심리”란 말과 긍정의 힘을 믿는다. 하지만 듣기 싫은 진단은 외면하고, 통계는 입맛대로 해석하는 ‘희망 고문’이라면 사절한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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