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1500여 구가 넘는 시체를 부검해 온 유성호(52·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서울대에서 10년 넘게 ‘죽음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죽음이 ‘일상’인 그에게도 여전히 낯설고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죽음이 있다고 한다. ‘자살’과 ‘조력사망’ 문제다.
유 교수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을 부검대에서 수없이 많이 만났다. 유 교수는 그들의 유서에서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자살은 질병”이라며 “충분히 치료를 통해 극복 가능한 문제”라고 말했다. 자살 충동이 일면 무조건 가야 할 ‘의외의 곳’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법의학자는 일종의 “카나리아(canary)” 역할을 한다고 한다. 부검대에 오른 시신들을 통해 앞으로 심각해질 사회 문제를 법의학자가 미리 포착한다는 얘기다. 유 교수는 “(한국 사회에선) 특히 안락사, 조력사망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왜 여전히 도입이 요원해 보이는 조력 사망과 안락사가 본격 논의될 거라고 장담할까. 또한 유 교수는 숱한 죽음을 마주하며 “죽음에 빈부 격차가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의 눈에 비친 ‘죽음의 빈부 격차’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목차
1. 자살 충동? 한강 말고 무조건 가야 할 ‘이곳’
2. “자살은 ‘질병’, 이렇게 해야 날 안 만난다”
3. “조력 사망, 법의학자에 수년 전부터 ‘알람’ 울렸다”
4. “죽음에도 빈부 격차”…‘더 킷 리스트’ 써야 하는 이유는
앞서 상편 〈시신 1500구 부검한 법의학자…그가 깨달은 ‘행복한 죽음’〉에서 유 교수는 부검대 위에서 마주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솔직한 소회를 밝혔다. 부검대 앞에 선 자신을 “빛도 없이 등장하는 카메오”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칭한 유 교수는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한 ‘객(客)’으로서 어떤 도움을 주고자 했는지, 인간에게 과연 ‘아름다운 죽음’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 등을 털어놓았다.
법의학자 유성호, 죽음을 말하다
상편: 시신 1500구 부검한 법의학자…그가 깨달은 ‘행복한 죽음’
하편: 암투병 부모에 “돌아가셨으면”…법의학자가 목격한 삶의 끝 〈下〉
- 서울대 강의명이 〈죽음의 과학적 의미〉다. ‘과학적’이라고 한 이유는.
당시 급조한 과목이다. 처음엔 ‘죽음의 의학적 이해’라고 수업 제목을 써냈는데, 탈락했다. “왜 탈락이냐”고 물으니, “죽음을 애들한테 왜 가르치느냐” “왜 나쁜 생각을 하게끔 하느냐. 가르치지 말라”고 하길래, 분기탱천해서 “삶의 엔딩 챕터인 죽음을 안 배우면 삶을 어떻게 아느냐”고 응수했다. 이후에 ‘의학적 이해’라고 해서 싫어했나 싶어서 ‘과학적’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