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상청 '보령 怪파도' 예측 무시 논란 "사고 전날 3m 파도 예상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코노미스트 지난 5월 4일 충남 보령 죽도에 ‘괴(怪)파도’가 덮쳐 관광객 9명이 사망했다. 기상청은 그 일대에 지진이나 큰 파도가 관측되지 않았다며 ‘이상현상’ 결과라고 밝혔다. 그러나 본지가 단독 입수한 위성사진 판독 결과 높은 파도가 예상됐다. 이에 따라 참사 원인에 대한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4일 낮 12시41분. 충남 보령 죽도에 난데없이 높은 파도가 밀려 왔다. 이 파도는 순식간에 방파제를 넘어 관광객 수십 명을 덮쳤다.

평화롭던 죽도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관광객 9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쳤다. 문제는 해일경보 또는 풍랑주의보 같은 사전경고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보령 관광객들로선 한가롭게 바다를 구경하다 봉변을 당한 셈이다.

기상청은 사고 직후 “서해안 외해(外海)에선 큰 파도가 관측되지 않았고, 지진도 없었다”며 “조류가 방파제 등 인공구조물에 부딪치면서 발생한 (이상)현상”이라고 발표했다.

또 “보령의 당시 만조시간이 오후 2시31분으로, 사고지점의 조위(潮位·조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해면의 높이)가 점점 높아진 것도 괴파도의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인공구조물은 죽도에만 설치된 게 아닌데 왜 보령에서만 ‘죽음의 괴파도’가 발생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높아진 조위 때문’이라는 기상청 분석에 대해서도 반론이 나온다. 사고 당시 조위는 575cm에 불과했다. 주의 수위(784cm)에도 209cm나 모자라는 수준이다.

혹여 서해안 일대의 ‘악(惡)기상’이 괴파도의 진짜 원인은 아닐까. 이코노미스트가 단독 입수한 5월 4일 ‘위성사진’과 5월 3일 기상청 파도 높이 예측결과를 통해 ‘보령 괴파도’의 실체를 파헤쳐봤다.

#의문1 외해에 큰 파도가 없었다?

외해는 육지에 둘러싸이지 않은 바다를 말한다. 쉽게 말해 ‘먼 바다’다. 외해에서 큰 파도가 관측되지 않았다는 것은 지진 또는 바람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서울대 기상학과 A교수는 “다른 변수도 있지만 파도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지진 또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기상청의 주장대로 보령 죽도 사고 당일인 5월 4일, 외해엔 큰 파도를 일으킬 만한 변수가 없었던 것일까.

지진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바람’은 분명 불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연구용 인공위성 ‘QuickSCAT’의 관측 자료에 따르면 5월 4일 오전 9시, 중국 산둥반도 부근에선 30나트 이상의 해상풍이 불었다.

기상관측 안내서 『National Audubon Society Filed Guide to North American Weather』는 30나트에 대해 “초속 15m이고, 4~6m 높이의 파도를 동반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약한 태풍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제법 센 바람이라는 얘기다. 약한 태풍의 바람 속도는 초속 17~24m다.

산둥반도에서 출발한 이 해상풍은 서해안을 거쳐 오후 9시 제주도에 상륙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9시간이 흐른 오후 9시에도 이 해상풍은 강력했다. ‘QuickSCAT’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 부근에 위치한 해상풍은 남해안 일대에는 30나트, 서해안 일대에는 25나트 이상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사고 발생시간인 5월 4일 낮 12시41분 보령 외해엔 강도 높은 바람이 불었고, 큰 파도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서해안 외해에선 큰 파도가 관측되지 않았다’는 기상청의 주장과 배치되는 결과다.

기상청 내부 관계자는 “외해에 어떤 파도도 일지 않았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12시41분쯤, 중국 산둥반도에서 시작한 강풍대가 충남 서해안 일대와 맞닿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A교수도 “위성사진에 따르면 서해안 외해에선 분명 큰 파도가 관측됐다”며 “이 파도가 서해안 해역 일대에 전파됐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분석했다.

#의문2 당일 ‘저기압 bomb’이 터졌다?

저기압이 발달하면 자연스럽게 바람이 위로 올라간다. 파도 또한 높아진다. 바람이 파도를 끌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중심기압이 20hPa 낮아지면 파도 높이가 20cm 높아진다’는 게 정설이다. 5월 4일 시간대별 ‘지상일기도’에 따르면 당시 서해안 일대엔 강한 저기압이 형성돼 있다. 파도가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당일 오전 9시, 중국 산둥반도 부근엔 1002hPa 저기압이 형성돼 있고, 서해안 쪽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물론 태풍 수준의 저기압은 아니다. 태풍은 1000hPa 미만에서 형성된다.

가령 제16호 태풍 차바의 중심기압은 910hPa이었다. 그러나 이 저기압은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면서 주변 기상상황을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기압이 시간당 1hPa 떨어지면, 저기압이 빠르게 커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를 기상용어로 ‘bomb(폭탄)’이라고 한다.

기상 전문가는 “‘bomb’이 태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저기압이 빠르게 세력을 넓히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주변 기상 상황은 급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지상일기도’에 따르면 사건 발생 시간이었던 12시~오후 3시, 서해안을 뒤덮고 있었던 저기압은 ‘bomb’ 형태를 띠고 있다. 낮 12시쯤 이 저기압은 1002hPa였다. 하지만 오후 3시에는 무려 4hPa가 떨어진 998hPa를 기록하고 있다.

한 기상 학자는 “불과 3시간 만에 4hPa가 떨어진 셈이기 때문에 당시 서해안 일대에 형성돼 있던 저기압은 ‘bomb’으로 볼 수 있다”며 “따라서 서해안 일대는 파도가 높아지고 기상 상황 역시 악화됐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빠르게 형성되고 있던 저기압이 보령 괴파도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해양연구원 이동영 박사도 보령 괴파도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 “조류 또는 조수간만의 차가 아닌 기압”이라고 말했다. 이 또한 ‘보령 괴파도와 외해 기상상황은 무관하다’는 기상청 주장을 뒤집는 것이다.

#의문3 기상청은 높은 파도를 하루 전 예측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외해 기상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면 (괴파도 발생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점이다. 기상청이 보유하고 있는 파도 높이를 예측하는 장비는 ‘파랑모델’이다.

하루 두 차례(오전 9시, 오후 9시) 데이터를 투입, 파도 높이를 내다본다. 기상 예보관은 통상 전일 오전 9시, 오후 9시에 실시된 파랑모델의 예측 값을 보고 다음날 파도 높이를 전망한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5월 3일 오전 9시에 실시된 파랑모델 예측 값에 따르면 5월 4일 오전 9시 산둥반도 부근에선 최대 3.5m 이상의 파도가 감지되고 있다. 사고 발생 시간대인 정오에도 3~3.5m 높이의 파도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QuickSCAT’ 관측 자료와 비슷한 결과다.

기상청 기상특보기준에 따르면 유의파고가 3m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될 때는 ‘풍랑주의보’를 발표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서해안 일대에는 풍랑주의보가 발령됐어야 한다.

기상청은 “5월 4일 오전 9시에 실시된 파랑모델의 예측 값은 모두 1m대 파도가 일 것으로 예측했다”며 “예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5월4일 오전 9시에 실시된 파랑모델의 예측값은 빨라도 정오에 나온다.

결과를 산출하는 데 대략 3~4시간 걸리기 때문이다. 보령 사고 발생 시간이 12시41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상 예보관이 5월4일 오전 실시된 파랑모델의 예측을 참조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기상청 관계자도 “오전에 실시된 파랑모델 결과는 당일 낮 12시~오후 1시까지 무의미한 자료”라고 말했다.

한 기상 전문가는 “5월 3일 파랑모델이 산출한 예측 값과 위성사진의 관측 자료가 일치한다”며 “이 때문에 서해안 일대에 높은 파도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점은 예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해안 일대에 높은 파도가 발생할 것이다’는 파랑모델의 예측을 무시했던 게 보령 참사를 막지 못한 이유라는 것이다.

▶5월 4일 12시41분쯤, 충남 보령 죽도에 괴파도가 밀려와 대형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인근 횟집 CC-TV가 촬영한 괴파도의 모습.

#의문4 큰 파도는 육안 식별이 힘들다?

이에 대해 기상청은 “외해의 기상 현상이 충남 보령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며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기상청 관계자는 “당일 기상상황을 보면, 서남서-남서풍이 초속 0.5m 내외, 파도 높이는 0.1~0.2m 안팎이었다”며 “현지 목격자들도 죽도 주변 해상에 대해 잔잔한 상태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육안으로도 식별되지 않았는데, 무슨 강풍이 불었고 큰 파도가 밀려왔느냐는 논리다.

인공위성 ‘QuickSCAT’ 관측 자료에 따르면 서해안에는 분명히 높은 파도가 발생했는데, 어떤 이유에서 보령 바다는 잠잠했던 것일까. 파도가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사라진 것은 아닐까.

기상 전문가들에 따르면 파도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어디론가 반드시 전파된다. 문제는 큰 파도일수록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 기상 학자는 “눈으로 본 바다가 조용하고 잠잠했다고 해서 파도가 없었다는 주장은 가정부터 틀렸다”며 “큰 파도일수록 갑자기 밀어닥치게 마련”이라고 밝혔다.

그는 “쓰나미의 경우 썰물처럼 바다가 쓸려 내려갔다가 급작스럽게 큰 파도가 밀려오지 않는가”라며 “이는 조류 현상 때문이 아니라 큰 파도가 역류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보령 죽도에서 발생한 괴파도는 인공구조물에 부딪쳐서 발생한 이상 현상이 아니라 서해안에서 밀려온 큰 파도 때문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기상청은 보령 사고가 발생한 지 4일이 지난 5월 8일, 죽도 사고 관련 회의를 개최했다. 10명의 기상 및 해양 전문가가 참가했다. 이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국지적 지형영향 등에 의해 파도가 높아져 ‘이상 파랑’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기상청은 10명의 전문가에게 중요한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공위성 ‘QuickSCAT’의 실제 관측 자료는 회의 문건에서 누락했다. 높은 파도를 예측한 파랑모델 결과(5월 4일 오전 9시 실시)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보령에서 발생한 괴파도가 외해 기상상황과는 무관한 이상 파랑’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유리한 자료만 선택, 공개했다는 의혹이 따를 수밖에 없다.

기상예보는 21세기 고부가가치 정보로 손꼽힌다. 기상 재해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방재 개념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기상 사고에 대한 철저한 원인 규명과 대책 수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상 파랑을 연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사고 발생 당시 주변 기상은 어땠는지, 예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지부터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래야 또 다른 사고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기상학자는 “우리 기상청은 기상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어떤 사건이 발생해도 충분한 검토와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보령 괴파도의 실체를 파악하는 작업은 기상청이 관련 자료를 먼저 공개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J-HOT]

▶ "15년만에 엄마 만나…검사님 감사합니다"
▶ '쌍봉댁' 이숙 "파출부 역이나 하는 주제에"란 말에 다신…
▶ 조용하던 어촌 마을…80억 돈벼락에 흔들
▶ "盧정부말 미쇠고기 월령 제한없이 수입 결론"
▶ YS, 늑막에 혈액 고이는 혈흉으로 입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