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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불금 탄 공무원 4만여 명 … ‘판도라 상자’엔 누가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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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6일 평소와 달리 웃지 않았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쌀 직불금 사건으로) 억울하게 매도당하는 공무원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그는 밝은 표정으로 “정의가 흐르는 한국을 위해 한나라당이 앞장서겠다”고 했었다. 그의 표정 변화만큼이나 직불금 정국을 바라보는 여권의 시선이 복잡해지고 있다. 당혹감도 묻어났다.

박희태 당 대표는 이날 울산에서 “이 문제는 상당히 미묘하고 복잡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소속 의원들(김학용·김성회)의 직불금 수령 사실이 드러나는 등 여권이 먼저 타격을 입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슈 자체가 휘발성이 있다. 농심(農心)을 자극하기 딱인 이슈다. 경제위기로 민심이 흉흉해진 상황이기도 하다. 허술하게 직불금 제도를 만든 노무현 정부의 정책 결함에서 기인됐다곤 하나 수습과 보완책 마련은 현 정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

여권에선 일단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다짐하고 있다. “사안이 커져 그 길밖에 없다”(여권 관계자)고 한다. “자칫 관리를 잘못하면 제2의 촛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 여권의 위기 관리법은 그래서 고차방정식의 시험대에 올랐다.

①“판도라의 상자 되나”=감사원은 지난해 감사 때 “직불금 수령자 중 공무원 4만421명, 공기업 직원 6213명 등 17만3947명이 부당수령자일 개연성이 있다”고 분류했다. 하지만 그 명단은 누구에게도 없다. 야권은 물론 여권에도 없다. 홍 원내대표에게도 없다. 여권 관계자는 “명단 자체가 판도라의 상자”라며 “누가 다칠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한나라당의 재선 의원은 “정보가 없으니 난사(亂射) 상황이 벌어져도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여권이 고위 공무원단에 대해 신속하게 조사하는 한편 감사원에 명단을 공개하라고 압박하는 이유다.

②“마녀사냥은 안 된다”=야권에선 “강부자 공무원들이 벼룩의 간을 내먹은 사건”(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이라고 공세 중이다. 홍 원내대표가 “마녀사냥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맞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여권의 고심은 불법-편법-탈법-부도덕의 경계가 흐릿하단 점이다. 현 제도에선 위탁 영농을 해도 직불금을 받을 수 있다. 소득이 높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요즘은 수령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비난받는 상황이 돼 버렸다. 직불금 조사 결과와 국민 인식 사이에 괴리가 클 수도 있다. 여권으로선 곤혹스러운 문제다.

청와대 관계자는 “결국 국민정서법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문제를 다루기 어려워진다”며 “고위 공직자야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제로 접근할 수 있지만 밑으로 내려갈수록 애매해 판단조차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특히 청와대의 고민이 깊다. 공무원의 사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전 정부보다 잘해 주지 못하면서 더 일하라고 다그쳤었다”며 “그래서 특히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경우 반발을 살 만큼 (징계의) 그물코를 촘촘하게 하기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는 일단 ‘선(先) 조사-후(後) 조치’ 방침을 세웠다. 행정안전부의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무원 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의 처리 매뉴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③“컨트롤 타워의 부재”=직불금 정국은 홍 원내대표가 주도했다. 청와대는 물론 한나라당 지도부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 회의 석상에서 박희태 대표가 “관리가 되는 이슈냐”고 물은 일이 있을 정도였다.

여권에선 “YTN 사태 등 다른 이슈를 덮었을지 몰라도 더 복잡한 문제를 터뜨렸다”거나 “정치만 보고 통치는 안 봤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저녁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홍 원내대표가 너무 나갔다”고까지 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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