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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원 밀프렙, 1주 버텨"…코로나 때보다 문닫는 식당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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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직장인 김지현(34·가명)씨가 준비한 점심 도시락. 독자 제공

직장인 김지현(34·가명)씨가 준비한 점심 도시락. 독자 제공

청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지현(34·가명)씨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일주일 치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이른바 ‘밀프렙(meal preparation)’ 영상과 사진을 올려 지인들과 공유한다. 일주일 치 식재료를 구입해 같은 재료로 만든 볶음밥, 샐러드 등 요리와 보관이 쉬운 메뉴가 대부분이다. 이번 주엔 닭가슴살과 양배추 등을 구매한 뒤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자투리 채소들을 추가한 볶음밥과 잡채 등이 메인 메뉴였다.

김씨는 “코로나19 이전엔 점심에도 팀원들끼리 함께 식사하러 밖으로 나가는 게 일상이었지만, 코로나로 각자 사 먹거나 도시락을 싸 오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주말에 식재료를 사 간단한 요리를 하고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사무실에 가져가 데워 먹는다”면서 “같은 재료라도 요리법이나 곁들이는 반찬 한 두 가지를 바꾸면 3만원 정도로 일주일 점심을 거뜬히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11일이면 윤석열 정부가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한 지 1년을 맞는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빚어낸 사회·문화적 대격변은 엔데믹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상화다. 지난해 한국사회학회장을 지낸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 충격 이후 사회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았다”며 “비대면 업무가 보편화 됐고, 인간관계 면에서도 과거와는 달리 소통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대표적인 게 직장인 회식 문화다. 경기도의 한 화장품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이모(33)씨도 “코로나 3년을 보내면서 저녁 회식은 대부분 사라졌고, 하더라도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으쌰으쌰 하는 것보다는 맛있고 비싼 음식을 먹고 9시 전에 집에 가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가파른 물가 상승까지 겹치며 밀프렙이나 ‘혼술’(혼자서 마시는 술)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등 가성비 소비를 즐기는 트렌드도 자리잡았다. 인스타그램에 ‘#밀프렙’을 검색하면 7만9000여개 게시물이 나온다. ‘#혼술’ 키워드가 태그된 게시물도 260만개에 달한다.

경기 수원 연무동에서 분식집을 10년째 운영하는 정혜령(60)씨는 지난해 9월 떡볶이, 찰순대, 모듬튀김, 오뎅, 김밥 등 메뉴를 삽입한 결제 일체형 키오스크를 들였다. 손성배 기자

경기 수원 연무동에서 분식집을 10년째 운영하는 정혜령(60)씨는 지난해 9월 떡볶이, 찰순대, 모듬튀김, 오뎅, 김밥 등 메뉴를 삽입한 결제 일체형 키오스크를 들였다. 손성배 기자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20년 1월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 중국음식점을 열었다가 지난해 12월 폐업한 김모(59)씨가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면요리 전문점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보람 기자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20년 1월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 중국음식점을 열었다가 지난해 12월 폐업한 김모(59)씨가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면요리 전문점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보람 기자

이런 영향을 크게 받은 건 단연 외식업자들이다. 경기 수원 연무동에서 10년째 분식집을 운영하는 정혜령(60)씨는 지난해 9월 떡볶이, 찰순대, 모듬튀김, 오뎅, 김밥 등 메뉴를 넣은 결제 일체형 키오스크를 들였다. 한 달에 6만1000원씩 임대료를 낸다. 정씨는 “코로나가 한창일 땐 손님들이 포장 주문을 하러 오면서도 대면을 꺼리는 게 느껴지더라”며 “마스크 권고도 사라졌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와 대면을 꺼리는 손님들이 많아 손님과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 비싸진 인건비도 줄일 겸 뒤늦게 키오스크를 들였다”고 설명했다.

그 어느 때보다 혹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영업자들도 많다. 2020년 1월, IT 회사를 운영하다 은퇴한 김모(59)씨는 화려한 인생 2막을 기대하며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 1억3000만원을 투자한 중국음식점을 개업했다. 일주일 만에 코로나가 터졌다. 시청과 주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주요 타깃이었지만, 코로나 확산 초기 확진자가 1명만 나와도 해당 건물을 폐쇄한 데 이어 재택근무까지 자리 잡으면서 이른바 ‘개업 빨’도 보지 못했다. 첫해에만 3000만원 넘는 손해를 봤다. 코로나가 끝나기만 기다리며 8명이던 직원을 3명으로 줄였고 나중엔 홀로 가게를 운영하면서 버텼다. 하지만 김씨는 결국 지난해 12월 가게 문을 닫았다. 김씨는 “코로나가 끝나면 손님이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버텼는데 그사이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오히려 지갑을 닫더라”며 “희망이 사라져 결국 폐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실제 빅데이터 상권분석 플랫폼 ‘오픈업’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외식업체 폐업률은 21.5%를 기록했다. 81만8667개 외식업체 중 17만6258곳 폐업한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유행 시기인 2020~2022년 평균치(15%)보다 6%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를 보면 지난 2022년 서울시에서 폐업한 자영업 점포는 4만6837개로 최근 5년 사이 처음으로 개업 점포 수(3만8590)를 추월했다. 지난해 폐업한 점포는 5만1826곳으로 전년보다 10%(4989개) 늘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폐업 등으로 생계 위협에 처한 자영업자에게 영업기간 납입금액에 이자를 붙여 되돌려주는 소기업·소상공인공제 ‘노란우산’의 폐업사유공제금 지급액도 지난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노란우산 폐업사유공제금 지급 건수는 11만15건으로 전년(9만1130건)보다 21%, 지급액은 1조2600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30% 각각 증가했다.

조성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엔데믹 이후에도 대부분 조직에서 대면 접촉보다 비대면이 익숙한 문화적 관행이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며 “이로 인해 대규모 회식 등이 줄어들어 요식업은 타격을 입은 반면 일부 디지털 플랫폼의 발전 등이 가속화되며 새롭게 승자와 패자가 나뉘게 됐다. 앞으로는 새로운 사회 구조에서 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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