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시대 어느 장애인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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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컴퓨터시대가 되면서 모든 것이 자동화돼 도장을 찾는 손님이떨어졌다.다시 뭔가를 시작해야 하지만 자신이 없다.삶이 고통스럽다.』 7일 오전11시 서울영등포구대림동 한독병원 영안실.
도장업으로 생계를 꾸려오다 생활고를 견디지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애인 이주훈(李柱勳.38)씨의 어머니 신옥순(申玉順.71)씨가 아들의 유서를 손에 쥐고 오열했다.
두살때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 다리를 절게 된 李씨는 고교졸업후 어머니가 직장을 그만둔뒤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생계를 위해큰형이 운영하는 도장가게에 뛰어들었다.
도장기술을 열심히 익힌 李씨는 78년 독립,서울 청계천에서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손수레 좌판을 끌며 열심히 도장을 팠다.넉넉지는 않아도 한달에 70만~80만원을 벌어 노모를 극진히모시고 행복한 앞날을 설계하며 저축도 할 수 있 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 도장을 찾는 사람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결국 그동안 천직으로 여겨왔던 도장파는 일을 93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찾아나섰지만 장애인을 반겨주는 기업체는 한군데도 없었고 李씨는 결국 목숨을 끊는 것말고는다른 선택을 찾을 수 없었다.
정보화로 삶의 질은 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어도 그만큼 길어질수 있는 이면의 그림자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현승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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