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던 어촌 마을 … 돈벼락에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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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시 구산면 수정리 구산면 사무소의 정면엔 대형 펼침막이 펄럭이고 있다. “STX는 주민들과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마을 발전기금 80억원 중 40억원은 은행에 예치되었습니다. 80억원은 세대당 2000만원쯤 돌아가는 금액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펼침막 아래쪽에는 STX중공업에서 직원 공채 시 주민 자녀의 가산점 부여, 세입자용 임대아파트 건립, 이주 희망자 시세 보상 등 26개 항의 주민지원 조건들도 빼곡히 적혀 있다. 마을 앞 바닷가인 수정만 매립지에 조선기자재 공장을 짓겠다는 STX 측이 제시한 마을 지원조건이다.

마산시 구산면사무소에 가구당 2000만원을 준다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수정리를 포함한 이 일대 안녕·장문안·골매 등 4개 마을 391가구 1200여 명의 주민은 그동안 마을 앞바다에서 어패류를 채취하면서 평화로이 살아 왔었다. 그러나 최근 STX가 1차로 마을발전기금 50억원을 내놓으면서 주민들에겐 ‘돈벼락’이 떨어졌다. 이달 3∼15일 가구당 1000만원씩 지급됐기 때문이다. 지급대상 391가구 중 282가구(72%)가 돈을 받아갔다. 지난달 중순에는 위로금조로 200만원씩 나눠줬다.

조용한 어촌마을엔 돈이 풀리면서 술렁이고 있다. 20일 안녕마을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부산에 사는 아들이 자꾸 찾아와서 돈을 빌려 달라고 해서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낡은 냉장고를 바꿨다는 주부도 있었다. 김모(50)씨는 “공장이 가동되면 아들이 취업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이 마을 이수강(50) 이장은 “주로 홍합을 까서 일당 2만∼3만여원을 받아 생활하는 주민들에게는 큰돈”이라며 “찬반 의견이 맞서고 있어 ‘쉬쉬’하며 받아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어촌 인심 흉흉해져=이들 마을의 분위기는 올 초 STX가 주거단지로 매립 중인 땅에 공장을 짓겠다며 일반산업단지로 변경하는 절차에 들어가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환경오염’과 ‘지역경제 회생’을 앞세운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STX가 공장 포기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당황한 마산시가 주민설득에 나섰고, 공장 유치를 찬성하는 주민들로 이뤄진 수정뉴타운추진위는 5월 30일 전체 주민 가운데 570명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520명(91%)의 찬성이었다. 이에 STX는 지난달 초 사업 추진을 재개하고 마을발전기금 등 주민지원조건을 제시하게 됐다.

하지만 갈등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마을 인심은 각박해졌다. 반대 대책위 박석곤(55) 공동대표 등 3명은 21일 뉴타운 추진위 대표 6명을 창원지검에 횡령혐의로 고소했다. 박씨는 고소장에서 “대표성이 없는 찬성 측 주민들로만 이뤄진 수정뉴타운추진위가 발전기금을 마음대로 처리한 것은 횡령죄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찬성 측 주민이 운영하는 식당에는 반대 측 사람들이 발길을 끊었다. 동창회와 계 모임도 엉망이 돼 버렸다. 초상이 나도 찬성과 반대 측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 잔치를 겸한 구산문화제(10월 개최)를 위한 주민모임도 서먹서먹해져 버렸다.  

마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수정만 매립지=마산시 구산면 수정리 앞 공유수면 24만㎡을 매립한 곳이다. 1990년에 착공해 마무리 단계다. 당초 매립목적이 택지용이었으나 STX 요청에 따라 일반산업단지로 바뀌어 조선 기자재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마산시는 공장이 유치되면 3000~5000명 고용, 연간 6000억원대의 경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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