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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케리, 느닷없는 사드 발언 … 빛바랜 ‘친구 병세’ 구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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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8일 외교부 청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케리 장관은 방한 마지막 일정으로 용산 미8군을 방문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AP=뉴시스]
안효성
정치국제부문 기자

서론과 본론은 완벽했다. 문제는 결론이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1박2일 방한이 그랬다.

 외교부는 18일 하루 케리 장관의 입에 웃고 울었다. 오전에 있었던 한·미 외교장관 회담은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외교부 17층 회담장에 들어온 케리 장관은 “내 친구, 병세(Byung-se, my friend)”라는 말로 윤병세 외교장관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 공동기자회견의 분위기는 더 좋았다.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빛 샐 틈 없다(no day light)”라는 표현에 “현미경(microscope)으로 봐도 틈이 안 보인다”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위안부 문제에서부터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까지 한국 외교부의 등도 시원하게 긁어줬다. 위안부 문제에선 미 국무장관으론 처음으로 “일본군” 표현을 써 가며 일본의 책임을 명시했다. 집단자위권도 “한국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명명백백(crystal clear)”이라고 했다. 마치 한국 외교 위기론으로 곤경에 처한 ‘친구 병세’를 구하러 온 듯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외교부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방미 이후 ‘미·일 신(新)밀월 관계’가 부각돼 마음고생이 심했던 차였다. 한 당국자는 “그동안 우리가 설명해도 듣지 않더니 케리 장관이 말하니 이제야 믿는다”며 섭섭함을 드러낼 정도였다. 한·미 동맹이 미·일 동맹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 과거사에 있어서 미국이 결코 일본의 편을 들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사달은 그 다음부터였다. 방한 마지막 일정으로 용산 미8군에 간 케리 장관이 “바로 북한의 도발 때문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등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사드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던 케리 장관이었기에 더 갑작스러웠다. 종종 정제되지 않은 말을 해 구설에 오른 케리 장관이었지만 이번에는 시점이 절묘했다. 국내에서 수면 밑으로 들어간 사드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인 셈이다.

 외교부엔 비상이 걸렸다. 담당기자들에게 “양국 간 사드 배치 논의는 없었으며, 케리 장관이 말한 표현은 ‘미국 내부’를 뜻한다”는 설명을 담은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밤 11시쯤에는 주한미대사관 측에서 나온 해명 자료도 발송됐다. 사드 발언을 케리 장관이 의도적으로 했는지, 아니면 무심코 한 발언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번번이 미 고위 당국자의 말에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찜찜하다. 케리 장관의 위안부 발언과 한·미 동맹 발언은 한나절도 못돼 빛이 바랬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기분 좋은’ 공동기자회견 뒤 “외교란 일희일비해서는 안 되는 거다. 당장은 기쁘더라도 언제 상황이 변할지 모르니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었다. 결과적으로 케리 장관의 방한은 이 당국자의 말대로 됐다. 한국 외교의 위기 관리 노하우를 믿고 싶었기에 뒷맛은 더 썼다.

안효성 정치국제부문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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