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서쪽’으로 간 MBC 연기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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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상을 공동수상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左과 ‘에덴의 동쪽’의 송승헌. 김명민은 고집불통 외골수 지휘자 강마에 역을, 송승헌은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암흑가의 실력자가 되는 야망의 청년 이동철 역을 맡았다.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대상 공동수상자가 나온 것은 1985년 이후 23년 만이다. [MBC 제공]


“지상파 방송 연기대상이 무슨 애들 장난이냐. 개근상도 선행상도 아닌데 왜 죄다 공동수상이냐” “다른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시상식에 왜 부른 건가. 그냥 ‘에덴의 동쪽’ 출연진만 불러서 상 주면 될 것 아닌가” “어이없다. 대상마저 공동수상하는 식으로 줄 거면 내년엔 연기대상을 아예 없애라”….

지난 달 30일 밤 생중계된 ‘2008 MBC 연기대상’ 결과에 시청자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시상식이 끝난 지 만 하루가 지난 시점에도 인터넷 관련 게시판이 시끄럽다. 올라온 글을 보면 거의 예외없이 이번 시상식을 방송 3사 통틀어 ‘역대 최악의 시상식’으로 꼽고 있다.

30% 가까운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창사 47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 대상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상을, 그것도 부문별 공동수상이라는 형태로 몰아준 이해할 수 없는 결과 탓이다.

방송사 연기대상이 높은 시청률을 올린 자사 프로에 논공행상식 시상을 한 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에덴의 동쪽’이 ‘꿈의 시청률’이라 불리는 30% 고지에 다다른 점, 한류스타 송승헌을 내세워 방영 전 일본 투자를 끌어온 공로 등을 볼 때 ‘효자 드라마’인 것은 분명하다.

향후 동남아 수출까지 염두에 둔다면 상을 될수록 많이 주고 싶었을 법도 하다. ‘2007 MBC 연기대상’도 배용준 주연의 한류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대상을 비롯해 8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엔 해도 너무 했다. 일단 모양새가 좋지 않다. 출연 배우들이 받은 상은 거의 모두가 공동수상이다. 상 하나에 후보 4명이 올라 2명이 상을 받는 것도 어색한데, 2명 중 한 명이 번번이 ‘에덴의 동쪽’ 출연자라는 사실은 빈축을 살 만하다. 나연숙 작가 역시 ‘베토벤 바이러스’의 홍진아·홍자람 작가 등 4명과 ‘올해의 작가상’을 같이 받았다.

압권은 ‘베토벤 바이러스’ 김명민과 ‘에덴의 동쪽’ 송승헌이 함께 받은 대상이었다. 두 사람은 1985년 이후 23년 만에 나온 첫 대상 공동수상자다. 대상 발표 10여 분 전부터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들의 공동수상을 점치는 글이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혹시나’하는 의심은 ‘역시나’로 드러났다.

공동수상 남발 외에도 과연 이렇게까지 상을 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가에 대한 논란도 만만치 않다.

80년대를 연상케 하는 신파적 설정과 구닥다리 대사 등에 몰린 젊은 시청자들의 비판은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에덴의 동쪽’이 방영 초반부터 짊어져야 했던 무거운 짐이었다. 상을 받은 일부 연기자는 지금까지도 연기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류스타 송승헌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한 억지설정 탓에 운동권 여대생으로 출연하던 이다해가 중도하차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반면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 연기한 강마에는 역할 자체가 갖는 독특함이 혼신의 연기와 결합돼 여러 매체와 비평가들로부터 ‘올해 최고의 드라마 캐릭터’로 칭송받았다. 시청률과 작품성 양 쪽에서 고른 성적을 거뒀던 의학 드라마 ‘뉴하트’가 3개 부문 수상에 그친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MBC는 자청해서 상의 권위를 추락시켰다. 상이 상이 아니라 욕이 된 격이다. 상을 받은 ‘에덴의 동쪽’ 연기자들도 뒷맛이 개운치 않을 것이고, 공동으로 상을 받은 다른 드라마 출연배우들은 들러리를 섰나 싶어 언짢을 것이다.

새벽 1시가 되도록 3시간 가까이 TV를 지켜본 수많은 시청자들도 우롱 당한 느낌일 것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시상식인가. MBC는 ‘전파낭비’라는 욕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기선민 기자 문화스포츠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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