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통계청을 누가 뒤에서 흔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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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통계청이 우리나라 경기가 언제 꼭짓점을 찍고 내려왔는지를 알 수 있는 ‘경기 정점’에 대한 판단을 보류했다. “경기 정점을 설정하기까지의 기간이 과거에 비해 짧고, 주요 지수의 변동 폭이 미미해 다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강신욱 통계청장이 여러 차례 ‘2017년 2~3분기 즈음’을 경기 정점으로 언급한 점을 감안하면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정치적 부담 때문에 결정을 미룬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학계에선 강 청장과 비슷하게 2017년 5월 또는 9월을 정점으로 본다. 이때를 경기 정점으로 선언하면 그 직후부터 경기가 내림세로 돌아섰다는 의미가 된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소득주도성장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인 시기다. 이렇게 되면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소득세 최고 세율 인상, 주 52시간제 시행 등에 대한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정부가 실물경기 흐름을 잘못 읽고, 허약해진 경제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펼친 셈이 되기 때문이다.

통계청장을 역임한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논의 형식 자체가 정치적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라며 “특히 이번 경기 정점을 설정하는 것이 부담이 컸던 만큼, 유보 결정은 충분히 예견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통계청은 예정에도 없이 ‘팔마비율’ 등 4개 소득분배지표를 발표했다. 올해 업무 계획에도 없었던 지표가 뜬금없이 공개된 데다, 그 내용도 정치적으로 오해할 만한 소지가 다분했다.

팔마비율을 보면 2016년 1.45배에서 2017년 1.44배로 소득분배가 개선된 것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선 30위다. “우리의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하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소득불평등이 악화했다”는 홍남기 부총리의 발언을 뒷받침하기에 딱 맞는 통계였다.

지난해 9월에는 가계동향조사 방법을 2년 만에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리기로 했다. 당시 통계청장의 갑작스러운 경질 논란으로 이어진 최악의 소득 양극화 결과를 보여줬던 바로 그 통계다. 이런 구설이 이어지다 보니 통계청을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처럼 국가 통계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된다면 통계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통계청장 임기를 4년으로 보장하는 통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금 여당이 됐다고 당초 발의 취지를 잊을 리 없다. 정부 스스로 통계청의 독립성·중립성 강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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