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배려 없는 사회’ 묻지마 폭력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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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묻지마 살인’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평범해 보였던 시민이 선량한 이웃을 향한 무차별적 살인으로 분노를 터뜨리는 참사는 예측이 불가능하고 대비책도 없다. 언제라도,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불안한 것이다.

문제는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양극화와 경제난까지 심화되다 보면 묻지마 범죄가 재발할 위험이 상존한다는 점이다.어떻게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

◆열등감과 분노심의 폭발이 범죄 이유=‘세상이 나를 무시한다’‘나는 살 가치가 없는 존재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나를 환영하거나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혼자 죽기는 싫다’.

묻지마 살인범도 수사 중에 저마다 자신이 범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댄다. 살해 동기를 요약해 보면 ▶스스로의 못남에 대한 자괴감 ▶벼랑 끝에 선 자신을 홀로 버려둔 사회에 대한 분노심이다.

이번 고시원 범인은 물론, 매달 일본에서 자행되는 묻지마 살인범들 역시 소외계층이다. 자신은 어려운 처지에 놓였건만 세상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생각도, 노력도 안한다. 그렇다고 딱히 위로받거나 도움을 청할 가족도, 이웃도 없다. 나도, 가족도, 아니 세상 누구에게서도 믿을 만한 구석은 없다.

‘나도 무가치한 인간이지만 세상도 망해야 돼’라는 생각에 연이어 ‘그래, 너나 할 것 없이 다 없애는 거야’라는 끔찍한 결심을 하게 된다.

가해자와 희생자는 낯선 사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심적인 부담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사실 특별한 원한도 없는데 가족이나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을 희생자로 삼기는 범인도 꺼려지는 것이다.

◆갈등 부추기는 가치의 다양화=사회적 갈등은 빈곤과 억압의 결과물이 아니다. 예컨대 숨 막힐 듯한 가난한 독재국가라 할지라도 단일한 가치를 인정하고 추구할 땐 갈등이 적다.

반면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현대식 민주주의 사회에선 구성원 간에 갈등이 많다. 따라서 타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성숙함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소해주는 중재자나 중재 장소도 필요하다. 지역이나 직장마다 심리상담소 등을 갖추는 것은 좋은 해결책 중 하나다. 누구나 자신의 불안과 불만을 토로하고 생각을 조율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안전장치 없이 저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회에선 누구나 잘못된 처지에 놓인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하게 된다. 반면 성공한 사람에 대해선 적개심이 일면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게 마련이다. 갈등과 불만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언젠가 병적인 형태로 폭발한다.

◆상대방 존중이 갈등 해결의 첫걸음=범죄자 개개인의 범행 동기를 분석하는 것은 재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분노에 찬 왜곡된 심리의 소유자 등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보다는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을 조정하고 분노를 순화시키는 훈련이 가정 학교·직장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생활화돼야 된다. <표 참조>

우선 어른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성장기 어린이·청소년을 대할 때 비합리적인 주장일지라도 일단은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내 말을 존중해 주는 귀한 존재’란 생각을 하면서 자긍심을 키우게 된다. 반면 자신의 주장이 반복해서 무시당하는 경험이 쌓이면 열등감은 증폭된다. 직장이나 지역 사회에서도 훈련을 통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공존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법과 상식도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래야 사회 구성원 간 근본적인 신뢰가 구축되면서 범죄 충동을 줄일 수 있다. ‘누구는 죄짓고도 당당한데 나라고 죄짓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는 생각은 범죄를 양산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도움말 주신 분=분당서울대병원 정신과 하규섭 교수,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홍경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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