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0년 넘게 무대에 꽃다발 던지는 사나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은반의 요정’ 김연아가 생상의 ‘죽음의 무도’에 맞춰 멋진 연기를 끝내고 나니 박수 갈채와 함께 투명 비닐로 완전히 밀봉한 꽃다발과 인형이 얼음판 위로 비오듯 쏟아졌다. 팬들이 보내는 찬사의 표시다. 투명 비닐에 싸는 이유는 떨어진 꽃잎이나 인형의 털이 다음 선수의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오페라 극장에서도 꽃다발을 무대로 던지는 관습이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가 존 칼스(66)는 밀라노 라 스칼라, 빈 슈타츠오퍼, 런던 코벤트가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 4대 오페라 극장’의 시즌 오프닝 공연이라면 빼놓지 않고 관람한다. 오페라 공연 일정이 발표되면 출장 일정도 여기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는 아홉 살 때부터 오페라 극장에서 커튼콜 때 좋아하는 가수에게 꽃다발을 던져온 사람으로 유명하다. 꽃다발을 준비할 때도 나름의 법칙이 있다. 빨간 장미 열 여덟 송이, 특별한 경우엔 30송이를 던진다. 줄기를 충분히 길게 하고 가시를 모두 제거한다. 레몬과 양치 이파리로 장식한 다음 빨강 리본으로 묶는다. 셀로판지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 한 다발에 100 달러(약 13만원). 뉴욕 맨해튼의 ‘이선의 정원’에 근무하는 플로리스트 나초 레이스에게 전화하면 척척 알아서 만들어준다. 그는 오페라 극장 인근의 레스토랑 지배인과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중간 휴식 때까지 꽃다발이 싱싱하도록 냉장고에 잘 보관해달라고 부탁한다. 런던 코벤트가든에선 골목 건너편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베르토렐리에 맡긴다.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오페라 공연을 2600여회 관람했고 800여회나 꽃다발을 무대로 던졌다.

오페라 극장에는 오케스트라 피트라는 제법 넓은 공간이 객석과 무대 사이를 가로 막고 있기 때문에 꽃다발을 던질 수 밖에 없다. 꽃다발을 멀리서 던지면 오케스트라 단원이나 다른 관객의 머리 위에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꼭 1층 1열에 앉아야 한다. 오페라 극장에서 가장 비싼 자리 중 하나다. 칼스는 테니스ㆍ골프ㆍ스쿼시ㆍ수영을 해온 덕분에 꽃다발 던질 때 속도도 빠르지만 떨어지는 위치도 자로 잰듯 정확하다. 흉기를 던지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항상 두 손으로 던진다. 큰 공연에서는 무대에 꽃을 던지는 것도 경쟁이 심하다. 칼스는 자기의 꽃다발을 맨 먼저 무대에 정확히 던지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연주자 가운데는 간혹 꽃다발 투척에 놀라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백스테이지로 찾아가 고급 샴페인 돔 페리뇽을 한 병 선물하면서 다음부터는 꽃다발이 떨어지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고 가르쳐주기도 한다.

아쉽게도 런던 코벤트가든의 극장장 마이클 카이저는 1999년 재개관하면서 꽃다발 던지는 것을 금지했다. 칼스는 오케스트라 피트 위를 안전 그물로 덮으라고 제안했지만 극장 측은 이를 거절했다.

3월 1일 바르셀로나 리체우 극장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상연된 도니제티의 오페라 ‘루크레지아 보르지아’는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의 무대 인생 40주년, 바르셀로나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이었다. 커튼콜 때 관객은 꽃다발 선물도 모자라서 발코니석에서 오색 종이를 무대쪽으로 날렸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선 ‘오페라 입석 관람자 협회’(Opera Standee Association) 회원들이 던진다. 누구에게 꽃을 던질 것인가는 막간에 격렬한 토론을 거쳐 결정한다. 샌프란시스코 발레에서는 꽃다발 던지기는 개막 공연이나 초연일 경우에만 허용한다.

에드가 드가의 그림에는 발레 공연 도중 관객이 무대로 던진 꽃다발을 들고 있는 무용수의 모습이 나온다. 오페라ㆍ발레 공연 때 무대로 꽃을 던지는 관습은 유럽 쪽에서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공연 도중 꽃다발을 던지면 물기에 미끄러져 넘어질 위험이 있지만 공연이 일단 끝난 뒤에는 별 상관이 없다. 공연 시작 전부터 백스테이지 분장실에 꽃다발을 갖다 놓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공연 전에 무대 출입문에서 꽃다발을 받는 것은 공연 실패를 알리는 기분 나쁜 조짐이다.

콘서트홀에서는 굳이 꽃다발을 던지지 않고 무대 앞쪽으로 다가가 전달해줘도 된다. 2006년 12월 12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독창회에서 마지막 앙코르곡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 중 ‘프랑스에 대한 경례’가 끝나자 나이 지긋한 노인 한 분이 꽃다발을 들고 무대 앞쪽으로 나왔다. 조수미씨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는 준비해온 폭죽을 터뜨렸다. 유명 성악가 공연에는 어김 없이 나타나 장난 섞인 커튼콜 세러모니를 하는 파리의 ‘명물’이라고 했다. 꽃다발을 준비했다가도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잠자코 앉아 있는 ‘현장 평론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국내에선 객석으로 꽃다발을 들고 들어갈 수 없다. 물품 보관소에 맡겼다가 공연이 끝난 뒤 전달해야 한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11월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테너 김우경 독창회에서는 커튼콜 때 객석에서 대여섯 사람이 꽃다발을 들고 나와 무대로 던졌다. 공연 주최측에서 백스테이지에 대기시켜 놓은 도우미가 무대로 나와 꽃다발을 주는 경우도 있다.

꽃다발은 박수와 마찬가지로 공연에 만족했을 때 나오는 관객 반응이다. 다른 관객에게 열렬하게 박수를 보내라는 뜻의 신호탄이다. 물론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꽃다발 대신에 썩은 달걀이나 토마토를 던지기도 한다. ‘썩은 토마토’는 미국의 모든 영화 평론가,기자들의 평을 모아 10점 만점으로 환산해 평균 점수를 매기는 사이트로 유명하다.

2004년 5월 런던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ENO)에서 상연된 ‘발퀴레’를 보고 나서 데일리 텔리그라프지의 평론가 리처드 도멘트는 이렇게 썼다. “정말이지 썩은 토마토를 무대를 향해 던지고 싶었다….앞으로는 ENO가 상연하는 오페라 공연은 절대 관람하지 않을 것이다. ”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J-HOT]

[J-HOT]

▶"뛰어난 역량 가진 한국, 국가 브랜드 때문에…"

▶70년대 주름잡다 33세에 요절한 천재 가수

▶허씨가문 결별·한때 위기설… LG, 10년만에 확 변했다

▶'언론 5적' 국회의원 전화번호 공개…네티즌에 생중계

▶'무한도전' 제작진 "콘서트, 1년 준비했는데" 울분

▶ 젊은 아내 둔 60대 족장에 비아그라 건네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