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블로그] 쇠고기 협상 주역의 쓸쓸한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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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8일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후 결과를 발표하는 민동석 차관보. [중앙포토]

"모든 공(功)과 과(過)는 역사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이런 희생과 결단 역시 공직자가 받아들여야할 또 하나의 운명적 의무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4월 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한국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차관보)이 공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민 차관보는 7일 청와대의 개각 발표가 있기 직전 직속 상관인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에게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협상 대표인 저와 함께 일한 공직자들을 매국노로 몰아붙이는 시청 앞의 불야성을 이룬 촛불집회를 보았습니다"

민동석 차관보는 사직서를 낸 직후 '존경하는 농림수산식품 가족 여러분'이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습니다.

"부디 힘을 내십시오. 처음의 뜻을 잃지 말고 소같이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일어난 불꽃은 언젠가는 잊혀지지만 국가이익을 위한 공직자의 헌신과 사명은 영원합니다"
기자는 민 차관보의 사직서 제출 소식을 다음날인 8일 오전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접했습니다. 순간 지난 20일간 그와 나눈 유-무형의 대화가 주마등처럼 기자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 우연히 찾아온 인연

기자가 민동석 차관보를 처음 만난 건 지난달 중순께였습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으로날아가 추가 협상을 하고 있을 때였죠.
저녁 늦은 시간 퇴근길에 마주친 회사 선배가 기자를 불러 돌아본 순간 또 다른 얼굴이 한명 더 있었습니다. 기자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5월초 '쇠고기 파문' 처음 불거졌을 때 한 방송사가 "농식품부 관리들이 말 바꾸기를 했다"고 보도한 TV뉴스에 그의 얼굴을 함께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선배의 소개로 그와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했습니다.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차관보) 민동석'

명함을 받아들고 그와 헤어졌습니다.

# 휴대전화에 뜬 낯선 번호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는 정부의 추가 협상 결과를 발표가 있은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지난달 24일 저녁 무렵 기자의 휴대전화에 낯선 전화번호가 떴습니다.

"민동석입니다"
"예, 그동안 잘 지냈셨습니까"

안부인사를 마치자 마자 그는 "언제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며 시간을 좀 내달라고 정중히 부탁을 해왔습니다. 잠시 당황했지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예, 시간과 장소를 정해주시면 나가겠습니다"

이틀 후인 26일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지나간 신문에서 그의 이력을 찾아보았습니다.

1996년 외무부 통상기구과장
1998년 외교통상부 기획예산담당관
2001년 뉴라운드담당(심의관)
2004년 주 휴스턴 총영사
2006년 농림부 농업통상정책관(1급 상당 임용)

# 서로 얼굴을 맞댄 3시간 반

6월 26일 저녁 7시30분.
기자는 그날 하루 쉬는 날이었습니다. 낮에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고 난 후 약속한 시각에 정확히 맞추어 그 장소에 나갔습니다. 그가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가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내주셨어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런 좋은 자리를 만들어 주시니 제가 되레 고맙습니다"

기자는 18년째 신문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내근을 하는 편집기자라 정부 관리, 그것도 고위공직자를 직접 대면하기는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그는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노란 봉투에서 책을 꺼내 기자에게 건넸습니다.

'위기의 72시간'
책 표지를 본 순간 2005년 8월말 미국 뉴올리언즈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관해 쓴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당시 휴스턴 총영사가 그 담당이었구나 하는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태운님
아름다운 꿈 이루소서
2008년
민동석 드림'

책 표지를 넘기니 정성을 들여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고생 많으셨죠"
"힘은 들었지만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첫 대면이었지만 말문은 쉽게 트였습니다.
카트리나 대재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자는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지난 두 달간 너무 외롭고 힘든 나날을 보내셨구나. 사람이 너무 그리워겠구나"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4월 18일부터 '쇠고기 파문'으로 번진 5월초까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던 그의 이름은 이후 조금씩 뜸해지더니 어느새 '종적'조차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조차 듣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기자는 되도록 말을 아꼈습니다. 중간중간 흥을 돋우는 추임새를 넣어주며 간간이 확인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카트리나로 시작한 이야기는 통상문제로 이어지다 결국 쇠고기 문제로 귀착되었습니다. 중간에 자식에 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노 기자, 저 이제 공직을 떠나려고 합니다"

기자는 얼른 탁자에 놓인 술을 한잔 마신 후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재털이를 보니 꽁초가 제법 쌓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술은 잘 마시지 못한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중에 담배에는 손이 자주 갔습니다. 담배를 내려놓고 잔을 넘겼습니다. 그는 단숨에 비운 후 되돌려 주었습니다. 기자도 단숨에 비웠습니다.

"29년간 공직생활을 하며 저는 3번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의 말문이 다시 열렸습니다.
그가 맞은 첫번째 위기는 휴스턴 총영사 시절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왔을 때였다고 합니다. 그때 그가 해야 할 임무는 대재앙을 맞은 교민들의 안위를 챙기는 것이었죠.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언론과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교민들의 피해 상황 파악이 언론보다 뒤쳐지면 "도대체 우리 재외공관은 뭐 하는 곳이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총영사였던 그는 직접 현지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기자가 뒤에 확인해보니 그는 깔끔한 뒷처리로 그해 말 정부로부터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더군요.

두번째 위기는 2006년 당시 농림부(현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으로 임명된 후 진행된 한-미 FTA 협상 농업부문 고위급대표로 나섰을 때였습니다. 휴스턴 총영사 임기가 더 남았지만 당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강력한 추천으로 외교부에서 농림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한-미 FTA협상에서 한국이 가장 손해를 보는 부문은 농업분야였습니다. 농업분야 협상이 잘못하면 협상 판 자체가 깨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 두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그의 세번째 위기는 바로 4월 18일 타결된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었습니다.
"쇠고기 협상은 이미 결과가 어떻든지 욕을 먹고 불행한 결과가 예상되는 운명적인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농림수산식품부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 내용은 이미 그때 기자에게 먼저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또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외교통상부로 복귀할 길이 열려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쇠고기 문제를 마무리짓고 복귀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비장한 마음으로 협상장에 나갔습니다"
역시 편지 내용 그대로였습니다.

# 그를 그냥 보낸 아쉬움이…

시계바늘은 어느새 밤 11시 턱밑까지 와 있었습니다.

"노기자, 저의 이런 심정을 글로 남긴다면..."

기자가 예상했던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선배님"

기자는 순간 그를 '차관보'가 아닌 "인생 선배로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말씀을 올렸습니다.

"선배님, 글을 쓸 때 첫부분은 필히 선배님에게 유리하지 않는 내용을 넣고 시작하십시오. 먼저 부족했던 점을 스스로 드러낸 후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어가십시오"

기자는 개인적 경험을 예로 들어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는 "명심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식당이 문을 닫아야 할 시각을 넘겨 밖으로 나왔습니다. 기자는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2차를 내가 쏘아버려'
하지만 그를 그냥 보냈습니다. "맥주 반잔에 소주 한잔을 섞어 돌릴까" 생각하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자정을 넘긴 시각 기자는 집앞 호프집에 들러 500cc 생맥주에 소주를 타 연거푸 두 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해 4월 1일 미국과 숨가쁜 FTA 협상 막바지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민 차관보. [중앙포토]

# 결국 올 것이 왔구나

7월 4일 금요일 오후 1시 42분.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사인이 들어왔습니다.

"제 휴대전화 번호 011-XXX-XXXX이 010-XXXX-XXXX로 변경되었습니다 민동석"
'결국 결행을 하시는구나'

메시지 내용을 본 순간 기자는 바로 알아차렸습니다.아무 내용없이 "고맙습니다"는 답변을 보냈습니다.

다음날은 토요일로 쉬는 날이었습니다. 기자는 새벽에 서울 출발해 강원도 동해시와 정선군 경계인 백봉령으로 가 백두대간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마침 그날 동해안지역은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오전 10시에 백봉령을 출발해 땀을 비오듯 흘리며 꼬박 12시간을 걸어 청옥산 조금 못미친 마루금에서 방향을 틀어 밤늦게 무릉계곡으로 내려왔습니다. 하루 종일 머리에서 그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여름 소나기 같이 쏟아지는 감당하기 힘든 비난과 야유 속에서 국가는 무엇인지, 국가이익은 무엇이고 공직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깊이 반성해 보기도 했습니다"

8일 오전 그가 농림수산식품부 가족들에게 남겼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바로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참고 또 참았습니다.

"선배님, 더운 날씨에 건강 챙기십시오"

저녁 퇴근 무렵 전화 대신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번 감사했습니다. 민동석"

곧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고마웠을까'

일이 모두 정리되면 그때 그를 다시 만나 그날 못다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노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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