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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넘치는데 온 나라 ‘삽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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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금융 쓰나미와 중국발 멜라민 파동에 묻혀 크게 주목 받지 못한 뉴스가 군사시설보호구역과 그린벨트를 해제한다는 정부 발표다.

‘포클레인 성장’ 재앙 앞당긴다 # MB정부 건설경기 부양에 올인 … 과잉 공급으로 집값 폭락 우려

서울 여의도 면적의 72배에 이르는 군사시설보호구역이 9월 22일자로 해제됐고, 여드레 뒤 국무회의는 이보다 넓은 서울 면적의 절반에 해당하는 그린벨트 해제 계획을 의결했다.

내년부터 10년 동안 주택 500만 채를 짓겠다는 ‘9·19 주택공급 대책’의 후속 조치다. 이명박 대통령이 9월 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그린벨트를 해제해서라도 주택을 대량 공급하겠다”고 언급한 지 열흘 만에 공급확대 대책을 발표하고, 다시 열 하루 만에 그린벨트 해제를 결정한 것이다. 9·30 그린벨트 조정 계획은 뒤죽박죽이다.

지난 40년간 어렵사리 지켜온 그린벨트를 푸는 일을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덜컥 해제 총량부터 발표했다. 그러고선 광역도시계획은 올해 안에 고치겠다니 일의 순서가 바뀌었다. 정밀한 수요 예측과 종합적인 국토 계획에 따라 해제 총량을 정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DJ정부 시절인 2001년 사회적 논란 끝에 해제하기로 한 땅이 아직 120.2km2나 남았는데, 그 1.6배인 188.3km2를 추가 해제하기로 했다. 수도권에서만 성남(141km2)보다 넓은 143.6km2가 풀리는데 해제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보전 가치가 낮은 곳, 표고 700m 이하 평지, 농림수산식품부와 협의를 거친 농지를 그 기준으로 제시한 상태다.

산지와 구릉은 묶어두되 농지는 과감하게 풀겠다는 의미다. 더구나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는 층수 제한(7층)을 없애고 임대주택 비율(50%)도 완화하겠다니 도시 외곽의 고밀도 개발은 불가피할 것 같다. 군사시설보호구역이 풀린 데다 그린벨트 해제 소문까지 나도는 ‘이중 호재’ 지역은 벌써부터 개발 기대감에 술렁인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우면동, 강서구 개화동, 경기도 과천 등이 그런 곳이다. 슬슬 해당 지역 땅값이 들먹일 텐데 정부 대책은 고작 “지자체가 해제를 추진하더라도 땅값이 오른 곳은 해제 승인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공급 확대로 분양가를 지금보다 15% 낮추겠다는 정부 장담은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그린벨트가 풀리면 인근 땅값이 치솟고, 원자재 값 상승으로 건축비는 계속 올라가는 데다 ‘사전 예약제’를 도입하면 금융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뉴타운은 그린벨트를 풀기 전 시세가 3.3m2당 800만원대였는데, 분양가는 1500만원대까지 올라가 고분양가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분양가상한제 도입의 단초가 됐다.

■ 주택 대규모 공급

-2009~2018년 주택 500만 채 공급
(수도권 300만 채, 지방 200만 채)

-수도권 뉴타운 15곳 추가 지정

-오산 세교·인천 검단 등 수도권 신도시 2곳 확대 조성
자료: 국토해양부, 국방부

MB정부 ‘3기 신도시’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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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9월 24일 한국선진화포럼 토론회에서 그린벨트를 풀어 서민용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역설했다.

“집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린벨트가 아름다운 숲이겠지만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분노의 숲이다. 후손을 위해 그린벨트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지금 당장 집 없는 서민이 있다. 후손 일은 후손들이 걱정해야 할 일이고,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 그린벨트를 없애겠다.”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고 생태 축을 보전하기 위해 설정한 그린벨트를 7.8%나 해제하겠다는 것은 8·15 광복절에 선언한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이 아닌 ‘포클레인 성장’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다.

세계적으로 도시개발 추세는 녹색도시를 지향하는데, 한국은 거꾸로 수도권의 허파를 잘라내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숲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MB정부의 9·19 주택공급 대책은 참여정부가 주도한 2기 신도시를 강타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말부터 판교신도시 2만9000가구를 비롯해 2기 신도시 물량 57만여 가구가 쏟아져 나온다.

여기다 서울 근교 그린벨트를 중심으로 10년 동안 300만 가구를 공급한다니 무차별적인 물량 공세가 아닐 수 없다. 2020년까지 해제될 서울 근교 그린벨트 143.6km2 중 80km2는 택지로 조성된다. 판교신도시(9.3km2)를 8개 이상 건설할 수 있는 땅으로 사실상 MB정부의 ‘3기 신도시’나 마찬가지다. 2기 신도시는 대부분 서울 도심에서 40~50km 떨어져 있어 수도권 외곽 3기 신도시보다 서울 접근성이 크게 처진다.

2기 신도시 중 광교·양주·검단·평택 등은 첫 분양이 2009년, 첫 입주는 2010~11년에 몰려 있다. 여기에 그린벨트 해제 지역 물량이 가세하면 실수요자들이 2기 신도시를 외면해 자칫 공동화 현상을 빚을 수도 있다. 판교와 송파 신도시야 괜찮겠지만 나머지 신도시는 아무래도 매력이 떨어진다. 업계는 8월 말 김포한강 신도시에 공급된 우남퍼스트빌의 낮은 분양률을 그 전주곡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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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형 건설사 사이에 ‘연말 위기설’이 나돈다. 사상 최대의 미분양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건설사의 자금 숨통을 조이는 가운데 택지 담보대출 상환 압박과 분양 계약 및 입주 예정자의 계약 포기, 잔금 연체가 겹쳐서다. 정부가 건설업체의 신고를 받아 집계한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16만595가구. 지난해 말보다 43.1% 늘었다. 수도권에서도 미분양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7월말 현재 2만2977가구로 지난해 말보다 57.1% 증가했다. 업계는 전국적으로 실제 미분양 물량이 약 25만 가구, 여기에 잠긴 자금을 50조원으로 본다. 올 들어 8월까지 부도를 낸 건설업체는 종합건설사 78개, 전문건설사 177개 등 모두 255개다. 미분양이 넘쳐나 건설업체 부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급확대 정책은 주택구매 심리를 더욱 위축시켜 매매시장에 찬물을 끼얹는다.

정부야 건설경기를 부추겨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의도지만, 시장은 오히려 부동산 시장 ‘장기 침체’의 신호로 해석한다. 한쪽으로는 미분양 아파트를 국민 세금으로 사들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규모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용감한 발상이다. 야당은 “국민 주거 안정보다 유휴 건설장비 활용에 방점을 찍은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부동산 거품은 세계적 고민거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집값의 거품이 꺼지면서 시작됐고,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주저앉힌 금융 쓰나미로 이어졌다. 이런 판에 건설회사 CEO 출신 대통령과 정부는 건설경기 부양을 위기 탈출 해법으로 내놓았다. 땅 파고 집 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토건 국가식 발상으론 경기를 살리지도 못할뿐더러 되레 새로운 부동산 거품만 키울 수 있다.

미국발 금융 쓰나미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잇따른 대규모 주택공급 계획과 그린벨트·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결정은 뜬금없다. 당면한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공급 부족이 아니라 높은 분양가와 과잉 공급에 따른 미분양 사태다. 공급확대 정책은 집값이 다락같이 오를 때 필요한 것이지, 지금처럼 떨어질 땐 자칫 집값 하락을 가속화할 수 있다.

대규모 공급확대로 집값이 가파르게 떨어지면 이미 지나치게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해지면서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자초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부동산 대책은 미분양 해소와 거래 활성화다. 전국적으로 이미 신도시가 11개나 건설 중이고 뉴타운과 경제특구에 이르기까지 공급과잉을 빚을 수 있으므로 9·19 공급확대 정책은 재고해야 한다. 녹색성장으로 경제체질을 바꾸려면 삽질의 유혹부터 떨쳐야 한다.

양재찬 편집위원·jay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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