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수액 탓 패혈증으로 갑자기 숨졌을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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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대목동병원과 사망한 4명의 신생아 유가족과의 면담이 20일 오후 열렸으나 23분 만에 중단됐다. 유가족 대표는 이날 병원 로비에서 ’병원 측이 간담회 준비도 안 됐다“며 면담 거부 뜻을 밝혔다. [오종택 기자]

이대목동병원과 사망한 4명의 신생아 유가족과의 면담이 20일 오후 열렸으나 23분 만에 중단됐다. 유가족 대표는 이날 병원 로비에서 ’병원 측이 간담회 준비도 안 됐다“며 면담 거부 뜻을 밝혔다. [오종택 기자]

서울 이대목동병원에서 숨진 미숙아들의 세균 감염 원인이 ‘의료진’과 ‘수액’으로 좁혀지고 있다. 항생제 내성균 ‘시트로박터 프룬디’가 미숙아에게 침투해 패혈증을 일으켜 사망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이 보는 아기들 사망 원인 #“영양제 섞을 때 균 들어갔을 수도”

이대목동병원 자문단으로 활동한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0일 중앙일보 기자와 만나 “주사제와 수액이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영양제(완전정맥영양·TPN) 제조·보관 과정에서 병원에 있던 균에 오염됐거나 의료진이 영양제 주사를 환자에게 꽂을 때 오염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숙아는 몸무게가 2㎏도 안 된다. 애들이 균에 감염돼 갑자기 패혈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문단 일원인 기모란 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는 “세균 감염이 사망 원인인 건 명백한 상황이고, 세균에 감염됐을 만한 요인이 환자 처치 과정에서 이뤄졌을 것”이라면서 “사망 하루 이틀 전 수액을 주삿바늘에 꽂는 과정 등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TPN은 병원 무균조제시설에서 약사들이 몇 가지 성분을 배합하거나 제약사가 완제품으로 제조한다. 입으로 밥을 못 먹는 사람에게 정맥에 주사한다. 일반 정맥이 아니라 주로 중심 정맥에 주사한다. 중심 정맥의 혈류 감염은 신생아 중환자실 미숙아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18일 1차 브리핑에서 “완전정맥영양이 현재로선 (사망 미숙아의) 공통점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미숙아들은 TPN뿐 아니라 여러 가지의 수액 주사를 맞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감염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가 손을 소독하지 않은 채 지방 영양제인 스모프리피드를 TPN과 섞고 나누면서 주사기를 만지다 오염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또 수액을 개봉한 채 오래 뒀을 수도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TPN을 포함해 모든 주사제에 대해 세균 배양 검사를 진행 중이다. 또 주사제를 주입한 사람과 제조 과정을 조사하고 있다. 홍정익 질본 위기대응총괄과장은 “세균 감염은 사람 없이는 안 이뤄진다. 의료진이 감염의 매개체일 가능성이 크고, 한 사람이 균을 갖고 있다가 아기들에게 퍼뜨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도 “아기가 빠는 ‘쪽쪽이’(공갈 젖꼭지)는 소독도 안 하고, 한번 입은 위생복도 안 빨고 돌려 입었다”는 등 의료진의 위생 문제를 지적한다.

국과수도 질본처럼 감염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한영 국과수 서울과학연구소장은 “같은 오염원을 통한 감염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의료진을 매개로 한 감염도 배제하지 않는다”면서 “의료행위 과실, 항생제 과다 투여, TPN에 쓰인 약재 오류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정확한 원인은 언제쯤 나올까. 의료진이 쓰고 남은 주사액은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미생물 배양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19일 경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약물 투입기·수액 줄 등에 대한 분석도 곧 이뤄질 예정이다. 여기에서 시트로박터균이 나오면 감염 경로가 명확해진다.

수액이 감염 원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카테터 같은 의료 소모품이나 신생아 용품으로 균이 옮았을 수 있다. TPN 주사를 맞은 미숙아 5명 중 1명은 이상이 없다. 기모란 교수는 “숨진 아이들에게 TPN을 쓴 건 맞지만 이걸 쓴 아이들이 다 사망하진 않았다”면서 “사망에 이른 경로를 정확히 찾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유가족·병원 간담회 23분 만에 끝나=숨진 미숙아 유가족은 20일 오후 이대목동병원과 첫 간담회를 했다. 비공개로 열린 간담회에선 “분명히 똑바로 하라고!” 등의 고성이 이어졌다. 유족은 23분 만에 회의실을 나왔다. 이들은 사고 당시 의료진과 17일 병원 브리핑을 한 의료진이 모두 간담회에 참석할 것, 사망 전후의 상세한 자료 등을 요구했지만 병원이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유족 조모씨는 “병원의 준비 부족으로 면담이 의미 없이 끝났다”고 말했다.

정종훈·홍상지·이민영·김준영·하준호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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