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며 진짜 노래 부를 자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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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구성진 가락으로 삶과 죽음을 노래하는 장사익. “세상살이가 힘들수록 사람들을 위무하는 역할을 가인들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앙포토]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지만, 사람들은 평소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산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내고, 상처 주고, 미워하다가 결국 한 줌의 재로 바스러진다.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야 삶을 더욱 가치있게 살 수 있다는 역설. 그것을 소리꾼 장사익(59)이 구성진 가락으로 풀어낸다. 다음달 8일부터 사흘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장사익 소리판-꽃구경’을 통해서다. 겨울이 다가오는 마당에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제목은 ‘꽃구경’이라니, 이 또한 역설적이지 않은가.

“지금껏 30곡을 만들었는데, 그 중 9개가 죽음에 관한 노래에요. ‘하늘 가는 길’ ‘허허바다’ ‘황혼길’ ‘무덤’ 등…. 그래서 죽음에 대한 노래들을 모아서 공연해 보자고 생각했죠. 밤과 낮, 하늘과 땅처럼 삶과 죽음도 맞닿아있습니다.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가치 있게 느껴지겠어요.”

곧 발매될 그의 6집 앨범 ‘꽃구경’에도 죽음에 대한 노래가 세 곡 들어있다. ‘이게 아닌데’ ‘꽃구경’ ‘귀천’이다. 각각 김용택, 김형영, 천상병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이게 아닌데’는 해금과 오르간 사운드가 어우러진 트로트풍의 노래다.

“누구나 ‘사는 게 이게 아닌데…’라며 살다가 생이 끝나버리죠. 술 취해서 이런 탄식을 내뱉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노래도 그런 느낌으로 불렀죠.”

‘꽃구경’은 아들 등에 업혀 깊은 숲 속에 ‘고려장’ 당하는 노모가 아들의 돌아갈 길을 걱정해, 솔잎을 길 뒤에 뿌리고 간다는 내용이다. 거의 무반주로 진행되는 이 노래는 세상의 많은 불효자를 눈물짓게 할 것 같다.

“지금도 노부모를 내팽개치고, 돌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부모는 그걸 탓하지 않아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지요. 가사 전달을 위해 무반주로 갔습니다. 김형영 시인에게 노래를 불러줬더니 ‘내 시가 이렇게 슬픈지 몰랐다’며 눈물을 흘리더군요.”

세상사에 애(哀)가 있으면 낙(樂)도 있는 법. 장사익의 노래도 비가(悲歌)와 유행가가 함께 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세상을 참 많이 닮았다. 이번 앨범의 유행가는 ‘진정 난 몰랐네’ ‘달맞이꽃’ ‘눈동자’ 등 작곡가 김희갑의 곡. 하지만 가장 파격적인 유행가는 ‘돌아가는 삼각지’다.

“내가 평생 좋아할 노래가 ‘돌아가는 삼각지’와 ‘동백 아가씨’에요. 20대 후반에 요절한 배호 씨보다 곱절 이상 더 살았는데, 아무리 불러도 그 사람의 ‘필’을 못 쫓아가겠어요. 그는 가요를 가장 맛깔스럽게 부른 가수였죠. 고민하다가 내 식대로 쏘아 질러서 트로트풍으로 불렀습니다. 배호의 ‘필’을 쫓아가는 것은 영원한 숙제에요.”

장씨는 이번 공연을 죽음·삶·꿈의 세 가지 주제로 나눴다. 장송곡으로 엮어지는 1부가 무겁게 가라앉는다면, 2부는 ‘찔레꽃’ ‘아버지’ ‘국밥집에서’ 등의 노래로 삶의 진솔한 모습을 그려낸다. 3부는 그의 목울림을 통해 새 옷을 입은 유행가다. 삶 자체가 한 편의 꿈이라는 생각에 3부 제목을 ‘꿈’으로 정했다고 했다.

“세상살이가 요즘처럼 힘들 때 사람들을 위무해주는 역할을 가인(歌人)들이 맡아야죠. 한껏 울어 제끼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잖아요. 나이 들면서 기교와 힘에 기대지 않는, 진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요즘 들어 달이 참 예뻐보이네요. 허허허.” 문의 02-396-0514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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