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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0대 4 참패 뒤 “국민 패배 아니다” … 민심 못 읽은 문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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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8일 대표 취임 100일째를 맞았다. 50일이 지났을 때 그는 “국민 눈높이에 맞춰 변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었다. 50일간 더 먹겠다”고 했다. 하지만 4·29 재·보선에서 ‘0대4 참패’라는 쓴잔을 마셨다. 그 여파로 당내 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뭐가 문제였을까. 중앙일보 야당팀 기자들이 ‘문재인 정치, 실패의 순간 다섯 장면’을 되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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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이었다는 ‘국회의원 400명 돼야’ 발언=4월 6일 오후 당직자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대표가 너무 두들겨 맞지 않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날 오전 문 대표는 ‘국회의원 몇 명이 적당할까요’라는 설문 행사에서 ‘351명 이상’ 난에 스티커를 붙인 뒤 대뜸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부족하다. 400명은 돼야 한다”고 했다. 내부 조율 없이 대표가 한 발언에 당엔 비상이 걸렸다. 문 대표는 결국 “가볍게, 장난스럽게 한 것”이라고 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침 회의에서 “내가 자원외교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갈 테니 이명박 전 대통령도 나오시라”고 승부수를 띄운 것도 예기치 않은 말 실수에 묻혀버렸다.

 #"사면은 법무부 업무” 발언=성완종 리스트로 곤경에 빠진 새누리당이 “노무현 정권에서 이뤄진 성완종의 두 차례 특별사면을 해명하라”며 역공에 나선 4월 13일. 기자들과 만난 문 대표는 “사면은 법무부의 업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곧바로 새누리당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대통령 고유권한인 특별사면의 책임을 법무부로 떠넘겼기 때문이다. 문 대표의 최측근 인사는 “범죄 종류를 지정해 이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인을 사면하는 일반사면으로 잘못 이해하고 착각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정국 흐름을 뒤바꿀 만한 결정적 이슈에서 ‘헛수’를 둔 셈이다. 그는 이후 “참여정부 청와대엔 더러운 돈을 받고 사면을 다룬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결백을 강조했지만 민심은 싸늘해진 뒤였다. 당 내선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두 차례 사면이 노무현 정부에서 있었던 만큼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일단 사과드린다”는 유감표명이 없었던 것도 아쉽다고 당직자들은 말했다.

 #천정배 쫓아낸 공천 실패=“심상치 않은 광주 민심을 달래려면 천정배 전 의원을 사무총장에 기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문 대표 취임 직후 당 안팎에선 이런 제안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 카드는 무산됐다. 한 원외 인사는 “내 제안을 진정성 있게 듣지 않더라”고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4·29 보선에서 탈당한 천 전 의원에게 당의 후보는 더블스코어 차이로 졌다.

“관악을 선거 공천도 소탐대실(작은 걸 얻으려다 큰 걸 잃는다)했다”는 주장이 친노계 내부에서 나온다. 문 대표의 측근인 정태호 후보와 동교동계 김희철 전 의원 간 경선은 ‘50.3% 대 49.7%’라는 0.6%포인트 차로 희비가 갈렸다. 안 그래도 앙숙인 친노세력과 동교동의 갈등이 폭발했고 이를 지켜본 관악을 유권자는 27년 만에 새누리당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버럭 문재인’의 등장=이완구 총리후보자 인준 여부를 놓고 여야 갈등이 최고조이던 지난 2월 13일 문 대표는 아침 회의에서 “(총리 인준안을) 여야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우윤근 원내대표조차 “난 전혀 몰랐다”고 말했을 만큼 제안은 갑작스러웠다. 새누리당은 “16일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합의해놓고 말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그날 낮 영등포의 한 식당에서 열린 ‘50대 직장인들과의 만남’ 행사 뒤 기자들의 질문에 문 대표는 “왜 거기(새누리당)서 이야기를 듣고 이상한 소리를 하느냐. 16일 본회의를 열기로 했을 뿐인데 무슨 합의를 했다는 것이냐”고 버럭 화를 냈다. 젊은 기자들에게 유머와 여유를 잃은 ‘버럭 문재인’의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반성문 아닌 반성문=4·29 재·보선 참패 다음날 아침 문 대표가 국회에서 입장을 발표했다. 회견문엔 그러나 “이번 결과에 굴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할 것” “우리 당이 패배한 것일 뿐 국민이 패배한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야당을 0대4로 심판한 표도 국민인데 그의 메시지 속 ‘국민’은 누군지 아리송했다. 어정쩡한 반성문은 주승용 최고위원의 사퇴와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막말 파문으로 이어졌고 패장의 입을 주목했던 국민은 물론 당 내에서도 공감을 얻지 못했다.

◆중앙일보 야당팀=서승욱 팀장, 강태화·이지상·정종문·위문희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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